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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수 Feb 10. 2024

교감으로 산다는 것, 기억에 의존할 수 없는 때

아마존의 CEO 베조스의 리더십 원칙은 ‘발명’이다. 그는 프레젠테이션 대신 여섯 쪽짜리 친필 메모를 고집한다. 그 이유는 ‘발명’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는 현란한 화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끄적거리는 메모에서 구현된다는 착상을 통해 아마존의 리더들은 새로운 발명을 위해 지금도 최고 회의에서는 메모지를 들고 발표한다고 한다.



내 책상에도 몇 가지 메모를 할 수 있는 도구들이 진열되어 있다. 발명을 위한 메모라기보다는 하루의 일정, 주 단위 계획, 연간 계획 등을 잊지 않기 위한 자구책이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메모지는 탁상 달력이다. 탁상 달력에 직접 메모하면 좋은 점이 있다.



첫째, 메모하기에 부담이 없다. 탁상 달력의 크기는 가로 30센티미터, 세로 20미터다. 책상 귀퉁이에 놓기 아주 적당하다. 교육청에서 배부해 준 것이다. 디자인이 단순해서 좋다. 정사각형 크기의 칸이 35개 그어져 있다. 칸마다 날짜가 적힌 것 외에는 대부분 빈 여백이다. 메모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칸 크기에 맞게 글씨를 작게 쓰면 된다. 탁상 달력 외에 포스트잇, 작은 수첩, 공책, 이면지를 메모지로 활용하기도 한다. 공통점은 외부 기관에서 제작한 상품이거나 배부용 물건이다. 버리지 않고 모아 두면 필요한 일에 사용할 수 있다.


둘째, 사용하기가 편하다. 출장, 현장학습, 특이민원, 학부모 상담, 교육지원청 사업 등 꼭 기억해 두어야 할 내용을 바로 적을 수 있다. 하루에도 여러 건이 있을 수 있기에 작은 글씨로 적어 놓는다. 글씨체도 편하게 적는다. 나만 알아보면 되니까. 간혹 사생활도 적어 놓기도 한다. 약속이나 자동차 리콜 검사 날짜도 메모해 둔다. 출근해서 바로 하는 일이 컴퓨터 전원을 켜는 일과 탁상 달력을 살펴보는 일이다. 기억력에만 의존할 수 없는 나이다. 메모해 둔 탁상 달력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이다. 출장이 생겨 밖에 나가 있을 때 곤란한 경우가 생긴다. 다른 일정을 잡아야 하는데 학교 행사가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다. 탁상 달력이 그리울 때다.



셋째, 또 하나의 개인 기록물이 된다. 매월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기록하다 보니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나면 빈 공간 없이 빼곡하게 기록된 것을 볼 수 있다. 한 해를 어떻게 근무했으며 무슨 일을 했는지 대략 살펴볼 수 있는 작은 역사책이 된다.


다양한 기록들 때문에 폐기할 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나도 모르게 개인 정보들을 기록해 두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파쇄기에 넣기에도 어렵다. 한 장 한 장 뜯어야 하고 종이 질이 제법 두껍다.



나는 철 지난 탁상 달력을 보관해 둔다. 2021년부터 교감 업무를 하면서 버리지 않고 모아 두고 있다. 업무의 연속성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메모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개 선생님이 언제 군 입대를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 지난해 탁상 달력 몇 장만 들춰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나중에 스프링 제본으로 되어 있는 부분들을 뜯어서 한 장 한 장 모아 제본하면 하나의 역사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일기장은 줄글로 썼기 때문에 한눈에 살펴보기가 어렵다. 탁상 달력에 짤막하게 메모해 둔 것은 가독성이 높다. 다음 연도에 업무를 추진할 때 참고 자료가 된다.


『열하일기』의 박지원은 중국어에 유창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만난 사람들과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물을 건너고 피곤을 무릅쓰고 일정을 소화해야 했던 처지에 메모한 종이를 끝까지 보관해서 돌아왔다. 『열하일기』가 탄생한 배경이다. 메모의 힘은 위대하다.


『교감으로 산다는 것』

(2024년 출간을 목표로 준비 중, 197쪽)


1장 교감으로 산다는 것은

2장 교감으로 버틴다는 것은

3장 교감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① 오늘도 교직원들에게 배웁니다.

② 교감이 교감을 알아본다.

③ 설레는 마음은 잠깐

④ 여백이 필요하다.

⑤ 고독을 이겨내는 것

⑥ 사람보다 소문이 먼저 간다.

⑦ 기억에 의존할 수 없는 때

4장 교감으로 만난다는 것은

5장 교감으로 만족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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