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I 조나 버거 『매직워드』
둘째 딸아이는 단호했다. 몇 번을 물어도 그대로다. 옆구리를 간지르고 품에서 못 빠져나가게 붙잡고 협박해도 변함없이 자긴 엄마딸이란다.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고, 아빠는 조금 좋단다. 가끔 와이프 대신 유치원 하원시간에 마중 나간다. 아빠랑은 늘 놀이터에 들렀다가 집에 가기 때문에 아이는 내가 나오는 걸 좋아라 했다. 노란 버스의 차창너머로 아빠를 발견한 아이는 시루떡처럼 환한 표정을 하며 내릴 채비를 한다. 선생님께 배꼽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아이를 꼭 안았다. 기분이 들뜬 아이는 품에서 내려와, 묻지도 않았는데 난 아빠딸이야!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아! 하며 놀이터 쪽으로 내 팔을 이끈다. 혹시라도 집으로 바로 가잔 말이 아빠 입에서 나올까 재촉하는 눈치다. 환한 여름햇살 아래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며 신이 나 앞장서는 뒷모습이 이뻐 지금 기분을 물어봤다. 아빠가 맨날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엄마한테 말하면 안돼~ 말하면 아빠 혼난다아! 그렇게 신나게 놀다가 집에 들어가면 다시 엄마딸이 되는 걸 알면서도 아이의 싱그러운 에너지에 쉽게 넘어가는 걸 보면, 아이에게 아빠딸은 매직워드 같은 건가 보다.
누구에게나 행복과 유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매직워드가 있기 마련이다. 평소엔 모르고 있던 내 안의 공명을 일으키는 단어를 종종 코칭대화에서 만난다. 그 말은 코칭을 받는 고객, 코치이(Coachee)로부터 나온다.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코치는 코치이가 있는 곳에 함께 머무르며 경청한다. 그의 흐름에 따라가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다는 동사적 표현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 혹은 루틴과 계획성이 있는 사람 같은 명사적 표현으로 재진술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원하는 행동이 되고 싶은 정체성으로 바뀌었을 때, 일찍 일어나지 못한 행동의 결과에 대한 자책이나 자기 평가에 벗어나, 일찍 일어나고 싶은 이유, 아침에 새롭게 하고 싶은 것을 파고들며 주도권이 자기 자신에게로 온다. 말로 그림이나 이미지를 그리는 은유도 파워풀할 수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라고 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빛이 나는 단단한 나무라고 한다면, 그 이미지에 젖어 들어 코치이는 그 안에서 스스로 느끼고 알아차리며 내적동기가 충만해질 수 있다. 내 안의 코어에 자리자고 있는 내면의 리더와 연결되는 강력한 메타포와 만날 때, 나의 고유한 주파수와 공명하며 자발적인 힘과 내적자원이 올라오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한편으론, 정체성과 능동성을 부여하는 긍정적인 표현만큼이나, 부정적인 언어 또한 어떤 방식으로 쓰느냐에 따라 상대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 최근 바이올린을 시작한 첫째에게 연습과 바이올린 가방정리 때문에 잔소리를 하고 돌아서서 바로 후회한적이 있다. 피드백을 할 때 그 사람(정체성)과 행동을 구분해서 개선하는면에 초첨을 맞춰야 하건만, 그걸 알면서도 실천하는 게 쉽지 않다. 얼마 전 노인이나 어르신이란 호칭을 시니어로 대체하자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주린이, 헬린이 같은 초보자를 일컫는 ~린이 표현이 어린이에 대한 편협한 인식을 부를 수 있기에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언어 표현을 통해 상대가 지향하는 정체성을 강화하고 격려할 수 있는 마법과 같은 힘이 있는 반면, 우리의 무의식적인 편견이 그 안에 담겨 상대에게 가시를 겨누고 있음을 같이 인식할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