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가 없었다. 아니 아버지를 모른다. 아빠라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결혼하고 자녀를 기르는 과정에서 아빠 노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랐다. 큰아들의 사춘기는 내게 벅찼다. 둘째 딸의 사춘기, 셋째 막내아들의 사춘기도 마찬가지였다.
큰아들은 집을 나간 적도 있다. 급기야 중학교 3학년 때는 지신의 진로를 스스로 정했다. 일방적으로 통보해 왔다. 집과 떨어진 기숙학교로 진학을 하겠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몇 번 만류했다.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하지 않겠냐고. 큰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당시 우리 집은 세 자녀와 함께 아내, 나, 어머니까지 23평 아파트에서 여섯 식구가 함께 살고 있었다. 가족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곁에서 지켜본 큰아들은 하루속히 집을 탈출하고 싶었던 심정이 컸었던 같다. 당시 공부에도 큰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집과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로 진학한 큰아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기숙사에서 지냈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집으로 외박을 나왔다. 일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학교로 태워주는 일을 3년 간 했다.
큰아들은 고등학교 이후의 진로도 스스로 결정했다. 공무원이 되고 싶어 했다. 학교 내신 성적도 관리해야 되고 학교장추천서를 받아야 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3년 간 나름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반면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진로를 기업 입사를 목표로 했다.
졸업하는 해에 공무원 시험에 도전을 했지만 아깝게 떨어졌다. 우리 부부보다 본인 실망이 제일 컸다. 더 안타까웠던 점은 자존감 상실이었다. 큰아들의 낙심한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나 또한 아버지로부터 그런 위로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지라 무엇을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 몰랐다.
큰 아들은 졸업 후 1년 내에 응시할 수 있는 마지막 시험에 도전했다. 1년 간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좁은 자기 방에서 지냈다.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중간중간 슬럼프도 찾아왔던 것 같다. 주변의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절치부심 끝에 감사하게도 합격하게 되었다.
"좋은 아버지가 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아버지는 아들만큼은 성공한 사람이 되어 내가 살아보지 못한 멋진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 이 땅의 아버지의 마음이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으로 불량배처럼 보이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모습이 미덥지 못해 늘 좌불안석이다. 기대 수준에 못 미친 아들을 향하여 '문제아'라고 내뱉는 큰 실수를 저지를 만큼 관계가 악화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는 결정적인 순간에 회복된다. 세상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거는 기대는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다"
<문제아>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