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연주

쇼팽 『발라드 1번 G단조』

by 청귤

2001년 초가을. 여전히 햇살이 뜨거운 밖과 달리 대강당 실내는 서늘했다. 어두컴컴한 객석을 가로질러 무대 앞으로 가니 사물이 조금씩 분간되기 시작한다. 스테이지에 올라가 조명을 켰다. 무대 한가운데 까만색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스타인웨이&선스. 윗뚜껑을 들어 올리자 금색 판넬과 빽빽하게 나열되어 있는 굵은 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과묵하게 피아노 내부를 꽉 채우고 있는 든든한 친구들. 스타인웨이 건반은 확실히 무거웠다. 손의 힘이 해머로 전달되어 현을 진동시키자 묵직한 음이 빈 공간에 은은하게 퍼졌다. 그것은 바로, 피아노만으로 연주회를 해보자고 모인, 오케스트라 동아리 선후배 일곱 명의 두 달간 사투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공연장 피아노 적응을 위해 음료수까지 사들고 시설팀을 찾아가 읍소한 끝에 몇주간 대강당 사용을 허락받았던 것이다. 그날을 시작으로, 공강 때마다 서로 번갈아 대강당에 나타나 스타인웨이와 씨름하는 진풍경이 이어졌다.


리스트, 쇼팽, 드뷔시 등 걸출한 곡들로 채워진 레퍼토리 가운데 내가 고른 작품은 바로 쇼팽의 '발라드 1번'. 연습이 시작됐다. 처음엔 운지를 익히기 위해 악보를 펼쳐 들고 한음 한음 천천히 정박으로 건반을 깊게 누르는걸 반복한다. 손가락이 헛도는 구간은 속도를 더 늦추더라도 놓치는 음을 확실히 붙잡고 집요하게 되묻는다. 제대로 눌렀는지, 놓치지 않았는지. 양손으로 건반의 감촉을 느끼며 처음부터 끝까지 터치 하나, 소리 하나를 신경 쓰며 연주해 본다. 머릿속엔, 반복해서 들었던 호로비츠, 짐머만, 폴리니 등 저명한 연사들의 연주곡이 흐르고 있다. 기억에서 파생된 음들이 손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영역과 청각을 통해 들어오는 건반소리와 머리속에서 서로 만나면서 몸이 들썩이기 시작한다. 휘몰아치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르는 이때, 그걸 억누르고 지금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새로운 정보를 몸에 새기는것에 주의를 돌리는 것이 연습의 핵심이었다.


악보를 외우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음과 건반에서 나는 소리가 제법 비슷해지는 시기가 되면, 문득 손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바로 무의식의 집중 단계, 즉 의식적 기억이 저장되는 해마가 아닌 소뇌에 반복 학습 기억이 저장되는 시기다. 오히려 의식적으로 악보를 회상하면 손이 꼬이고 움직임 정지가 온다. 이럴땐 악보를 다시 펼쳐 들고 의식적인 연습으로 되돌아간다. 무의식의 나를 전적으로 믿을 순 없기에 무의식에 운동기억을 보내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탄탄하게 만들어놓고 싶단 욕심이 들어서다. 무너지는 속도, 조잡한 페달, 뭉개지는 음 등 부족한 부분을 조금이라도 바로잡으려고 한번이라도 더 제대로 건반을 누르고 눈으로 악보를 새기려 했다. 스타인웨이와 사투가 이어지고 피로가 쌓이면서 부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손마디가 수시고 손톱이 짓눌려 곪은 상처가 터져 피가 나는게 예사였다. 밤낮으로 두드려댄 덕에 여럿 끊어먹은 동아리방 피아노줄이며 손가락에 늘 붙어다녔던 밴드를 우린 마치 훈장처럼 여겼던것 같다.


단풍이 학교를 덮은 늦가을.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고 내 앞 주자에 이어, 긴장한 채로 무대로 나가서 스타인웨이 앞에 앉았다. 불그스름한 조명이 비춰진 건반은 반들반들 윤기가 나고 있었다. 건반위로 손을 옮기자 앞 프레임에 양손의 일그러진 형체가 희미하게 비친다. 적막의 순간. 서늘한 공기를 뚫고 첫 긴 음을 눌렀다. 건반의 해머가 맞은편 줄을 치면서 생기는 울림을 느낄 새도 없이 연주가 시작됐다. 페달을 밟는 발이 바빠지고, 몸이 앞뒤로 움직이면서 템포를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서서히 긴장이 풀리면서 나와 피아노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에 아늑함이 스며든다. 여유가 생기고 한음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연주는 절정을 치닫는데, 흰건반에 흩뿌려져 있는 핏빛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앞타임의 후배가 연주를 하다가 상처가 터져나온것이다.


