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다쓰루에게 보내는 편지

책 I 우치다 다쓰루 『무지의 즐거움』

by 청귤

안녕하세요. 우치다 다쓰루 님.


저는 40대 남성 한국인입니다. 며칠 전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있었던 'Movement' 내한 강연을 통해 선생님의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그날은 제게 참 혼란스러운 날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수습해야 하는 일이 있어 행사 시작 직전까지 아트센터밖에서 통화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늦은 저녁 일정 때문에, Q&A 세션 도중에 강연장을 빠져나왔어야 했었죠. 그 사이에서, 까만 객석과 환한 무대 공간을 선생님과 100여명의 참석자들과 함께 몰입감있는 두시간을 보낸 기억이, 마치 웜홀을 타고 우주여행을 하고 온 느낌입니다.


그날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선생님의 지혜를 전도하길 바란다는 박동섭 교수의 말씀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아마 제가 아닐까 싶어요. 송구스럽게도 이번 기회에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아이브매거진의 강연 초청 이메일에 뭔가 모르게 이끌려 신청을 했고, 책 '무지의 즐거움'을 사서 하루만에 읽으면서 매우 강렬한 느낌에 빠져들었습니다. 선생님 표현을 빌리자면, 뇌의 어느 부분이 전기가 통해 강연도 듣기 전에 이메일을 드려봐야겠다, 어떤 질문을 드릴까 하는 지적 흥분이 일어난 상태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강연장을 홀로 빠져나올 때, 손에 들고 있던 '무지의 즐거움' 책의 마지막 빈 페이지는 강연 중에 필기한 글자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습니다. 며칠간 그 어떤 힘이 저를 끌어당긴 걸까요. 우연이면서 필연이다는 선생님 말씀을 떠올리며, 이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몇자 적어봅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미 안다는 것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의식하고 있는 저를 느낍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정직한 글쓰기를 체험해보고 싶었던거죠. 사실 이건 제겐 너무 힘든 일입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한때 책을 읽기도 전에 어떻게 흘러갈지 알겠다는 얄팍한 생각을 하고 있는 저를 보면서 허영과 아집에 스스로 부끄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믿었지만 실제로는 제 틀 안에서 제한된 공감을 하고 있었고, 그 바깥을 무의식적으로 재단하고 있었던거죠. 그때부터 제 안에서 올라오는 '이미 안다'는 생각을 관찰했고, 서서히 그 틀이 부서지면서 '모른다'는 생각이 대신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잘 모르거나 제 생각과 다른 문장들을 쫓으며 독서를 했고,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면 무작위로 집어들어 읽었더랬습니다. 생각의 틀이 깨지는 쾌감을 즐기는, 제 나름의 무방비 독서법이랄까요. 새로운 관점들이 제 안으로 전보다 편안하게 들어오는 걸 느끼게 됐고, 전 그걸 다름과 융합의 출발점이라고 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세의 근본적인 이치가 '무지의 즐거움'에서 아주 쉽고도 깊게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것, 옳다는 믿는 생각 이것 저것에 붙잡혀 그 덩어리가 점점 불어나는걸 멈추지 못하면서 속이 시끄러운 한편 신이 났었죠. 따라서, 이 책에 대해 '이미 안다'는 덫을 완전히 피한 글을 쓴다는건 저에겐 불가능하다는걸 먼저 고백합니다.

