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 당신 안에 불빛을 띄우는 여정

책 I 송길영 『시대예보 : 호명사회』

by 청귤

어엿한 유치원 형님반인 둘째는 어릴 때부터 적응을 곧잘 했다. 복도에 마주치는 선생님마다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가족끼리 놀러 가서도 자기 친구들 얘기가 빠지질 않는다. 그런 녀석이 어느샌가부터 유치원에 가기 싫단 말을 달고 다녔다. 알고 보니 담임선생님이 그만두고 공백이 두 달간 이어지면서 아이가 마음 둘 곳을 잃어버린 거였다. 새 친구들도 잘 사귀고 얼마 전 소풍도 다녀오면서 마음을 다잡았겠지 했는데.. 오늘 아침 아빠한테 와선 작년 새싹반 김OO 담임선생님한테 받은 거 라며 커다란 방울 팔찌를 자랑하듯 보여주고 돌아갔다. 환하게 웃는 미소 안에는, 일상에서 자기를 케어해 주는 선생님에 대한 허전함이 보였다.


생각해 보면 요즘엔 성인들에게도 '쌤'이 많아지고 있다. 올해 트렌드노트에 따르면 우린 케어의 아웃소싱 시대에 살고 있다. 선생님들은 전문가 포지션을 유지하면서도 친근하게 다가와 일대일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성장과 피드백, 성취를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겠으나, 이젠 부모나 선배, 상사의 가치관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고 각자가 새로운 지식을 찾아 나서야 하는 세상이 왔다. 너무 많은 정보와 변화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자율의 무게는 무겁고, 사회는 실패에 너그럽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우린 안전한 실험실을 찾는다.


이는, 접할 수 있는 정보가 도처에 깔려있고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게 역설적으로도 실패해선 안된다는 불안을 낳고 시뮬레이션 과잉과 위험회피로 이어진다는 송길영 작가의 목소리와 맥락을 같이 한다. 마치 김밥천국에 끝없는 메뉴 리스트를 보고 있으면 선택장애가 생기는 것 처럼. 하지만 우리네 인생은 하나하나 길을 다 체험해 볼 수 있는 멀티버스가 아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 경험하자니 그것도 비효율처럼 느껴지고 해서, 우리는 주변 이들의 삶을 빌려와 내 삶에 비춰보고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길을 찾고 또 고민한다. 초연결사회 속에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최적의 결과를 상정하며 가능성들을 관망의 자세는, 직접 좌절해 보고 극복하는 경험의 기회를 점점 앗아갈 수밖에 없다. 과다한 경쟁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조바심을 느끼다 번아웃되기도 하고 때론 냉소적으로 회피하는 등 여러 행동들을 오가며 번뇌한다.


끊임없는 변화의 거대한 위협에서 첫발을 내딛기 어려운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린 무의식적으로 육각형 인간, 아니 십이각형 인간쯤을 마음속에서 그리고 있는 건 아닐런지. 나에 대한 너그러움과 자기 수용이 절실해 보이는 대목이다. 불필요한 정보를 단절하고, 밖의 번쩍이는 기준이 아닌 내 안에서 비롯된 질문이 필요하다. 난 어떤 가치가 있길래, 어떤 삶을 원하길래, 어떤 비전을 실현하고 싶은지, 궁극적으로 꿈꾸는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나에 대한 명징한 이해가 생길 때, 행동을 주저하게 하는 마음의 문턱이 낮아진다. 직접 좌절, 낙담도 해보고 내 안에 에너지가 다시 차오르는 걸 느끼며 극복하는 과정에 회복탄력성이 생기고, 예상과 달리 흘러가는 여정에서 새로운 새로운 학습이 일어나며 면역이 길러진다. 끝으로, AI 자동화 시대일수록 감성적 연결, 기여하는 마음과 인정과 지지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송길영 작가가 제시한 이러한 관점들은 앞으로 코칭(Coaching)의 역할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칭이 (문제해결 위주의) 일반대화와 가장 다른 점은, 답을 주는 대신 질문을 통해 그 사람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 주고 탐색이 충분히 일어나게 돕는다는 것이다. 내적동기가 충만해질 때 자동적으로, 아니 자발적으로 코치이(Coachee) 안에서 행동이 점화되기 때문이다. 자기 안에 이미 존재하는 힘과 가치를 인식할 때, 코치이는 자기 자신을 수용하며 진정으로 원하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고, 훨씬 더 열린 마음으로 행동이 잘 안 이뤄지고 있는 부분을 인정하고 바라본다. 내 안에 분명해진 삶의 목적, 가치과 지금의 선택이 서로 정렬될 때, 내 안에 공명이 느껴지고 나대로의 삶을 구현해 나가는 에너지가 올라온다. 코치는 코치이에게 안전한 실험실을 제공하며 따뜻하게 감싸고 인정과 격려로 자기 탐색과 변화의 여정을 지지한다.


스토리코프스 설립자 데이브 이세이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에 대해 의미 있는 질문을 하고 이들의 인터뷰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갖게 될지 이야기했다고 한다. ‘서로에게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세상은 영감을 제공한다’는 그의 비전처럼, 각자의 고유한 빛을 품은 사람들이 풍등처럼 건강하게 자립하고 동시에 서로 연결되며 다채로워지는 세상을 꿈꿔본다. 개인의 가능성과 고유성을 통합하여 열리는 미래로 나아가도록 지지하는 동반자로서 코치의 역할은 얼마나 짜릿하고 값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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