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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수 Dec 11. 2023

엘리베이터

지난 한 달 반 동안 엘리베이터 덕분에 운동을 잘했다.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를 하는 동안 불가피하게 아파트 계단을 걸어서 오르내릴 수밖에 없었다. 짐이라도 없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찬거리 사서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낑낑 거리며 집까지 올라갔다. 우리 집은 12층이다. 계단만 100개가 넘는다. 


아침이면 전쟁이다. 가뜩이나 늦게 일어나는 딸내미를 깨우고 지각하지 않기 위해 계단을 빠른 속도로 뛰어내려 간다. 넘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대충 걸어내려가는 시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시간보다 대략 3~4배는 더 걸렸다. 걸어가는 시간을 감안해서 출근 준비를 한다. 부지런해졌다. 그뿐인가. 

나도 모르게 다리 근육이 붙었다. 생각해 보시라. 출근 퇴근 하느라 하루에 두 번, 집안 쓰레기 치우라 최소 한 번이다. 휴일이면 횟수는 더 늘어난다. 한 달쯤 지나니까 몸도 적응해 간 것 같다. 현실을 바꿀 수 없기에 체념한 것인지 계단 오르내리기가 평범한 하루 일과가 되었다. 


엘리베이터 공사를 하기 전 관리사무소에서는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공사를 한다, 빠른 시일 내에 공사를 마치겠다, 불편하시더라도 참아달라, 계단 중간중간 쉬었다 올라가시라고 간이 의자를 놓겠다 등등의 대비책을 꼼꼼하게 안내해 주셨다. 할 수 있나, 어차피 수명 주기가 다한 기기를 교체한다면 입주민 모두 고생을 감수해야 되지 않나 싶었다. 당연한 처사다. 


그런데 일이 터지고 말았다. 공사 완료 기간이 다가오는데 공사가 진행되는 속도가 진척되지 않고 있었다. 급기야 공사 기간이 연장되었다. 이유인즉 부품이 조달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웬 말인가. 업체를 선정하는데 고려해야 할 사항이 부품 조달이 가능한 건실한 업체인지가 아닌가. 한심하기도 하면서도 무슨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며 맥이 풀린 체 또다시 계단을 오르내렸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 공사 기간이 연장되기 전에는 조금만 참으면 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운동도 되고 좋다 등등의 생각을 하다가 끝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라는 위기의식에 같은 조건, 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불평 아닌 불평이 나왔다. 엘리베이터가 뭔지...


어제오늘 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있다. 지난주부터 새로 바뀐 엘리베이터를 타고 행복하게 출퇴근을 하고 있다. 장 보는 것도 부담이 되지 않는다. 무거운 장바구니도 엘리베이터 전 까만 들면 된다. 택배물도 그렇다. 퇴근길에 일일이 관리사무소까지 가서 찾아왔는데 이제는 아파트 현관문 앞에 배달되어 있으니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최초로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것이 1914년 10월 조선호텔이라고 한다. 


덧) 이번 주에 쌀 사러 가야겠다. 엘리베이터 공사 하기 전에 무거운 쌀을 미리 사두었었다. 이제는 힘들게 들고 갈 일이 없으니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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