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혹은 ‘무모함’ - 첫 번째

길 위에서 인생의 길을 찾다. - 유럽

by Smare

혼자 하는 여행을 준비하면서 꽤나 계획적이고 철저하게 사전 준비를 하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2달 정도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의 여행은 수많은 변수와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고, 나름대로 야심 차게 준비했던 출발 전 일정표는 어느 순간부터 참고자료가 될 뿐이었다.

여행이 마무리되고서야 들었던 생각 이긴 하지만, 아마 그렇게까지 많은 변수와 수많은 일들이 생길 것을 미리 알았다면 굳이 그 와중에 무계획 여행을 시도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다.

처음 여행을 시작하면서는 무슨 마음이었는지 ‘진짜’ 배낭여행을 해보자 싶은 생각에 하루나 이틀 정도는 계획 없이 무작정 도시를 찾아가는 여행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었다. 철저하게 계획에 따른 여행보다는 한번 정도는 무작정 찾아간 도시에서 그곳을 보고 느끼며 알아가 보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더구나 삶을 포기하고 싶던 순간에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심정으로 여행을 떠났던 사람이, 고작 지갑과 카메라를 도둑맞는 일을 경험하며 그 순간 누구보다 삶에 대한 의지와 미련이 남아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나 자신을 보며 한 번 더 스스로를 시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처음 무모한 여행을 시도한 곳은 스위스의 체르마트였다.

사실 이곳은 무계획 여행을 시도해보자 싶은 마음으로 갔던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인찬스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라 한껏 기대를 하고 갔던 곳이다.

호주에서 어학원을 다닐 때 같은 반이었던 스위스 친구가 본인이 사는 마을 이라며 엽서 사진을 보여줄 때 봤던 곳이 바로 ‘체르마트’였다. 사진 한편에 보이는 집이 본인의 할아버지 집이라며 소개해주는데 ‘그림 같은 풍경’이라는 말이 딱 맞는 곳이었다.

영화에서도 보기 힘들 것 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들러 보고 싶다는 말을 했었고 그 친구는 체르마트에 방문하게 되면 본인이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말을 했었다. 당시에는 내가 1~2년 사이에 정말로 유럽여행을 하게 될 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 그저 인사치레 정도로 생각하며 언젠가 꼭 가겠다는 말을 하고 말았었다.

그 뒤로도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았고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을 하자 본인이 하루정도는 가이드를 해줄 수 있다며 반가워했다.

아무리 본인이 사는 곳이고 익숙한 곳이라지만 멀리서 온 친구를 위해 하루의 시간을 내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에 괜찮겠냐고 했지만 그 친구는 흔쾌히 도와주겠다며 숙소도 본인이 예약해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신세를 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아 그건 괜찮다고 했지만 그 친구는 본인이 사는 동네에 오는 건데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며 걱정 말라며 나의 방문을 반겨주는 모습이었다. 그간 메일로만 한 번씩 연락하며 지내왔던 것뿐인데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준다 하니 너무 고마웠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숙소는 내가 직접 예약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비수기 시즌이고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니라서 숙소 잡는 게 전혀 어렵지 않을 거라는 친구의 말에 그냥 가보기로 했다.

친구와 만남이 어긋나도 그 친구의 말처럼 비수기 시즌이었기에 하룻밤 머물 호스텔 하나 잡는 게 그리 어려운 일 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친구와의 만남과 그림 같은 풍경의 체르마트를 기대하며 체르마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체르마트는 자연보호 목적으로 일반 자동차는 운행할 수 없고, 기차 역시 전기로만 움직일 수 있는 열차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여행객들은 체르마트에 인접한 도시에서 열차를 한번 갈아탄 후에 들어가야 한다.

