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도 2
진도는 믿었던 주인에게 배신감을 느낀 탓인지 한동안 시무룩하게 엎드려 있기만 했다. 연장된 삶에 대해 비관했던 걸까? 개를 파는 것은 우리 동네에서 흔한 일이었지만 오빠와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었기에 그 일이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진도와 우리 사이에는 예전과는 다른 감정이 흘렀다. 진도의 죽음이 유예되었을 뿐 종결된 건 아니라는 불길한 느낌도 들었다. 진도는 간혹 고개를 들고 눈을 껌뻑거리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고통과 서글픔이 흐릿하게 담겨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도 소리를 지르며 진도에게 달려가지 못했다. 그냥 진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 지내고 있었어?” 그러면 진도는 혀를 내밀어 내 손을 핥았다. 따뜻하고 까슬한 혓바닥이 축축했다.
그 시절에는 개를 산책시킨다는 개념이 없던 때라 오후가 되면 진도 목에 걸린 줄을 풀어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러면 진도는 코를 킁킁거리며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진도에게 필요한 운동시간을 주는 것이고 진도는 자유로운 발걸음으로 본성대로 뛰어다니다 상당히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먹곤 했다. 아버지는 툇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진도와 우리를 번갈아 보았지만, 개를 판다는 말은 다시 하지 않았다. 우리의 저항이 그토록 강렬할 줄은 아버지도 몰랐던 듯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아침부터 비가 왔기 때문에 아버지는 일하러 가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는 비가 그쳐서 마당 앞 공터와 수돗가의 대추나무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툇마루에 던지고 진도를 불렀지만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나는 놀란 나머지 “아버지 진도 어디 갔어요?”라고 다급하게 물었다.
“지루하게 잠만 자길래 줄을 풀어줬어. 어디서 놀다 올 거다.”
방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던 아버지가 말했다.
그 말에 비로소 안심한 나는 배를 깔고 누워 국어 숙제를 했고 거의 다 마쳤을 때 작은 오빠가 들어왔다. 오빠도 진도가 있던 곳을 둘러보더니 같은 걸 물었다. 숙제를 다 했는데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아서 오빠와 나는 공터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녹슨 미끄럼틀로 나가 놀았다. 그마저도 좀 시들해지려 할 때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 있던 오빠가 참외 밭이 있는 쪽을 향해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진도 온다.”
나는 고개를 쭉 빼고 오빠가 가리키는 곳을 봤지만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저 녀석 걸어오는 폼이 이상하다.”
“이상하다고? 왜?”
“모르겠다. 어디 아픈지 힘이 하나도 없다.”
오빠는 미끄럼틀에서 내려와 참외 밭 쪽으로 달려갔다. 나도 뒤이어 달려갔다.
진도가 이상했다. 녀석은 눈이 완전히 풀린 채 곧 주저앉을 것처럼 걷고 있었다.
“애가 왜 이래? 아픈가 봐?”
오빠는 아무 말도 없이 진도를 부축하다시피 하며 집으로 데려갔다.
"아버지 진도가 이상해요.”
내가 방을 향해 소리치자 아버지가 잠에서 금방 깬 얼굴로 마당을 내다보다가 다급하게 뛰어 내려왔다. 그때 이미 진도는 마당에 쓰러져 입에 흰 거품을 뿜어내며 사지를 버둥거렸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진도에게서 떨어졌다.
“어허 저놈이 쥐약을 먹었구먼."
아버지가 후다닥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물그릇에 무슨 약을 타서 늘어져 있는 진도를 일으켜 먹이기 시작했다. 약물의 반은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나머지 반만 겨우 진도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오빠와 나는 한쪽으로 물러나 얼어붙은 듯 서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다시 한번 약물을 먹였지만, 진도는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고 털썩 땅바닥에 드러눕고 말았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그 사이 아버지는 이발관으로 달려가 아저씨를 데리고 왔다. 이발관 아저씨가 진도의 눈을 뒤집어 보고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도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안 되겠는걸.”
흰 거품을 한 번 더 게워낸 진도는 그저 하늘을 향해 멍한 눈을 열어 놓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진도가 죽어간다는 걸 알았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진도야 죽으면 안 돼.”
나는 진도에게 달려가 길게 늘어진 몸에 얼굴을 묻었고 가늘게 뛰고 있는 심장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축축하게 젖은 진도의 몸에서는 비 냄새가 났다. 내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오빠도 다가와 울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슬픔만이 진실하고 나머지는 비현실적일 뿐이었다. 아버지도 아저씨도 대추나무도 모두 흐릿하게 일렁이기만 했다. 그리고 진도는 잠시 꿈틀거리더니 이내 꼼짝하지 않고 죽어버렸다.
아버지는 울고 있는 나를 진도에게서 떼어냈다. 진도는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마당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보통 때처럼 움찔거리거나 크릉 거리던 것과 달리 진도는 어떤 움직임도 없이 목재소의 나무토막처럼 단단할 뿐이었다. 고통은 사라지고 차라리 평온함이 진도 주위를 감쌌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무언가가 죽는 것을 보았다. 되돌릴 수 없는 결정적 변화. 더는 움직이지 않는 것. 현재는 멈추고 과거가 불현듯 되살아나는 것. 진도와 함께 뛰어놀던 일이 한꺼번에 내 마음속으로 달려 들어왔다. 죽음은 그런 것이었다.
그때까지 진도에게 다가오지 못한 오빠는 그 자리에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때때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낼 뿐이었다. 다시 비가 올 것처럼 회색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고, 오빠는 멍청하게 입을 벌린 채 자신 속에 회오리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이해할 수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
죽음의 목격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마도 그것은 삶의 교육 중 하나였을 것이다. 죽음은 흔한 것이고, 피할 수 없는 것이고, 갑작스러운 것이라고.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복잡한 것이라고. 하나의 눈빛이 사라질 뿐이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심연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세월이 흘러 오빠는 아버지의 죽음을, 나는 오빠의 죽음을 목격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진도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을 다시 떠올린 것은 그렇게 먼 훗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