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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수 Feb 09. 2024

교감으로 산다는 것, 사람보다 소문이 먼저 간다.

“그 학교 교감 어때?”      


매년 2월 인사철이 되면 선생님들 사이에서 많이 오가는 대화가 있다. 사람보다 소문이 먼저 간다. 몸보다 이름이 먼저 간다. 『종이의 신 이야기』에는 디지털 시대에 사라지는 종이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장인 정신을 키워 가는 일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유명한 디자이너부터 9대에 걸쳐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는 평범한 사람들까지 종이에 열정을 쏟아부은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종이에 관한 이야기다.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자신을 알리는 도구로 명함을 주로 사용한다. 예전과 달리 명함을 건네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었기는 했지만 그래도 명함을 만들어 만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경우가 제법 있다. 선거철이 되면 선거에 입후보한 사람들은 자신을 알리기 위해 길 가는 사람들에게 인사와 함께 명함을 내민다. 명함 앞뒤 면에는 깨알과 같은 글로 각종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학력, 경력을 포함하여 당선되면 이런저런 일을 하겠다는 공약사항도 적혀 있다. 꼼꼼히 읽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쓱 훑어보고 주머니에 넣거나 쓰레기통에 버린다. 길거리에 아무렇게도 버려진 홍보용 명함도 보게 된다. 새로 단장해서 영업 시작을 알리는 명함, 급하게 쓸 돈이 필요한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 대출을 쉽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의 명함 크기의 종이들이 자동차 와이퍼 사이에 끼워져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종이 명함이 많이 사라지는 추세다. 교무실에 있다 보면 학교를 방문하신 분들을 많이 보게 된다. 주로 인사를 한 뒤 명함을 건넨다. 교감으로 근무하면서 3년 동안 받은 명함을 얼추 세어 보니 40장 정도였다. 우리 회사 제품을 사용해 달라는 명함부터 자신을 소개하는 명함, 학교와 관련된 학부모, 운영위원, 지역 인사들로부터 받은 명함들이다.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 교감으로서 급하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큰 집게로 집어 서랍 속에 고이 보관해 두고 있다. 


“종이(명함)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본질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종이 이상으로 우리는 인쇄물의 재미를 전하고 싶습니다.” _ 『종이의 신 이야기』, 랜드스케이프 프로덕츠 디자이너 에토 기미아키  

   

명함에 적혀 있는 내용보다 명함을 만든 재료인 종이에 더 애착을 가진다는 디자이너 에토 기미아키의 철학이다. 그가 고안해 낸 명함은 소재가 다양하다. 하늘하늘한 편지지가 명함이 되기도 하고 로고 서체도 대담하다. 폰트도 다양하다. 『종이의 신 이야기』에는 파리의 빵 가게에서 받아 온 종이봉투, 심지어 봉투를 열 때 잘랐던 종잇조각, 다양한 종이 티백도 모아 두고 사용하는 일본 장인들의 모습이 나온다. 우리도 명함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나만의 고유의 종이 재료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다. 교감으로 재직하면서 지금까지 모아 둔 명함을 살펴보니 대부분 재질과 모양이 비슷했다. 특별함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명함일 뿐이다. 딱 한 장이 투명 아크릴 재질로 되어 있다. 극단 신예 상임 연출가 김상덕 님의 명함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가족여행으로 오키나와에 갔었을 때 지인 선물로 도자기 접시를 사 왔을 때가 기억난다. 도자기 가게에서 접시를 싸 주셨는데 포장지를 자세히 보니 오래된 신문이었다. 낡고 빛이 바랜 신문지로 접시를 싸 주셨다. 아쉽게도 그때 도자기 접시를 쌓던 포장지 신문 종이를 쓰레기 취급하며 버렸다. 오래된 일본 신문인데 보관해 두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에는 소장할 가치가 없어 쓰레기 취급을 당한 고서에서 보물을 발견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보통 고서는 반으로 접은 종이를 엮어서 만든다. 목판본이나 활자본은 인쇄된 종이를 인쇄 면이 바깥쪽으로 나오도록 반으로 접고, 그것을 여러 장 엮어 만든다. 필사본은 반으로 접은 백지를 엮어서 공책을 만든 뒤, 책장 바깥 면에 글씨를 쓴다. 어떤 경우든 책장 안쪽은 비게 되는데, 이곳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의외의 보물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내 명함은 그야말로 기계 냄새가 물씬 풍긴다. 직위, 이름, 학교 주소, 직통 전화번호, 모바일 번호만 적혀 있다. 쓰레기 감이다. 올해 새로 오시는 선생님들을 만났을 때 명함 대신 내가 쓴 책 『교사여서 다행이다』를 건넸다. 주위 소문을 통해 나에 대해 알고 있겠지만.


『교감으로 산다는 것』 

(2024년 출간을 목표로 준비 중, 197쪽)

1장 교감으로 산다는 것은

2장 교감으로 버틴다는 것은

3장 교감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① 오늘도 교직원들에게 배웁니다.

② 교감이 교감을 알아본다. 

③ 설레는 마음은 잠깐

④ 여백이 필요하다.

⑤ 고독을 이겨내는 것

⑥ 사람보다 소문이 먼저 간다.

4장 교감으로 만난다는 것은

5장 교감으로 만족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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