그러한 복잡한 소음들로부터 떨어져 고유한 저만의 신호를 찾아가는데 도움이 된 메타포가 있습니다. 바로 ‘바다 수영' 입니다. 옳다고 믿는 것, 이미 아는 것,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끌림에 휘둘리지 않고 유유히 흘러가는 생각 덩어리가 무지의 바다에 다다르는 이미지가 떠올랐거든요. 풍덩~! 캄캄한 바다 깊이 가라앉으면서 바닥이 닿지도 않고 끝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본능적으로 육지에서 익힌 어설픈 수영 영법을 해보지만, 파도가 치는 가운데 치열하게 팔다리를 휘저을수록 점점 늪에 빠지는것 같죠. 그치만 템포를 늦추면 나만 뒤처질 것 같고 가라앉을 것 같은 불안감때문에, 내 안에 패턴화된 성공 방식과 가정들을 붙잡고 최적의 솔루션을 찾으려 들며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고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몸에 힘이 빠질 무렵, 해류의 고유한 율동과 흐름, 부력을 느끼며 자연스레 몸을 맡기라는 새로운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쉽게 답할 수 없는 물음 앞에 서서 몸에 힘을 빼는건, 사실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일겁니다. 과거 성공으로 이끌었던 틀을 내려놓고 무지의 상태, 그 역동성을 느끼며 거기에 머무르는 것,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을 삼키려 들지 말고 지금 내 몸에 어떤 것이 새겨지는지를 하나하나 느끼는 자세, 그 조각들이 모여 어느 순간에 다다르면 새로운 차원의 이해가 일어나 우릴 한단계 성장시킨다는 믿음. 언젠가 내 안에서 비늘이 되고 아가미가 될때까지 그 미세한 조각들을 모으고 붙잡아 두기 위해서라도 우린 늘 깨어있어야 하는 거군요. 그래서 책 서두에, 판에 박은 듯한 루틴을 지키고 잠념과 변수를 배제한 칸트를 강조하신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나는 안다는 틀이 무너진 자리에 또다른 생각을 들여와 그럴싸한 모양의 틀이 자라나는 그곳에, 선생님의 무도적 사고가 균열을 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기술이 잘 통했을때 그게 최적의 해법인냥 의지하려 들거나 틀을 만들려는 욕구를 내려놓고 똑같은 상황을 무심하게 대처하는 영원한 초심자 마인드는, 사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코칭(Coaching) 공부에도 적용될 수가 있습니다. 무지의 바다에 푹 젖어들어 나의 오류와 한계를 자각하며 동시에 조급해하지 않는 태도가, 어쩌면 얄팍한 성취와 맥락에 기대어 마음 편하게 먹으려는 순간 올라오는 교만과 주저앉음을 피할 수 있다는 거죠. 계속 나타나는 경우들을 비추어보며 자기 쇄신을 반복하며 먼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라고 저에게 격려하는것 같습니다.


이러한 배움의 사고방식이 만들어낼 새로운 지적 영감을 기대하며, 개인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실험들을 해나가며 계속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무너진 틀에 어떤 것이 자라날지 궁금하네요. 그 지점에 서서 또 어떤 생각, 어떤 질문을 하게 될지 지금은 모릅니다. 다만, 선생님의 글과 말이 지금 이 시점에서 저를 움직이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훗날 변화의 흐름을 돌아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 될거라 생각됩니다. 이 목소리가 요번 Movement 강연의 웜홀을 뚫고 나오는 신호들 중 하나로 선생님께 가닿기를 바래봅니다.


우치다 다쓰루 'MOVEMENT' 내한강연 (from 아이브매거진 인스타그램)




에필로그.

대통령 선거날 아침, 작가님으로부터 귀한 답장이 왔다.

"In my past lectures in Korea, I have often given speech on educational issues or population decline. This time, I received the theme of 'Japan-Korea cooperation'. After thinking about what to say, I asked myself, 'What topics are least discussed by the Korean intellectuals?' The answer was what I spoke to the audience : marxian style of thinking and ideas of Budo. But, I had no experience in how to make Korean audiences to understand the ideas, so I had to speak what came to mind on the spot."


어쩜 우린 점점 더 알아야만 되고, 안다고 믿으며 조급해지는 세상에 서 있는게 아닐까. 반면 도와주세요 그리고 모른다는 얘기를 하기 힘들어지는. 그래서 무지의 즐거움, 무도적 사고에 대한 작가님의 신호가 우리안의 틀에 균열을 내는 느낌을 받았던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이브매거진 송주환 편집장은, 수많은 소음들 가운데 한국과 일본 양국의 Movement를 만들어낼 신호로서 우치다 다쓰루 작가를 우리 앞에 등장시켰다. 그리고 작가는, 우리 안에 내재된 무도적 사고와 수행의 법을 일깨우라는 신호를 명확하게 던지고 있다. 그에게 철학은 목구멍에 걸린 작은 가시처럼 잘 씹어 삼키기 어려운 것이 이해되지 않은 체 내안에 쌓여 오랜 기간동안 안고 살아가는 거라고 했다. 가시가 쓱 하고 씹어 삼킬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올때까지.


나에게 아이브 매거진도 비슷한 느낌이다. 알거 같으면서,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 계속해서 마음에 걸려 있다가 시간이 흘러 어떤 책을 보거나 얘기를 하다가 납득하게 되는 것. 우연인듯 필연적인 오프라인 연결을 통해 묵혀있던 것들의 해소와 더불어 새로운 것이 쌓였고, 내 자신이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들의 앞으로의 행보를 따라가며 또 어떤 매듭이 풀어지고 나의 궤도가 기분좋게 뒤틀려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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