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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수 Dec 28. 2023

주인공들이 강릉에 온다~!

주인공들이 강릉에 온다!


내가 처음 부임한 학교는 전교생이 30명 남짓한 분교였다. 두 학년이 반 칸 크기의 교실에 모여 공부하는 작은 시골 학교가 자리한 곳은 하루에 버스가 두 번 지나가는, 구멍가게 하나 없고 가로등도 없이 해가 지면 온 세상이 깜깜해지는 곳이었다. 무려 해발고도 1000m 고개 산자락 기슭에 있는 학교였다.


아이들 집을 가정 방문해 보았더니 부엌 한쪽에서 소를 키우는 집이었고 자동차가 올라갈 수 없는 산자락 기슭에 있는 집이었다. 90년대 후반인데도 문명의 혜택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진 집이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내가 머문 학교 관사도 지하수를 이용해 식수를 해결했고 겨울철에는 꽝꽝 얼어서 녹을 때까지 세수조차 못하고 출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때 그 시절 처음 만났던 아이들 5명(3, 4학년 두 개 학년 담임이었는데 4학년 아이들이 5명이었다)이 새해 1월에 담임 선생님 보러 강릉에 온단다.


교사여서 다행이다!


20년도 훌쩍 넘은 세월인데 잊지 않고 안부 전화만 해 줘도 감사한데 5명 모두 담임선생이었던 나를 찾아온다니. 정이 메마르고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 놀랄만한 일이다.


강원도 홍천에서 만난 아이들이 이제는 충남 아산, 경기도 용인, 인천, 서울, 춘천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단다. 11살에 만난 아이들인데 얼추 나이를 계산해 보니 35살 인 것 같다. 이제 다 같이 늙어가는구나. 그럼에도 나를 아직도 기억해 주고 선생님으로 생각해 주고 있으니 참 감사하다.


한진, 요섭, 동성, 상진, 부영.


철없는 신규 교사였던 내가 열정하나만으로 이들을 만났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수업은 안 하고 이 산 저 산 돌아다녔던 기억, 해 넘어갈 때까지 운동장에서 축구했던 기억, 무엇보다 겨울방학 때 교무실로 몽땅 불러 공부시켰던 기억. 난로에 도시락을 올려놓고 데워 먹었던 기억.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녀석들에게는 어떤 기억이 가장 많이 남아 있을까?

아마도 나에게 엉덩이를 맞았던 기억, 혼났던 기억들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겠지. 다가오는 1월이 기다려진다.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뭐니 뭐니 해도 교사가 최고다!

(3, 4학년 두 학년을 한 교실에서 담임했던 초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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