나 역시 열차를 갈아타고 늦은 오후가 돼서야 체르마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체르마트에 도착하니 어느새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기차역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풍경은 마치 레고마을 같은 느낌이었다. 경차 보다도 작은듯한 전기차가 왔다 갔다 하고 커다란 산장을 지어놓은 것 같은 건물들의 모습은 마치 아주 작은 동화 마을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이곳이라면 내가 기대한 동화 같은 풍경을 충분히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설렘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체르마트에 들어가기 위해 열차를 갈아타는 동안 연락을 했을 때부터 어쩐 일인지 그 친구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현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고 번호도 알려준 상태였기에 도착하면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겼었고 전날까지만 해도 도착하면 연락을 달라는 답장이 있었으나 막상 당일에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조금씩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도착 예정 시간을 알려준 상태였기에 ‘설마..’하는 마음으로 일단 기차역 앞에서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니 금세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늦지 않았지만 주변에 산도 많고 시골마을 같은 풍경이라 그런지 유난히 더 어둡고 깊은 밤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차에서 내려 밖으로 나갔을 때는 오고 가는 사람들도 많고, 기차역 앞에서는 관광객을 태우기 위한 택시가 여러 대 줄지어 서 있었다. 그중에 한 기사님은 커다란 짐을 들고 혼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택시가 필요한 줄 알고 나에게 다가와 가격 흥정을 하면서 호텔이 어디냐고 물어보기도 했었다.

당당한 표정으로 지인이 나올 거라 괜찮다며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거절을 하고는 기차역 앞에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다른 택시 기사들도 오며 가며 한 번씩 나에게 눈길을 줬지만 누가 봐도 일행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 느껴졌는지 한두 명의 아저씨만 다가와 흥정을 하고는 다른 사람들은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로 붐비던 기차역도 어느새 사람들이 거의 없어지고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가격 흥정을 하던 아저씨는 그사이에 손님을 태우고 갔다가 돌아와서 다시 또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역에 불이 켜져 있기는 했지만 오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줄어들기 시작하자 조용해진 기차역은 어느새 적막감이 맴돌며 조금 더 어두워진 느낌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볼수록 사람은 하나둘 사라지고 어둠은 더 짙게 깔리는 모습에 조금씩 더 불안해지며 긴장되기 시작했다.

만나기로 했던 친구는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았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을 하던 그때 처음 나에게 택시가 필요하냐고 물었던 아저씨가 다시 한번 다가왔다. 처음 가격 흥정을 할 때와는 다르게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모습으로 다가와서는 친구가 오는 게 맞는 거냐 물었다.

울리지 않는 휴대폰만 들고 나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 보이자 이번에는 숙소는 예약한 거냐 물었다. 똑같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 보이자 ‘후~’ 하며 한숨을 쉬고는 약간은 격앙된 표정으로 당장 숙소부터 잡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뒤에서 같이 손님을 기다리던 다른 아저씨 몇몇도 진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며 한 마디씩 거들었지만, 사실 친구와 연락이 닿지 않고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기차역을 보면서 점점 불안감에 휩싸였던 나에게는 그런 말들이 잘 들리지도 않았다.

여전히 멍하게 있던 나에게 아저씨가 한 번 더 큰 소리로 외쳤다.


“Zermatt! Zermatt is different!!”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나에게 한 번 더 여기는 체르마트라고 외치더니 마지막 열차가 들어오면 아무리 호스텔이라 해도 더 이상 체크인할 손님이 없기 때문에 리셉션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설명을 해주셨다.

숙소를 예약한 게 아니면 일단 당장 숙소부터 잡고 체크인을 하고 나서 기다려도 기다려야 한다며 예약한 숙소가 없다면 본인이 안내해 줄 테니 일단 이동부터 하자고 제안했다. 이 아저씨를 믿고 따라가도 되는 걸까 싶은 불안함이 있었지만 사실 더 이상의 기다림은 무모했고 별다른 선택권도 없는 상태였다.

친구하나 믿고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이 이 마을에 들어선 나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과 적막해진 주변 풍경에 두려움이 느껴져 자연스레 아저씨를 따라나섰다.

레고 자동차 같은 택시에 올라타니 아저씨는 빠르게 기차역을 벗어나 마을 골목길로 접어들며 다시 한번 강한 어조로 숙소부터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 가는 곳이 그나마 늦게까지 체크인을 받는 곳인데 혹시 모르니 본인이 앞에서 기다려 준다고 했다.

아마도 체크인 카운터가 문이 닫혀 있으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해서 그런 것 같았다.

마을 자체가 크지 않은 곳이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숙소에 도착했다. 일단 체크인이 가능한지 확인해야 했기에 짐도 내리지 않고 호스텔로 뛰어들어갔다.

호스텔 문이 열리자마자 정면에 체크인 카운터가 보였는데 카운터 위의 블라인드를 내리는 직원과 눈이 마주치며 둘 다 정지 상태가 됐다.

