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이데올로기

책 I 이벌찬 『딥시크 딥쇼크』

by 청귤

지난주 AI 관련 책을 몇 권 읽었다. 유독 눈길이 가는 대목이 있었는데 바로 AI시대 리더들의 철학이었다. 그들이 기술뿐만 아니라 사상을 독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챗봇을 잘 가지고 놀아봐야겠단 마음으로 시작한 건데, 난 왜 늘 이런 사회과학적인 요소에 빠지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최근 대화형 인공지능에 우린 열광했고 이 기술을 이용해 생산성을 높이거나 서비스를 출시하는 시도하고, AI가 우릴 대체할 것인가와 같은 담론들은 활발한데 반해, 여태껏 어느 자리에서도 AI시대 리더들의 철학에 대해 논의를 들어본 적이 없다. 거대한 가속화된 흐름을 독점하고 있는 이들 소수의 근원적인 사상에 생각이 미치기 시작하니 꼬리를 물며 계속 이어진다.


미국의 AI 생태계는 피터틸, 머스크, 알렉스 카프 등 민간의 주도하에 계획된 경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지난 수십 년간 혁신이 일어난 소프트웨어 세계로부터 탈피해, 물질세계에서 근원적인 기술 혁신을 추구한다. 지나친 관료화와 규제야말로 이를 가로막는 장벽이라 여기고 정치에 관여해 온 그들의 말과 글에서 자립형 정부, 딥스테이츠 격파, 탈정치의 욕구와 같은 급진적인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장기주의(longtermism), 트랜스휴머니즘(인간과 기계가 결합), 효과적 이타주의(effective alturism), 효과적 가속주의(effective accelerationism), 테크노 낙관주의 등이 이들의 대표적인 사상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인간의 개별성과 다양성보다는 사피엔스 종의 존재론적 위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치 개인이 사회와 집단의 번영을 위해 존재하는 전체주의의 느낌을 자아내기까지 한다. 인류를 단일한 종으로 간주하고 미래 생존확률을 현재 시점으로 끌어와 그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매기고 자원을 배분하는 장기주의(longtermism)자와 초가속주의자의 픽쳐에는, 이성의 빛과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적 자아가 자유-민주-산업을 먹고 자라난 근대적 세계관이 들어설 공간이 없어 보인다. 저들이 그리는 수정 민주주의 혹응 국민국가를 대체할 정치체제는 어떤 모습일까.


중국의 AI 기반 시설 구축의 역사는, 이벌찬 작가가 국가와 천재의 콜라보라고 정의 내렸듯이, 공산주의 국가 주도의 산학연 총동원 전술이었다. 인프라와 상용화 서비스 기반 설립, 인재풀 양성과 정책 지원, 거기에 량원펑을 비롯한 천재들의 결합이 빛을 발하며 첨단 원천기술에서도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했고, 그것이 올해 초 딥시크 모먼트였다. 60년 전 무리하게 추진한 대약진 운동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듯이, 기술 인큐베이팅-테스팅-상용화로 이어지는 중국 정부와 AI 플레이어들의 속도전은 매우 시장 친화적인 동시에 효율적이며, 상업논리를 벗어나 관성을 탈피하는 혁신적 기술돌파를 부르짖는 량원펑은 과감하면서 두려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AI 헤게모니 싸움 속에서 21세기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이 전체 흐름을 설계하고 주도하는 중앙정부 엘리트 집단들의 최우선 과제로, 그들의 체제 안정화, 공산당 일당체제 유지 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


중국의 계몽은 지난 200여 년간 세속화, 자본주의, 민주주의의 흐름 속에 번영을 주도한 서구의 몰락과 비서구의 역진보 과정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독재와 힘의 논리로 강하게 얼룩져 있다. 미국의 AI 리더들의 움직임은, 막후 권력인 딥스테이츠를 파괴하고 구제도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자유로운 시스템을 향한 운동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인간을 믿을 수 있는가 의문을 떨치기 어렵다. 인류 역사를 보면 자원을 독점한 자가 계속 가지게 되어 있고 권력은 분산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큰손들에게 넘겨져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두 거대 리더십 세력의 이데올로기는 남은 수십억의 지구인들과 논의되는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전 세계가 지금 AI 격량의 시대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250년 전 계몽주의의 출현 이후 오늘날 자리 잡은 민주주의+국민국가 시스템의 미래 모습, 수정 시스템의 방향성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그 합의를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AI주도 세력에 대한 통제와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점, 무엇보다도 이러한 담론이 아직 본격적으로 공론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AI 기술의 악용위험과 일자리에 미칠 영향에 더해 또 하나의 불안요소로 보인다.




작가의 이전글지금 어떤 마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