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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수 Mar 19. 2024

교감으로 산다는 것, 나이를 못 속여

점점 갈수록 밤에 잠드는 시간이 빨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십 년 넘게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피곤함을 이겨낼 수 없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3월 초 학교생활은 학생에게나 교사에게나 누구나 다 힘든 시기다. 마음의 안정을 찾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새롭게 만난 선생님과 학생들이 서로 약속을 정하고 알아가는 시간은 설레면서 한편으로는 꽤 피곤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교감도 마찬가지다. 새롭게 전입해 오신 교직원들과 합을 맞춰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학교라는 곳이 마냥 넉넉하게 기다려줄 수 없는 곳이다. 


당장 3월 첫 주부터는 새로운 근무지 스타일에 맞게 자신의 몸과 정신을 맞춰가야 하니 생소할 수밖에. 그동안 경력과 경험을 통해 웬만한 것들은 물어보지 않고 정해진 스케줄대로 할 수 있지만 새로 몸담은 곳에 맞는 나름의 디테일한 부분이 의외로 신경 쓰이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 학교만의 독특한 환경에 맞춰 계획을 세워야 하고 기존의 그 학교만의 흘러온 전통 비슷한 교육 활동을 추진해야 하는데 아는 바가 많지 않기에 주위에 물어물어 해결하다 보면 생각 외로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저러한 것들이 학기 초 선생님들이 가장 어렵고 힘들게 하는 부분이다. 


나도 그렇다. 기존에 있던 선생님들에게는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새롭게 만난 선생님들에게는 이해를 구하고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유능한 사람은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을 한다고 하지만 아직 나는 그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했다. 

퇴근해서 저녁을 먹으면 어김없이 나이가 들어가는 몸의 변화를 거부할 수 없다. 꾸벅꾸벅 존다. 책 한 줄이라도 읽겠다고 책장을 폈지만 금세 고개가 떨어진다. 졸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있어 끝까지 눈을 게슴츠레 떠 보지만 그것조차도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몸의 상태가 되었다. 


낯선 전화번호가 휴대폰에 뜨면서 벨 소리가 들린다. 저녁 시간에 전화가 울리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말이다. 조심스럽게 받으면서 누군지 파악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순간 낯익은 목소리다. 내 기억으로는 6개월에 한 번씩 전화하는 녀석이다. 내가 가르쳤던 제자의 남동생이다. 29살 청년이고 자신의 누나가 최고의 담임 선생님으로 생각하는 나를 기억하고 몇 년 전부터 잊지 않고 전화하고 있다.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은 일자리를 찾아 구미에 내려가 있고 회사에서 마련해 준 원룸에 기거하며 장래를 도모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누나 소식까지 알려줬다. 농산물 도매시장 경매사로 일한 지 2년이 되었고 나를 몹시 보고 싶어 한다고 한다. 참 반가운 소식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겨우 전화 통화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나를 기억해서 전화한 그 녀석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상처를 주기 않기 위해 정성껏 전화를 받았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직업 정신이 투철한 것 같다. 오랫동안 교사로 살아온 습관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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