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I 크리스 앤더슨 『테드 토크』
둘째가 책을 들고 쪼르르 달려왔다. 우당탕탕 야옹이의 '케이크가 커졌어요'. 까막눈 아이와 아빠 둘 다 좋아하는 책이긴 한데. 넌 어쩜 매번 같은 거만 읽는거니.. 아이를 앞에 앉히고 책을 펼쳤다. 시작하자마자 아빠! 여긴 이렇게 읽어줘야지! 톤을 높여 가느다란 고양이 목소리를 흉내 내는 녀석의 표정이, 지금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상황이 더 흥미롭고 캐릭터도 호기심 생기게끔 들리고, 힘든 구간은 공감이 가면서 마지막엔 고조된 흥분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작은 몸짓에서 전해졌다. 마치 야옹이들 무리에 들어가 동참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끔 해달라는 듯이.
듣고 싶게 말하는 것. 말의 부분마다 어조를 달리 써가며 감정을 실어 말하는 것. 책 '테드 토크'에 그 대표적인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아래 조지 몬비오의 연설 영상을 보자. 내용을 떠나서, 높아졌다가 낮아지며 역동으로 움직이는 톤은 롤러코스터 같은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뿜어내고 있다. 큰 손동작과 좌우를 왔다 갔다 하는 움직임 안에 자기중심이 꽤 단단해 보이고, 진정성이 담겨있는 음색은 리듬을 타고 마치 노래처럼 들린다. 단어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넣는 그의 목소리에서 몸 안에 진짜 자기가 소리치고 있는 듯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말을 하는 행위는 책을 읽거나 또는 소리 내어 읽는 것과 분명히 다른 뭔가를 전달하는 게 틀림없다.
생각해 보면, 유튜브 덕분에 테드, 세바시를 포함한 강연 채널들과 유퀴즈 같은 인터뷰 포맷의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으며 계속 생겨나고 있고, 거기에 더해 브이로그, 토크콘서트, 팟캐스트가 재유행하는 등 가히 '말하기 콘텐츠'의 전성시대다. 내 유튜브 구독 목록에도, 알릴레오 북스, 조승연의 탐구생활, B주류경제학, 과학하고 앉아있네, 김지윤의 지식플레이, 최성운의 사고실험 등 다 기억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말하기 채널들이 거쳐갔다. 예전에 주로 어떤 집단을 대표하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소위 전문가들이 토크쇼나 강연의 지분을 차지한 것과 달리, 요즘은 개인 유투버라고 하더라도 말이 되는 얘기라면 우린 귀를 기울인다. 우리가 신뢰하는 대상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이동했고, 훨씬 넓은 스펙트럼의 이야기를 앉아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진 세상이다. 내경우에도 테드나 세바시, 유퀴즈를 찾아보기 보단, 그때마다의 관심사에 따라 영상들을 검색하다가 내 취향과 결이 맞는 스피커나 채널을 만난 경우가 훨씬 많으니.
다른 장르에 비해 말하기 콘텐츠가 가진 유익성은 뭘까? 위에서 언급했듯이 글과 달리 말이 가진 특별한 힘이 있는 게 분명하다. 힘이 있는 말은 가슴에 울림을 준다. 머리로 무장한 청자가 방심한 틈에 살짝 밀어주는 넛지와 같은 설득과 공감의 힘이 우리 목소리 안에 있다. 그건 말하는 사람의 진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지혜일 수도 있고, 또는 전해지는 이타심일 수도 있다. 게다가 오늘날 우린 주변 사람들과의 피상적 대화나 반복되는 토픽에 굳이 갇혀있을 필요가 없다. 물리적으로 쉽게 가닿을 수 없는 넓은 세계를 스마트폰 하나로 쉽게 탐색하며 나의 가치나 바램과 공명하는 이들의 고유한 이야기와 만날 수 있는 환경 속에 살고 있다. 그렇게 세상의 말을 내 삶에 가져와 모사하면서 나를 더욱 이해하게 되고 새로운 생각이 솟아오를 때, 우린 성장의 뿌듯함 같은 걸 느끼게 된다. 그것이 바로, TED가 주창하는, 넓은 세상으로 퍼지는 지식의 융합, 사람들의 융합이자 창조의 순간이다. 자기가 가진 아이디어의 부족함이나 남을 의식하는 마음을 벗어던지고, 사람들을 새로운 세계로 초대해서 선물을 주려고 용기를 내는 살마들이 많아지면서, 모두가 더 넓은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힘을 만들어내고 있다.
코칭(Coaching)도 분명 말하기에 기초한, 두 사람 간의 강력하고 역동적인 대화다. 대본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것에 함께 있으면서, 대화의 톤, 분위기 그리고 뉘앙스가 공간을 지배한다. 코치가 말하고 있는 단어보다 어쩌면 그걸 어떻게 말하는지에 더 많은 정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말하지 않은 것들도 상대에게 영향을 끼친다. 서로 완전히 몰입해서, 누가 리드하는지 모르는 강한 연결된 느낌 속에서 그 흐름을 신뢰하고 서로에게 솔직하게 의존하는 대화가 가장 이상적인 코칭의 모습이다. 며칠전 유시민 작가가 그랬다. 대선토론의 목적은 상대 망신주기도 아니고 지식자랑도 아니며 결국 토론이 끝나고 남는건 태도의 느낌이라고. 코치인 나와의 대화는 어떤 느낌을 남길까. 코치이(Coachee)들의 열의 아홉은 내 목소리에 대해 말한다. 편안함과 안정감, 내 말을 들어주고 같이 있어 주는 느낌. 아마 개개인들의 정의는 다르겠지만, 그 느낌들의 총합이 코치로서 나의 말이 주는 인상 아닐까? 중요한 건, 말의 톤, 템포, 스텝이 서로 맞아 춤을 추는 것 같은 경쾌함과 가끔의 침묵이 전적으로 고객의 배움과 발견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코치의 말은, 코치의 자랑도 아니고, 고객 띄워주기도 아닌, 고객의 변화를 향해 늘 있어야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옆눈길로 둘째의 실루엣이 스쳐 지나갔다. 동화책 읽어줄까? 방바닥에 앉으니 아이가 품으로 쏙 들어온다. 양손엔 빤짝빤짝 분홍빛의 캐치 티니핑 책이 들어있다. 또너핑? 얜 또 누구야? 제작자도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티니핑들이지만, 굵고 낮은 목소리의 티니핑은 상상할 수 없다. 가라앉은 목을 얼른 가다듬었다. 첫 장을 펴고 읽기 시작하는데, 이번엔 아이가 신이 나는지 히죽히죽 웃는다. 아빠가 읽다가 갸우뚱거리면 지가알아서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책이 끝날즈음에 아이를 감싸고 있던 양 팔로 꼬옥 안았다. 아빠 품에서 탈출하려고 바둥거리는 아이의 시선은 멋진 로열티니핑이 되고 싶은 또너핑과 그게 얄미운 하츄핑에 가있다. 책에다 뽀뽀를 날리며 황급히 자리를 뜨는 녀석. 일어나 다시 모니터 앞에 앉는데, 아이가 쫓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빠 이것도 읽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