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썼는데 이젠 갓생 살기 위해 쓴다
2019년부터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루틴으로 일기를 써오고 있다. 나는 오늘 하루 무엇을 했고, 어떤 최선을 다했으며, 무사히 오늘의 주어진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한 기특한 마음을 담아 쓰고 있다.
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던 2019년의 어느 날은 내가 죽지 않기 위해, 죽지 않은 오늘의 증거를 남기기 위해 살았던 날이다. 그래, 나는 아이 셋을 키우며 하루를 겨우 버티듯 살았던 것이다. 태어난 지 100일도 되지 않은 막내, '엄마, 아빠'를 말하기 시작한 둘째, 이제 막 유치원에 가기 시작한 자부심으로 가득한 첫째까지 아이 셋이 내 손에 매달려있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매일 죽기를 바라는 건 아무래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므로, 아무래도 남들에게 손가락질당할 일이므로 죽을 수 없다면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일기를 쓰겠다고 마음먹고 아이와 남편 모두가 잠든 밤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었을 때 남아있던 감정은 우울하고 슬프고 암담하고 아프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2019년의 일기는 안타깝게도 어두운 이야기뿐 남아있던 어제의 찝찝한 감정로 인한 사건사고, 그로 인해 해결 못한 오늘의 문제, 잠들고 나이어질 내일의 걱정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렇게 쌓여간 하루들을 보고 나니 내 인생엔 고작 이런 일들 밖에 없나 더 좋은 하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했던 하루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러려고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게 아니었다. 살아보자고 쓴 일기 속에서도 '나 죽겠다'만 외치는 장면들을 나조차도 보기 싫은데 그렇게 살아온 나를 누가 예뻐하고
아껴주겠는가.
2020년, 조금은 달라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우울하고 암담한 현실에서도 그나마 괜찮았던 점 하나만큼은 발견하겠다고 부단히 노력했다. 일기를 적다보면 자연스럽게 한탄조의 표현이 나오면 서둘러 문장을 끝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낸 나에게 칭찬도 하고 격려도 하다가 좋았던 한가지를 발견하면 과장되게 부풀려 썼다. 그렇게 나는 우울한 하루를 살아내다가 이겨내고, 기왕 이렇게 된 바에 제대로 한 번 살아보자며 지금은 갓생살기에 도전하고 있다.
하루를 무사히 살아내고 잠들기 전에 기특하게 살아낸 오늘의 증거를 차곡차곡 쌓아온 지 이제 5년 차. 제법 행복하고 유쾌하고 기대되고 바라는 매일이 늘어났다. 일기를 쓰면서 '나'라는 사람의 대단한 역사를 기록해 보겠다는 마음은 전혀 추호도 없었지만, 쌓인 일기장을 보니 과연 '나'는 힘들어도 죽기를 바라다가도 버티고 버티던 대단한 한 사람이었구나 싶다. 이제는 조금씩 나를 인정하고 추켜세워주고 싶다.
이 공간에서 내가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한 사람인지, 기록하고 증거를 남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