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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수 Mar 20. 2024

교감으로 산다는 것, 때아닌 폭설

오늘 아침 출근길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3월 중순인데 때아닌 폭설이라니. 신기한 것이 이번 눈은 국지성으로 특정 지역만 군데군데 쏟아졌다. 사실 강원도 영동지역은 3월에도 눈이 내린다. 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엄청 내린다. 자동차 스노우 타이어도 4월이 되어서야 교체한다. 경험에서 비롯된 습관이다. 


여느 때 같으면 보통 출근 시각이 7시 40분이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50Km 떨어진 근무지도 40분이면 갈 수 있기에. 그런데 오늘 만약 평소처럼 출근했더라도 큰 코 다칠 뻔했다. 인근 학교 교감님을 태워가야 했기에 오늘만큼은 7시 20분에 출발했다. 일찍 서두르기 참 잘했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눈 발이 심상치 않았다. 실시간 내리는 눈의 양도 양이지만 눈의 굵기가 평소와 달랐다. 차창에 소리가 날 정도였으니. 이미 차량 두 대가 사고가 나서 도로를 가로지르고 있었고 운전자들은 자동차 밖에 나와 사고 접수를 하는지 눈을 맞으며 서 있었다. 사고가 아니면 멋진 설경을 구경하며 출근할 수 있는 날이다. 하지만 오늘은 구경할 틈도 없다. 이러다가 나도 사고가 날 수 있을 것 같아 운전에 신경을 바짝 썼다. 갑작스러운 폭설이라 제설은 되어 있지 않았고 고속도로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차량은 거북이처럼 운행했다. 대형 트럭은 여전히 무섭게 질주한다. 


무사히 학교에 도착했지만 그 뒤부터 숨 가쁘게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움직였다. 출근하는 차량들이 뒤엉켜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다는 교직원들의 연락이 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비상 상태로 돌입했다. 학교 안에 가용한 자원은 없는지라 순발력을 발휘할 수밖에. 일단 두 개 반을 한 곳에 모아 놓고 책 읽기를 시키고 나머지 한 개 반은 임시로 들어가 수업을 진행하고 선생님들이 무사히 오기만을 기다렸다. 


때아닌 눈으로 모두들 아침 출근 길이 힘들었을 것이다. 사고 없이 안전하게 출근한 것만으로도 아침 잠깐의 힘들었던 순간들이 봄 눈처럼 잊힌다. 쏟아졌던 눈도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힘 없이 풀 죽은 것처럼 녹아내린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폭풍 전야처럼 두려움이 몰려오는 순간도 있지만 그때만 지나가면 상처도 아물고 기억도 가물가물해지며 힘들었던 것들이 모두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교감으로 산다는 것은 비상시에 책임 의식을 가지고 순발력을 즉각 발휘해야 한다. 다른 누구에게 부탁할 처지가 아니다. 오로지 교감의 몫이다. 공석이 된 학급의 수업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학생들의 등교 안전 상황도 신경 써야 된다. 다행히 짧게 눈이 내렸다. 


아침 한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오늘 점심은 곱빼기를 먹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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