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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수 Jan 19. 2024

연수에 가는 기분

방학 중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고 학교에 출근하는 날도 줄일 겸 연수를 신청했었다. 집과도 그리 멀리 않은 곳이어서 매일 출퇴근하면 될 것 같았다. 왕복 120킬로미터. 강원도에서는 이 정도 거리는 장거리 축에도 끼워주지 않는다. 연수 신청할 때의 기분과 막상 연수 갈 때의 기분은 묘하게 다르다. 연수를 신청할 때에는 새로운 것을 공부하는 기분과 함께 도태돼서는 안 된다는 의지가 합해져서 주저함 없이 신청 단추를 누른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연수 날이 코앞에 다가올수록 의지는 약해진다. 약해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 나이에 뭘 새롭게 배운다고 교감이라는 사람이 연수를 받는다고 극성맞게 쫓아다니냐라는 스스로 생각하는 비교 의식 둘째 연수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부담감과 점심 식사는 누구와 같이 먹어야지라는 아주 세세한 것이 주는 두려움 같은 것.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교감이라는 위치가 주는 특별한 생각들이 교사 때는 그리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발목을 잡곤 한다. 연수에 참석하는 명단을 사전에 쭉 훑어보면 아는 사람도 꽤 있다. 반갑게 인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약간의 부담감이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나도 성향이 내성적인가 보다. 활달해 보이지만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되면 한없이 숨고 있는 그런 마음이 동시에 존재한다. 가장 원하는 연수 분위기는 아무도 나를 알아봐 주지 않는 곳에서 혼자서 조용히 집중해서 듣는 것이다. 쉬는 시간마다 물 마시러 갈 때 아는 사람이 있고 점심 식사 때는 모두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나가는 그런 연수가 아니라 혼자서 밥은 먹되 남는 시간은 근처 조용한 곳에서 커피 한 잔을 들고 생각에 잠기는 연수, 그런 연수를 은근히 기대한다. 


얼마 전에 다녀온 연수는 전혀 그럴 수 없었다.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많은 연수였으니까. 결국 점심 식사도 같이 하고 저녁식사까지 함께 하는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그런 식사 모임을 꺼리는 것은 절대 아니다. 왠지 때로는 혼자서 우두커니 말없이 지내고 싶은 그런 때가 있다. 방학 중만이라도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큰가 보다. 교감이라는 역할을 하다 보면 조용히 한가롭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맨날 만나야 하는 사람들, 끊임없는 문제 해결, 갈등 중재 등은 마음을 오그라들게 만든다. 마음의 공간을 활짝 펼 수 있는 시간은 방학 말고 없다. 


방학 중에 출근하더라도 아무 일 없을 것 같은데 결코 그렇지 않다. 일은 사람을 쫓아다니다 보다. 학교 운영위원회 일정도 조율해야 되고 교감이 꼭 참석해야 하는 설명회도 참가 신청을 해야 되고 기일을 놓친 보고 공문 전화도 받고 담당 선생님과 해결책을 마련하고 일에 쫓기다 보니 어느새 하루가 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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