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생 16

by 열매

# 사랑하는 나의 친구, 돈가스 앞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에 앉아 나는 처음으로 먼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에 한껏 들떴다. 인생의 조건은 나름 형평성이 있어서 아버지의 난동을 감내하는 것 말고 내게 금지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는 나 혼자 서울을 간다고 해도 걱정하지 않았고 잘 다녀오라고만 했다. 부모님의 방목적인 교육태도는 무슨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라 단지 먹고살기 바쁜 탓이었지만, 자립심을 키워주기에 더없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학창시절 동안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건 커다란 축복이었다.

전학 온 지 일 년 만에 소미는 엄마의 전근으로 다시 서울로 돌아갔고 헤어진 이후로도 우리는 줄곧 편지를 주고받았다. 소미는 서울로 돌아오니 좋다고, 이제 제자리를 찾은 것 같다며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고 했다. 하지만 너를 잊은 적이 없으니 방학 때 자기 집에 한 번 오라고 했다.

고속버스는 내내 북쪽을 향해 달렸다. 특별할 게 없는 풍경이지만 나는 창가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다가왔다 멀어지는 산이나 과수원 혹은 공장 건물들을 바라봤다. 내리쬐는 햇볕 아래 세상은 넓고 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창밖을 보는 동안 내가 늘 바라왔던 건 이런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것이 있다고, 다른 곳이 있다고 말하는 움직임. 흰 뭉게구름은 산언저리를 슬쩍 건드리며 멀어졌다. 나는 미래에 대해 특별한 희망을 품지 않았지만 -예를 들면 선생님이 된다든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난다든가 하는 것들- 어른이 되는 것에는 조급한 설렘이 있었다. 무엇보다 집을 떠날 수 있을 것이고, 지금처럼 불확실성 속으로 직접 뛰어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때야말로 진정한 내 인생이 시작될 것 같았다.

버스는 금강 휴게소에서 멈추었다. 나는 버스 위치를 잊지 않으려 애쓰며 핫도그를 사 먹었다. 수많은 자동차가 줄지어 서 있는 휴게소에는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의 활기로 가득 차서 나는 그 속에 합류해 있는 것이 무척이나 기뻤다. 짧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살갗이 반짝이는 햇볕 아래 하얗게 빛나 보이고, 모든 것이 아무런 무게도 지니지 않은 듯 가벼웠다. 그리고 내가 맛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유의 맛이었다.

아버지에게는 방랑의 피가 흘렀고 그 피는 삼 남매 중 내게 가장 많이 흘러들어온 것 같다. 나의 인생에는 그런 날들이 많았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그 해방감이 무엇보다 달콤하다는 걸 일찍부터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아버지도 자식을 위해 얽매여 살아야 하는 인생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을 게 분명하다. 나는 핫도그를 먹으며 결혼 따위는 집어치우고 세계여행을 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서울로 들어서는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모든 것은 놀랄 만한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지방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은 도로와 높은 빌딩들이 눈길 닿는 끝까지 가득했다. 나는 거대한 서울의 규모에 압도당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이 들었던 승객들이 몸을 뒤척이며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며 “이제 서울에 왔네.”라고 말했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 소미로 대변되던 서울에 왔다.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근처에 이르렀을 때 나는 급작스러운 감각의 혼란과 확장으로 인해 어지러웠다. 고가도로가 둥글게 휘어지며 머리 위로 지나가고, 유리로 된 고층 빌딩이 오후의 햇빛을 반사하며 눈부시게 빛났다. 그리고 8차선 도로를 가득 채운 차들의 행렬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였다. 서울은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것들을 내 마음속에 일으켰다. 그것은 문명의 당당함 같은 것이었다. 자신감과 힘이었다. 내가 살던 지방 도시는 서울에 비하면 그저 시골이라 할 만큼 작은 곳이었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런 놀라움 속에 들어서는 것이 두려우면서도 흥분되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소미가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잘 찾아왔네. 너무 반갑다.”

“서울은 참 멀구나. 그래도 오는 동안 재미있었어.”

소미는 예전보다 더 하얘진 얼굴로 웃고 있었다. 짧은 커트머리는 여전했고 키는 조금 더 큰 것 같았다.

“이모가 널 위해 특별한 요리를 준비했으니 기대해.”

소미가 내 손을 잡고 걸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이 그 손아귀에 담겨있기라도 한 둣 나도 덩달아 꼭 잡았다.

소미의 집은 이층으로 된 단독주택이었고 단정하고 조용한 골목에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소미의 동생과 이모가 나를 맞아주었다. 소미 엄마는 늦게야 퇴근한다며 아쉬워했다. 집안에는 맛있는 냄새로 가득 차 있었는데 휴게소에서 핫도그를 먹은 게 다여서 나는 냄새를 맡자마자 허기가 몰려왔다. 나를 위해 평소보다 빠른 저녁식사를 준비하느라 가족들이 바빠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처음 소미의 집에서 느꼈던 문화적 충격을 다시 한번 받게 되었다.

그날의 메뉴는 돈가스였다. 각자의 자리에는 나이프와 포크가 격자무늬 냅킨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돈가스가 하얀 김을 뿜으며 커다란 접시에 담겼다. 아주 특별한 날에 먹었던 돈가스를 가정집에서 먹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마요네즈에 버무린 마카로니 샐러드도 곁들여졌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저 나이프와 포크를 어떻게 사용할지 걱정이 됐다. ‘오른손이 나이프인가, 아니 왼손인가?’

소미의 이모는 내 앞에 접시를 놓으며 “많이 먹어.”라고 했다. 그녀는 소미의 엄마와 무척 닮았고 목소리도 따스했다. 서울 사람들의 저녁 식사는 나의 여행이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듯 새로운 세상으로의 초대였다. 우리 집과는 다르게 사는 사람들. 품위와 정갈함을 갖춘 사람들. 나는 그 모습에서 그들이 우리 집과는 달리 무언가를 쌓아왔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것은 무엇일까? 바삭거리는 돈가스를 씹으며 나는 소미의 집에 쌓여있는 무형의 유산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나는 조용하고 차분한 소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며 비로소 우리 집의 가계도가 허술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불안한 우리 집의 저녁 식사도 떠올랐다. 언제 엎어질지 모를 밥상 앞에 모인 식구들. 어떤 격식도 품위도 없던 단지 생존을 위한 저녁 식사. 우리에게는 차분히 쌓여온 무형의 유산이 없었고 언젠가 가능할지도 모를 품위 있는 저녁 식사에 대한 희망만이 있었다. 그 희망은 물론 부모님의 고된 노동 위에서였다. 나는 이런 식사가 익숙해 보이는 소미의 가족들을 보며 친구를 우리 집에 데려온 적이 별로 없다는 걸 떠올리게 되었다. 정원이 있던 우리 집을 떠난 뒤로, 셋방살이를 전전하던 도시에서는 누구도 우리 집에 데려오지 않았다. 나는 부끄러웠던 거다. 빈약한 우리 집이. 곧 부서질 것 같은 불안한 우리의 식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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