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 이사 와서 약 23년 살아오면서 이번처럼 가뭄이 오랫동안 지속된 적은 없었다. 유례없는 가뭄이었고 전례가 없었던 기상 이변이었다. 비슷한 사례가 예전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고 하지만 경험해 본 바가 없었던 처지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지역은 집중 호우와 물난리로 또 다른 형태의 재난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유독 강릉은 비구름조차 스쳐 지나가는 특별한 일이 이번 여름에 계속해서 일어났다. 급기야 재난 사태 지역으로 선포되었다. 현직 대통령까지 긴급하게 내려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수돗물 공급 시간이 하루에 30분으로 단수 조치된 날은 2025년 9월 8일 월요일부터였다. 저녁 7시부터 7시 30분까지 30분 동안만 아파트 수돗물이 공급되었다. 30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물 받기 뿐이었다. 재난 상황이 코앞에 닥치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가족부터 챙기게 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과도한 물 받기를 절제해 달라고 방송을 했지만 소 귀에 경 읽기였다. 당장 써야 할 물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욕조에다가 최대한 물을 받는다, 준비한 말똥에 물을 가득 채운다, 2리터 페트병에도 담아 둔다. 30분 동안 온 가족들이 재빠르게 움직인다. 이렇게 민첩하게 움직인 적이 있었나 싶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뒤에 뒤처리를 해야 하는 일이 가장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설거지물도 아껴 아껴 썼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동안 물을 펑펑 써 왔던 행동들이 조금씩 고쳐지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물이 부족한 것이 눈에 확연히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직접 경험해 봐야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 본다.
모두가 불편했기에 불평불만을 쏟아낼 겨를이 없었다. 연일 방송과 신문 지상에서는 강릉 가뭄 사태가 전국 톱뉴스로 게재되었다. 강릉시에서 배부되는 생수로 먹는 물을 해결하고 하루에 간간이 공급되는 수돗물로 생활을 지속해 갔다.
세탁기를 돌리는 요령도 생겼다. 미리 받아 둔 물로 세탁조를 채우고 세탁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이다.
드디어 강릉에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2025년 9월 19일 금요일 저녁 6시부터 아파트 수돗물 단수 조치가 해제되었다.
아직 가뭄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언제든지 수돗물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고생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속적으로 물 절약을 해야 하는 상황은 계속되었지만 생활의 불편함을 덜게 되어 한시름 놓게 된다. 2주간 수돗물 공급이 제한된 생활을 겪어보니 물의 소중함을 말로만이 아니라 실재감으로 다가왔다.
물의 소중함, 물 없이 사는 삶이 가능할까, 물 한 방울의 가치,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그토록 갈망하던 적이 있었는지... 만감이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