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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이는창창 Nov 01. 2023

부치지 않는 편지

어린 나에게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내가 쓴다.

부치지 않는 편지



명확히 어느 때일지 모를 과거의 나에게 닿지 못할 편지를 쓴다. 


지난 회차 심리 상담 때 과거에 상처받고 아파했던 어린 나를 인정해 줘야 한다고 조언을 들었어. 

안쓰럽고 고단했던 너를 마주 보고 이제라도 위로와 사랑을 전해야 한다고 말이야. 

나는 너를 보지 않고도 지금 현재에서 부단히 살면 나아질 거라 믿었어.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이해 못 할 삶의 숙제가 있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지금 최선을 다하면 곧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지. 

하지만 그건 옳지도 좋지도 못한 선택이었고, 결론적으론 실패했어. 

오해, 부주의, 착각, 편견, 외면 따위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솔직히 모르겠어. 

아니 모르겠다는 말로 너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아. 

알아 나는. 이미 충분히 체감하고 있어. 

어린 너이자 나를 언젠가는 반드시 한 번은 만나야 한다는 것을. 

지친 너의 얼굴을 마주 보고 괜찮냐고, 괜찮다고, 이해한다고, 

어린 네가 느끼는 삶의 무게가 너의 것이 아니니 내려놓아도 좋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말해줘야 한다는 걸 잘 알아. 


하지만 지금의 내가 너를 만날 자격이 있을까. 나도 이렇게 초라한데.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런 초라한 나도 죽지 않고 끝끝내 잘 살아있으니

한 번 살아보라고, 한 번 살아보자고 오히려 초라한 모습 그대로, 삶의 증거로 

네 앞에서 서있어야 할 의무와 책임을 느껴. 




마흔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의 나는 결혼해서 온전히 내 편인 남편도 있고, 심지어 아이도 셋이나 있어. 

한때는 네가 꿈꿨던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도 일하면서 돈도 벌고 여행도 가고 그렇게 20대 청춘을 보냈어.


어때? 여기까지의 삶이 혹시 궁금하진 않니?

어떻게 살았기에 이런 내가 될 수 있었을까 궁금해했으면 좋겠다. 


아, 그거 아니? 아이가 셋 있다고 했잖아. 

나는 세 아이 모두 다 자연분만으로 낳았어. 대단하지? 

겁도 많고 아이는 키우기 힘들다고 귀찮다고 싫어하던 내가

임신을 하고 태교도 하고 자연분만으로 아이 셋을 낳고 기르다니 말이야. 

그동안 인생이 어찌 흘러갔기에 나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됐을까. 



아, 물론 마냥 행복했던 시절만 있었던 건 아니야. 

잘 알다시피 20대의 나는 어설프고 여전히 미숙했어. 

사소한 일도 모두 못난 내 탓이라며 곧잘 넘어지고 다치고 아파했지. 

그 과정에서 끊임없는 자기 비하, 자책을 하며 스스로 상처 주기 일쑤였어. 


서른 살에 결혼이라는 이벤트를 겪으며 그나마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30대를 온전히 아기 낳고 기르는데 집중하고 보니 

미처 아물지 않은 상처와 아픔이 불쑥 튀어나오더라. 

이렇게 서른아홉에 겨우 어린 나를 보며 이야기하게 된 것도

마흔에는 부디 진짜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의 마흔에는 제발 후회와 아픔 없이 단단한 성인으로 매일을 지내고 싶어서야. 





내가 너무 늦게 온 건 아닌지 당연한 걱정을 했어. 

아니, 이런 걱정도 다 사치일까. 

그래도 너를 만나서 아주 짧게라도 말을 건네고 

여전히 불안하지만 굳건히 살아있는 내 존재를 보여줄 수 있어서 감사해. 

올해는 어린 나를, 두려움에 떨던 나를 꼭 만나서 안아주고 싶었어. 


차가운 겨울이 오기 전에 만나서 다행이다. 

약간은 시원한 가을 초입에서 늦지 않게 도착했어. 


우리 이제 함께 해. 

서늘한 가을과 추운 겨울도 함께 손잡고 이겨내자. 



고마워, 살아내줘서.



어린 나에게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내가

고마운 마음을 담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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