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 풍수원성당 『오후의 피크닉』
교우촌(敎友村) 뜻.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 시기에,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신자들이 아무도 살지 않은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세운 마을.
서울에서 양평을 넘어 횡성으로 들어서는 초입부에 아주 오래된 성당이 있다. 이름은 풍수원 성당. 횡성 한우, 안흥찐빵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어진지 110년이 넘는 이 곳에서 자연을 만끽하며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야외 힐링 피크닉이 열린다고 해서 가족과 다녀왔다. 사실 와이프가 예약을 서두른건, EBSi 역사강사 '큰별쌤' 최태성 선생님의 역사토크 프로그램 때문이다. 우리 가족 모두 '벌거벗은 한국사'의 애청자인데다, 역사덕후인 첫째가 작년에 최태성 선생님 책으로 한국사 검정능력시험 5급을 따면서, 언젠가 큰별쌤을 뵙고 합격증에 사인받겠다고 벼르던 참이었다. 상대적으로 정보가 소외된 지역을 위주로 강연을 다니시는 분이시다 보니 좀처럼 기회가 없었는데, 때마침 시간이 맞아 토요일 아침 온가족이 횡성으로 출발했다.
마을 어귀로 들어서니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집 뒤편 언덕길 사이로, 큰 나무에 가려져 있는 고딕 서양식 건물이 보인다. 서울역 근처에 있는 약현성당, 계산성당에 이어 우리나라 네번째이자, 한국 신부님으로는 최초로 지은 성당이라고(그전엔 모두 프랑스 신부). 1907년, 당시 약현성당에서 이곳으로 부임하셨던 정규하 신부님이 자본을 거의 들이지 않고 마을 사람들과 몸으로 벽돌을 이고 지고 하면서 피땀으로 지었다고 한다 (첨탑만 중국에서 돈을 들여 가져왔다고). 그래서인지 그 구조가 약현성당을 완전 빼닮았다. 성당 옆 길을 따라 좀더 올라가다보면, 탁트인 동산이 나온다. 주변에 산자락으로 둘러쌓인 넓다란 잔디밭에 자리깔고 누워 청명한 하늘도 보다가 큰별쌤 강연을 들었다.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이곳의 유래는 18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자신이 아끼는 정약용 등을 보호하기 위해 천주교 탄압에 소극적이었던 정조가 죽고 바로 이듬해 어린 순조를 대신해 섭정을 한 정순대비가 명을 내려 전국적으로 가혹한 카톨릭 신자 박해가 일어났다(신유박해/1801년). 수백여명의 신부들과 신자들이 순교하고 다산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유배되자, 자연스레 신자들은 살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 전국 각지로 흩어져야 했다. 그렇게 신자들만 모여서 숨어지내며 함께 살고 함께 기도하는 마을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무렵 용인에 살던 80여명의 신자들이 횡성으로 이주해서 만든 공동체가 바로 이곳, 풍수원 마을이다. 지금 성당 옆에 남아있는 작은 초가집에서, 그들은 신부님도 없이 포교의 자유를 인정받기 전까지 (조불수호통상조약/1886년) 무려 80년이 넘도록, 자치적으로 미사를 지내고 신앙생활을 유지해왔다. 요즘으로 따지면, 국가보안법 위반의 중벌을 피해 숨어지내며 엄혹한 시긴을 견디고 천주교 가치를 실천해온 것이다. 교우촌은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 자유와 평등, 사랑의 공동체를 자치적으로 일궈내고 유지해온 터전인 셈이다. 여기 같은 곳에 서서 주변 자연을 바라보며, 140년 전 그들이 느꼈을법한 감정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토록 지켜야만 했던 새로운 시대 가치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일타강사를 하셨으면 분명 수십배의 부를 누리셨을텐데, 곁에서 짧게나마 바라본 큰별쌤은 자신의 존재보다 더 큰 가치있는 일을 꿈꾸고 겸손하게 무대에 서서 아이들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며 내가 아는 것을 나누는 분 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교우촌이 수호한 자유, 평등, 사랑의 가치는 앞으로 한국사회의 청사진을 보여준거나 다름없다며 그중 사랑이 오늘날 혐오에 의해 가려지는것 같아 안타깝다는 어른들을 향한 메세지도 잊지 않았다. 아이들을 포함해 청중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차근차근 유머를 곁들이여 쉽게 설명하고 눈이 마주치는 아이들 하나하나 다정한 말을 건네는 모습에, 미래 세대들에게 좋은 선물을 주고 싶은 선의가 느껴졌다.
어쩌면 선생님이 오늘 강연하면서 바라보신 잔디밭에 앉아있던 수십여명의 가족 단위 청중들이, 140여년전 이곳 교우촌 마을사람들 모습이 아니었을까. 당시에 이 마을에 신부님 같은 리더는 없었지만, 흔들릴때 공동체를 잡아주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환기시키며, 또 잊혀져가는 가치를 되새기고 미래세대를 위한 애정있는 시선과 목소리를 내던 최태성 선생님 같은 분이 있었지 않았을까 혼자 상상해본다. 진실함과 용기, 이타적 활동과 지혜의 목소리는 듣는이에게 영감을 준다. 흔들리는 나와 우리를 잡아주고, 도랑에 빠진 이들을 건저내며, 뒤쳐진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 덕분에 공동체의 가치가 여러 세대를 거쳐서 무너지지 않고 전수되지 않았을까.
강연이 끝나고, 다음 행사자에게 방해가 되면 안된다고 서둘러 언덕 아래로 내려오신 선생님께 사인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우리 차례가 되고, 수줍게 한국사검정시험 합격증을 내미는 첫째에게 연신 두번이나 악수를 청하며 대단하다고 온몸으로 감탄을 표현하시니, 둘째도 테이블 위로 고개를 내밀며 엄마가 들고온 선생님 책 '역사의 쓸모'를 내민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행사 관계자들에게도 먼저 미소짓고 응원의 덕담을 건네는게 몸에 베이신걸 보면서, 문득 바른 태도와 좋은 인성이 오늘날 또하나의 경쟁력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로 힐링이 되는 횡성의 산자락 풍광과 파란 하늘, 점점 잊혀져가는 유적지에 문화 콘텐츠가 더해져 다시 살아나며 다음 세대를 불러모았고, 그 앞에 서서 잊고 있던 우리안의 것을 일깨워 새로운 인식의 세계로 초대하겠다는 열정 가득한 역사학자가 있다. 강렬한 햇살과 초롯빛깔과 함께, 힐링으로 샤워하는 듯한 오늘의 경험은 온라인 상에 거친말이 범람하는 오늘날 더욱 값진것이 아닐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는 한국사 검정능력 심화에 도전하고 싶단다. 언젠가 단풍이 물든 자연 속에서 큰별쌤과 재회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