우리 집 옆에는 영순이가 살았고 그 옆에는 선희가 살았다. 집집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세 명씩이라 골목에는 늘 아이들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높지 않은 담 너머로 영순네 소리가 넘어왔고 우리 집 소리도 그쪽으로 넘어갔다. 여름철에는 수돗가에서 등목하는 소리가 들리고 겨울에는 드르륵 열리는 마루문 너머로 옹송옹송한 말소리가 들렸다.
우리 아버지가 술주정을 할 때는 그 소리가 넘어가질 않길 바랐지만 소용없었다. ‘내가 못 살아!’라며 악을 쓰는 영순 엄마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넘어올 때도 있었다. 오고 가는 건 소리만이 아니어서 아이들은 이 집과 저 집을 오가며 밥을 먹기도 하고 물건을 빌려주기도 했다. 우리 집과 영순 집은 비슷한 구조였는데 다만 우리 집 정원이 더 다채로웠다는 게 달랐고 나는 그걸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제일 끝에 있던 선희네는 모든 면에서 달랐다. 과욕을 부린 듯한 우리 집 정원과는 달리 선희네 마당은 소박하나마 품격이란 게 있었다. 잔디가 깔린 마당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 그리고 철쭉 몇 그루.
마당을 지나 매끄러운 돌계단을 올라가면 현관이 있었다. 나무로 된 현관문에 달린 구리 손잡이는 쓸데없이 사치스러운 느낌을 주었는데 그런 구조의 집은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소읍에서는 흔치 않았다. 한마디로 세련된 집이었다.
집만 그런 게 아니라 선희와 선희 엄마도 달랐다. 선희 엄마는 키가 크고 예쁘고 명랑했다. 엄마를 그대로 빼닮은 선희는 까무잡잡한 피부 때문에 꼭 외국 아이 같았다. 우리 엄마와 영순 엄마가 늘 몸빼 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에 비해 선희 엄마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홈드레스를 입었다. 그러니까 노동에서 벗어난 여자의 모습이었고 악착같이 살 이유가 없는 모습이었다.
선희 집에는 소파도 있고 우리 집보다 큰 텔레비전도 있고 무엇보다 태엽을 감았다가 놓으면 ‘엘리제를 위하여’가 흐르는 가운데 천천히 돌아가는 예쁜 인형이 있었다. 다리를 한껏 뒤를 올리고 팔을 허공으로 띄운 발레리나는 한쪽 발로 선 채 빙빙 돌아갔다. 머리털이 빠지고 한쪽 다리가 헐거워진 내 인형과는 달랐다. 나는 몇 번이나 태엽을 감았다 놓으며 마음속에 그 모습을 담아놓으려 애썼다.
이런 선물을 가져다주는 선희 아버지는 기자였다. 마을에서 박 기자로 통했던 선희 아버지는 집을 비우는 일은 잦았지만, 도시에서 가져오는 좋은 물건들이 많았다. 영향력 또한 막강해서 늘 자신만만한 태도로 대문을 나섰다. 그러나 정작 선희네가 내게 남긴 강렬한 인상은 다른 일 때문이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나는 선희와 놀려고 선희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선희야.” 대답이 없었다. “선희야 놀자.”
현관문이 조금 열려있는 걸 보고 계단으로 올라갔다. 집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열린 문 가까이로 다가갔을 때 나는 왠지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다시 한번 선희를 부르려다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말려 올라간 홈드레스 아래로 길고 매끄러운 선희 엄마의 다리가 문틈으로 보였다. 한쪽 다리는 소파 아래로 떨어지고 한쪽 다리는 선희 아버지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바지가 반쯤 내려간 선희 아버지가 그녀를 누르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무엇을 위해서인지 모르게 서로에게 격렬했다.
나는 죄를 지은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들의 모호하고 열정적인 행동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지만, 몹시 무서워 숨을 쉬기 어려웠다. 돌아 나오는 내 발소리가 천둥소리만큼 큰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만 그 집들을 기억했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가 말했다.
“거기가 터가 안 좋았어. 골목 따라 쪼르르 세 집이 있었잖아. 그리고 우리 뒷집까지. 네 집이 비슷한 시기에 집을 지었는데 얼마 못가 모두 흉한 일을 당했지. 영순 엄마가 갑자기 병들어 죽고, 뒷집 아줌마도 죽었어. 박 기자네? 다들 굽신거리던 박 기자 아니니. 그런데 거기도 뭔 뇌물을 먹었는지 어쨌는지 회사에서 잘려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어. 나도 그 집에서 삼 년 동안 아팠잖아.”
“터가 안 좋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 땅이 원래 물이 많이 고인 곳인데 위에 모래를 덮고 집을 지은 거야. 그러니 옳은 땅이라고 할 수가 없지.”
엄마는 복잡한 인간사를 단 한마디로 정리해 버렸다. 터가 안 좋아서 그렇다고. 그러나 그 말에는 묘하게 설득되는 면도 있어서 다른 이유를 더 찾게 되지 않았다.
‘옳은 땅’에 서지 못했던 집들. 축축한 물이 나오는 땅 위에 지어진 집들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엘리제를 위하여’가 흘러나오던 인형도 그 아래 잠겨버렸을까. 골목을 가득 채우던 소리들도.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던 선희 부모님의 뒤엉킴도.
내게는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되었던 골목과 이웃집이 그런 결말을 맞은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때 그 아이들은 잠겨버리지 않을 기억을 타고 '옳은 땅'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그게 아이들에게는 옳은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