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일기
안도현의 시가 떠오른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자신의 몸뚱아리를 다 태우며
뜨끈뜨끈한 아랫목을 만들었던
저 연탄재를 누가 발로 함부로 찰 수 있는가?
자신의 목숨을 다 버리고
이제 하얀 껍데기만 남아 있는
저 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길질할 수 있는가
20대 저경력 교사 일 때 학교 가는 출근 길이 참 즐거웠다. 우리 학급 아이들 만날 생각에.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공 차고 쉬는 시간 재잘재잘 나에게 달라붙는 아이들과 수다를 떨며 하루를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지냈다.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뛰었다.
30대 가정을 이루고 약간의 원숙한 경력으로 나름 지적으로 보이기 위해 연구도 하고 아는 척을 하며 수업을 했다. 점점 때 묻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고 마치 내가 깊이 있는 교사가 되고 있다는 자만심이 차올랐다.
남들에게 칭찬을 받으면 가슴이 뛰었다.
40대 자녀 셋을 키우며 가정에서는 아빠로 두문불출하고 학교에서는 중견 교사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굵직 굵직한 업무를 맡으며 학교의 허리임을 자부하며 책임감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
학교에서 인정받는다고 생각할 때 가슴이 뛰었다.
50대 극한 직업 교감 생활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뛰었던 가슴은 거의 정지 상태에 머물렀다. 그래도 간간이 협력해 주는 교직원들을 만나면 숨통이 트였다. 살아남기 위해 운동에 집중했다. 그래서 마라톤에 입문했다.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가슴을 뛰게 했다.
교장이 되면 가슴 뛸 일이 있을까 싶었다. 책임지는 역할, 결정하는 역할, 제어해야 하는 역할, 잔소리(?)를 해야 하는 역할, 안전 감독을 해야 하는 역할, 민원을 해결해야 하는 역할, 지역사회와 동문 및 주민들과 소통(?) 해야 하는 역할... 가슴 뛸 일보다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 하는 위치에 다다랐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아이들 때문에.
창수야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교장 생활을 마무리할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다.
#신기하고_동화같은_학교
#신동으로키울게요
#삼척_신동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