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의 한여름밤 꿈
제9장: AI의 탄생(1) - 다트머스의 여름
1955년 8월, 제안서
존 매카시는 타자기 앞에 앉아 있었다. 다트머스 칼리지의 조교수. 스물여덟 살.
그는 제안서를 쓰고 있었다. 록펠러 재단에 보낼.
"인공지능에 대한 다트머스 여름 연구 프로젝트 제안"
그는 잠시 멈췄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단어를 방금 처음 썼다.
이 단어가 세상에 남을까? 아니면 곧 잊혀질까?
매카시는 계속 타이핑했다.
"우리는 1956년 여름, 뉴햄프셔주 하노버의 다트머스 칼리지에서 2개월간, 10명이 참여하는 인공지능 연구를 제안합니다."
"이 연구는 다음 추측에 기반합니다. 학습의 모든 측면, 또는 지능의 다른 모든 특징은 원리적으로 매우 정확하게 기술될 수 있으며, 따라서 기계가 그것을 시뮬레이션 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대담한 주장이었다.
매카시는 함께 제안서를 쓸 동료들을 생각했다.
마빈 민스키 - 하버드 주니어 펠로우. 신경망 학습 기계를 만든 천재.
나타니엘 로체스터 - IBM 정보연구부장. IBM 701 컴퓨터의 설계자.
클로드 섀넌 - 벨 연구소. 정보 이론의 창시자.
그들은 모두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생각하는 기계.
매카시는 제안서를 완성했다. 9월 2일, 네 사람이 서명했다.
그들은 몰랐다. 이 제안서가 새로운 과학 분야를 탄생시킬 것이라는 것을.
1956년 6월 18일, 다트머스 도착
레이 솔로몬오프(Ray Solomonoff)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젊은 수학자. 알고리즘 정보 이론과 귀납적 추론의 선구자였다. 다트머스 캠퍼스는 한여름의 고요함에 잠겨 있었다. 뉴햄프셔의 초록빛이 캠퍼스를 덮고 있었다. 붉은 벽돌 건물들, 하얀 첨탑, 넓은 잔디밭. 대부분의 학생들이 여름 방학으로 떠나고 난 뒤라 캠퍼스는 거의 텅 비어 있었다.
매카시가 그를 맞았다.
"환영합니다, 솔로몬오프! 우리 숙소는 이쪽입니다."
그들은 캠퍼스를 가로질러 걸었다. 나무 그늘 아래로. 새소리만 들렸다.
"참가자들은 언제 옵니까?"
"각자 다른 시간에 올 겁니다. 원래는 2개월 내내 함께 있으려고 했는데.…"
매카시는 쓴웃음을 지었다.
"록펠러 재단이 우리가 요청한 돈의 절반만 승인했습니다. 그리고... 다들 자기 연구가 있어서요. 며칠씩만 올 것 같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솔로몬오프가 말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여기 모인다는 거죠."
일주일 후, 민스키가 도착했다. 스물여덟 살. 브릴리언트한 눈빛.
"매카시! 솔로몬오프!"
그는 흥분해 있었다.
"내가 가져온 걸 봐. 신경망 모델의 새 버전이야"
그날 저녁, 세 사람은 작은 회의실에 모였다. 창밖으로 여름 해가 천천히 지고 있었다. 캠퍼스의 종탑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매카시가 칠판에 적었다.
"인공지능 -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들"
1. 기계가 언어를 사용하게 하는 방법
2. 추상화와 개념 형성
3. 인간에게만 가능했던 문제 해결
4. 기계의 자기 개선
"야심 차네요."
솔로몬오프가 말했다.
"우리는 이것을 올 여름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카시가 웃었다.
클로드 섀넌(Claude Elwood Shannon)이 도착했다. 마흔 살. 이미 전설이었다. 1948년 "정보의 수학적 이론"으로 정보 이론을 창시했다. 비트, 엔트로피, 통신의 한계. 하지만 섀넌은 단순히 이론가가 아니었다. 그는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저글링 로봇, 체스 기계, 그리고...
"제 친구를 소개합니다."
그는 작은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자석으로 움직이는 기계 쥐가 있었다.
"테세우스(Theseus)입니다."
섀넌은 5x5 크기의 미로를 테이블에 설치했다. 미로는 25개의 칸으로 나뉘어 있고, 벽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이 쥐는 출구를 찾아야 합니다."
