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떤 마음이야?

책 I 정문정 『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습니다』

by 청귤

"야! 내꺼 가져가면 어떡해 !" 첫째가 베란다에 스티커 모아둔 캔을 열자마자 동생에게 소리쳤다. 캔 안이 휑하니 비어있었던 것이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동생 유치원 가방을 뒤지니 거기에 스티커 도둑(?)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한두번도 아니고 친구가 선물준것 까지해서 동생이 마음대로 자기 유치원 동기들에게 나눠줬으니 첫째가 난리를 칠만도 하다. 야속한 마음에 엄마한테 달려가자 곧이어 둘째를 부르는 엄마의 높아진 언성이 들려온다. 식탁 옆에 서서 꿀먹은 벙어리처럼 귀 쫑긋하며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둘째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여섯살짜리 아이의 절절한(?) 울음소리가 애처로워 얼른 가서 안아줬다. 아빠 품에 얼굴을 파묻은 아이 흐느낌이 더 커졌다. 소파로 데리고 가 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달랜다. 에고, 그래 지금 어떤 마음이야? 눈물이 올라오는 마음이야? 슬픈 마음이야? 아님 놀란 마음이야? 언니가 뭐리고 해서 서러운거야? 평소 같으면 흐느끼며 고개를 젓다가 하나쯤 비슷한 것에 끄덕이는데, 오늘은 상황이 그리 단순치 않은가보다. 울먹이며 뭐라고 얘기를 하는데 지금 마음을 얘기하는건지 그럴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항변하는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응 그렇구나 달래며 등을 토닥여준다. 시간이 지나 진정이 되면서 ”이제 조금 괜찮아진 마음이야" 하고 아이는 나지막하게 속삭이며 품에 내려왔다. 이것은 우리 둘만의 공감과 위로의 방식.


코액티브 코칭 교재에 이런 구절이 있다.

섬김(serving)은 도움(helping)과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도움은 힘의 불균형을 전제로 하며, 동등한 관계가 아니에요. 도울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를 나보다 약한 존재로 인식하죠. 이런 불균형은 자칫 상대방의 자존감과 온전함을 해칠 수 있습니다. 도움은 주는 사람의 힘에 집중된다면, 섬김은 ‘존재 전체’에서 비롯되는 거예요. 섬길 때 우리는 자신의 경험, 한계, 상처, 심지어 어둠까지도 사용합니다. 그런 우리의 불완전함도 섬김의 자원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렇게 섬김은 나의 온전함이 타인의 온전함과 만나는 것입니다. 당신 안의 온전함은 나의 온전함과 다르지 않기에, 섬김은 동등한 존재들 사이의 깊고 진실한 관계입니다."


우린 종종, 공감한답시고 네 마음을 잘 알아, 네 상황은 이럴거야 말하며 초첨에 벗어난 위로를 건네는 실수를 한다. 그런 오해를 피하려고 오히려 입다물고 가만 있기도 한다. 정문정 작가는 ’좋은 사람이 공감능력이 부족한 이유‘란 제목의 글에서, 성숙한 사람들간에 공감법을 말하고 있다. 우리안에 자기 중심성과 그에 비롯된 왜곡된 인식이 말실수를 낳는다는 것. 자기중심적 렌즈로 ~이러면 ~하겠지 하고 가정하에 판단내리다보니 의도치않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개별적인지를 인식한다면, 네 마음이 이렇겠네~란 일방적인 말 대신에 ‘네 마음이 어떤지 궁금해’ 라고 물을 수 있다. 지금 위로를 건네는 내가 중심이 된 공감은 상대의 wholeness 온전함의 공간을 닫는다. 반면, 상대의 개별성을 향하는 공감의 말은 그가 지금 어디에 서 있던지 그곳에 함께 머물러주며, 상대방이 자기 존재 안에서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느끼도록 공간을 열어준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네 가족은 오랜만에 광화문으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쭈뼛쭈뼛 언니 옆에 선 둘째는 어색한 얼굴을 하며 말을 건네지만, 두 눈이 빨개져있는 언니는 대꾸가 없다. 교보문고에 들려 둘째 손에 스티커를 들려줬다. 언제 울었냐는 듯이 해맑은 녀석에게 앞으로 언니 스티커는 가져가면 안된다고 재차 당부하니, "아빠 왜 자꾸 얘기해? 언니꺼 안가져간다니까~!" 하고 메롱하며 뛰어간다. 아침에 내 품에 안겨 울던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미 지난 일이라 알순 없지만 한편으론 이해는 된다. 어른들도 불편한 마음을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려울때가 있으니. 그만큼 말이라는게 상황의 개별성을 충분히 반영하기에 제한적이며 주관적인 생각에 갇혀 있을수 밖에 없기에, 우린 단정하기 전에 물어봐야한다. 지금 어떤 마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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