몇달동안 서로 의지하며 함께한 고통의 흔적이라고 생각했던걸까. 담담하게 눈길을 거두고 8분간의 연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관객의 박수를 뒤로하고 대기실로 돌아와 후배 손부터 살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너무나도 깨끗했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후배를 보고 더 당황한 난 그제서야 핏자국을 따라 올라가 내 손톱 가장자리에 찢어진 상처가 보였다. 아뿔싸. 내 손에서 흘러내린거구나. 어쩐지, 연주중에 점점 붉은 자국이 번지는것 같더라니. 허겁지겁 수건을 들고 컴컴한 무대로 돌아가 건반을 닦았지만 이미 말라버린 후였다. 건반에 핏자국이 있단 소식에 기겁한 남은 연주자들은 별수없이 나의 흔적들을 노려보며 각자 연주를 마쳤다. 공연은 성황리에 끝이났고, 다시는 이런 고생하지 말자는 다짐을 끝으로 그해 가을이 저물었다. 겨울이 되던 무렵, 우리의 공연 실황을 담은 CD 한장을 건네 받았다.



그로부터 약 1년 뒤 한겨울, 폴란드 바르샤바 인근 소도시의 작은 버스정류장에서 혼자 내렸다.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 주변 산자락과 길이 모두 눈으로 뒤덮인 한적한 시골이었다. 정거장을 착각하는 바람에 긴 코트를 끌고 작은 보폭으로 한참을 걸어서야 겨우 쇼팽 생가 문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얼어붙은 얼굴을 녹이는 따스한 실내 공기와 들어오는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그랜드피아노 위 꽃바구니가 나를 반겼다. 사실 쇼팽의 작품들이 매력적이고 그의 서정성을 사랑하면서도 특유의 병약한 슬픈 정서, 나약함 같은거에 왠지모를 거리감이 늘 있었던것 같다. 발라드를 선택한것도 고전적이면서 낭만적인 힘이 느껴졌기 때문인데, 이 8분 남짓의 곡을 몇달간 찌지고 볶고 하면서 피의 연주의 기억으로 마무리하며 난 쇼팽과 화해를 한 셈이다. 한달 뒤 학교를 들려 우리가 연주를 했던 바로 그 대강당에서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피아니스트'를 봤다. 전쟁 중 폐허 건물에 몰래 숨어 지내다 독일 장교에게 발견된 주인공. 숨이 멎을 듯한 공포 속에서 피아니스트라고 다급하게 고백하며 다락방 낡은 피아노에 앉아 연주한 곡이 바로 쇼팽 발라드 1번이다. 스타인웨이와 비교할 수 없는, 조율이 안된 낡은 피아노는 탁한 음을 내며 거미줄과 먼지로 뒤덮인 방을 울리는데, 그 메아리엔 허무함, 쓸쓸함, 그리고 생사의 갈림길 속에 전력을 다하는 본능적인 역동이 뒤섞인듯이 느껴졌다. 이 운명 같은 재회를 마주하며, 앞으로 살면서 이보다 더 나은 곡을 만날 순 없겠단 생각을 했던것 같다.


이후 세월이 흘러 집에 피아노가 없는게 당연시되는 시간이 길어지고, 첫째가 어렸을때 산 키보드로 뽀로로 노래를 연주해주며 같이 부르곤 했다. 그 애기가 이제 팝송 가사를 주섬주섬 따라 부르는 나이가 됐고,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어한다. 원하는 노래나 음악을 자유자재로 연주하고 싶다고. 내 머릿속에 흐르는 음률을 따라 표현하고 싶은 욕구. 어쩌면 어느 누구에게나 그런 본능이 자기안에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살면서 그것을 표출할 기회를 얻느냐 아니냐의 차이일뿐. 얼마전 비내리는 날, 스레드에서 우연히 발견한 피아노 연습실을 찾았다. 우산을 털고 안으로 들어서니, 전신거울이 펼쳐져있는 공간 끝에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있다. 스타인웨이도, 영화 '피아니스트'의 낡은 피아노도 아니었지만, 옛 추억을 떠올리긴 충분하다. 오랜만에 피아노를 만난 손가락은 자꾸만 미끄러졌다. 오늘처럼 소리가 가라앉는 날, 동아리방에 올라가 빗소리 들으며 많이 연습했었는데. 그땐 레퍼토리도 많았는데 지금은 기억이 다 사라진채 한곡만 남았네 - 쇼팽, 즉흥환상곡. 어렸을때 엄마에게 배웠던 곡이다. 손이 헛돌긴 해도, 몸이 아직 기억을 한다. 아마 죽기 전까지 내 몸에 남아 연주할 수 있지 않을까. 십 년여 만에 반가웠어 그랜드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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