그 직원은 마치 ‘....?? 누구세요?’와 같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블라인드를 내리던 손은 멈춘 채 나를 바라봤고, 나는 앞으로 달리며 열고 있던 문을 붙잡은 채로 멈춰 서서 그 직원을 바라봤다.

그렇게 약 2~3초간의 정적이 흘렀고 내가 먼저 직원에게 다가가며 숙소에 머물 수 있냐는 질문을 던지고 나서야 정적이 깨졌다. 직원은 여전히 놀라서 동그랗게 뜬 눈과 블라인드에 올려진 손을 내리지 못한 채 가능하다는 대답을 해주었다.

땡큐를 대여섯 번 정도 반복 하고는 일단 택시를 보내고 오겠다고 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내가 들어갈 때와 똑같은 자세로 창문밖을 빼꼼히 내다보던 아저씨가 내 표정을 보고 이미 알아차렸는지 ‘Good~ Good~’ 외치며 짐을 내려 주셨다.

택시비를 결제하면서 아저씨에게 열 번이 넘게 감사 인사를 했고, 아저씨는 격앙된 목소리로 나를 다그치며 걱정하던 것과는 다르게 짐을 내려주고는 엄지 척 한번 해주시더니 쿨하게 떠나셨다.

짐을 가지고 들어가니 직원은 어느새 꺼져있던 입구 쪽 불을 켜고 블라인드는 완전히 올려 영업 중인 것 같은 상태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그 직원에게도 미안하다 고맙다를 연발하며 겨우 체크인을 마쳤고, 그렇게 체르마트에서의 아찔한 첫날밤을 무사히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체크인하면서 직원이 얘기하기로는 원래 30분 전에는 끝났어야 하는데 스키를 타러 나갔던 손님들 때문에 뭔가 문제가 있어서 늦어졌다고 했다. 기차 시간도 한참 지났고 본인도 평소보다 늦게 끝났던 터라 당연히 더 이상의 새로운 손님은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이 뛰쳐 들어와서 너무 놀랬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마 본인이 평소처럼 일을 끝냈으면 나는 그날 밤 머무를 숙소를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을 거라는 말을 덧붙여 주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단 5분만 늦었어도 생애 첫 노숙 생활을 유럽에서, 그것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체르마트에서 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나를 곤경에 빠뜨렸던 친구는 그 뒤로 아예 연락이 끊겨 버렸다.

나름대로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었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평가를 받는 나였었다. 친구가 먼저 제안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몇 번이고 확인하고 의사를 물어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내가 곤경에 처할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연락을 끊어 버리는 그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친구와의 소통에서 내가 놓친 거절 의사가 있었나 싶은 생각과 고민을 하기도 했었고, 처음엔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이 되니 일부러 연락을 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토록 기대했던 체르마트에서의 여행을 위해 미리 준비할 수 있었을 텐데, 도움은커녕 오히려 방해를 한 것 같은 상황에 조금은 화가 났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도착해 급하게 잡은 숙소는 나름 컨디션이 괜찮은 곳이었고, 다음날 아침 밖으로 나와 마주하게 된 풍경은 지난밤 일을 모두 잊게 만들어 줄 만큼 멋있었다.

어느 곳으로 걸음을 옮겨도 동화 속 마을에 들어온 것 같은 그림 같은 풍경이 이어졌고, 기대하면 실망한다는 말과는 다르게 체르마트의 풍경은 기대 이상이었다.





도시에서는 매연과 소음을 내뿜으며 무섭게 질주하는 자동차가 싫어서 사람과 자동차가 같이 다닐 수 있는 길을 싫어했었다.

자연이 아름답다고 하는 곳을 가더라도 이동수단이 되는 자동차를 피하는 것은 어렵기에 아쉬움으로 남는 곳이 많았었는데, 이곳 체르마트에서 자동차를 마주하면 마치 내가 장난감 나라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어 일부러 자동차가 지나는 곳을 거닐기도 했다.

눈이 정화되는 듯한 오염되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과 아기자기한 마을 곳곳의 요소들은 이곳에 처음 발을 내딛으며 겪었던 긴장감을 희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렇게 아찔한 경험은 그저 지나간 한순간이 되고 결국엔 좋은 기억만 남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즐거운 시간 보낸 탓일까 아니면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그런 것일까.

한 번으로 충분했을 무모하고 멍청한 짓을 두 번이나 할 것이라고는, 체르마트의 동화 같은 풍경을 감상할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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