그는 쥐를 미로 입구에 놓았다. 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칸. 앞으로. 벽에 부딪혔다. 뒤로 돌아와서 다른 방향으로. 또 막다른 길. 다시 돌아온다.
참가자들이 모여들었다.
쥐는 계속 시도했다. 오른쪽, 왼쪽, 앞으로. 때로는 같은 길을 두 번 가기도 했다.
"미로 아래에 릴레이 회로가 있습니다."
섀넌이 설명했다.
"각 칸마다 릴레이가 있어요. 쥐가 그 칸을 지날 때마다, 어느 방향에서 왔는지, 어느 방향이 막혔는지 기억합니다."
5분쯤 지나자, 쥐가 출구를 찾았다.
"이제 다시 해볼까요?"
섀넌이 쥐를 다시 입구에 놓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쥐는 막다른 길로 가지 않았다. 이미 실패한 경로를 피했다. 거의 직선으로 출구를 향해 갔다.
두 번째 시도는 3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학습하는 기계."
섀넌이 말했다.
"이것은 보상과 처벌로 배웁니다. 막히면 기억하고, 통하면 그 길을 따릅니다. 간단한 원리입니다."
민스키가 무릎을 꿇고 미로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릴레이가 메모리 역할을 하는군요. 각 위치에서의 경험을 저장하는."
"정확합니다."
"흥미롭네요. 이것은 일종의 시행착오 학습입니다. 하지만..."
민스키가 일어섰다.
"이것으로 체스를 둘 수 있을까요? 정리를 증명할 수 있을까요?"
"아직은 아닙니다."
섀넌이 인정했다.
"하지만 원리는 같습니다. 시도하고, 기억하고, 개선한다. 지능의 핵심 아닐까요?"
"어쩌면요. 하지만 인간은 추론도 합니다. 단순히 시행착오만으로는..."
두 사람의 토론은 저녁까지 이어졌다.
앨런 뉴웰(Allen Newell)과 허버트 사이먼(Herbert Alexander Simon)이 도착했다. 카네기 공대에서. 그들은 두꺼운 서류 뭉치를 가지고 왔다. 펀치 카드들. 프린트된 출력물들.
"여러분."
뉴웰이 회의실 칠판 앞에 섰다.
"우리는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침묵.
"Logic Theorist입니다."
사이먼이 종이를 펼쳤다.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수학 원리 (Principia Mathematica)』에서 나온 정리였다.
"정리 2.01을 봅시다."
그는 칠판에 적었다.
"p ∨ ~p"
"이것은 배중률(Law of Excluded Middle)입니다. ‘명제 p는 참이거나 거짓이다. 중간은 없다.’
"예를 들어, '오늘 비가 온다 ∨ 오늘 비가 오지 않는다' - 이것은 언제나 참입니다. 중간이 없습니다."
매카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인 논리 법칙이군요. 하지만 어떻게 증명합니까?"
"이것을 증명하려면 공리들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뉴웰이 설명을 시작했다.
"『수학 원리』는 몇 가지 기본 공리에서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공리 1.2: (p ∨ p) → p
'p이거나 p이면 p이다'
공리 1.3: p → (p ∨ q)
'p이면, p이거나 q이다'
공리 1.6: (p ∨ q) → (q ∨ p)
'교환 법칙'
이런 간단한 공리들에서 시작해서, 논리 규칙을 적용하면 복잡한 정리를 증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 프로그램은 네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1. 대입(Substitution): 공리나 이미 증명된 정리에서 변수를 다른 식으로 바꿔본다
2. 분리(Detachment): 만약 A가 참이고, A→B가 참이면, B도 참이다. 이것을 'modus ponens(모두스 포넨스, 전건긍정법)'라고도 합니다
3. 연결(Chaining): 여러 단계를 연결해서 목표에 도달한다
4. 실행 제어(Executive Control): 위 세 가지 방법을 어떤 순서로 시도할지 결정한다"
"하지만 가능한 조합은 수없이 많습니다."
사이먼이 덧붙였다.
"모든 가능성을 다 시도하면 계산은 영원히 수행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휴리스틱(heuristic)을 사용합니다. 인간처럼 경험을 바탕으로 어림짐작을 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영리한 추측이죠."
"예를 들어:"
뉴웰이 칠판에 적었다.
- 목표와 유사한 것 찾기: 증명하려는 것과 비슷한 공리나 정리를 먼저 시도
- 거꾸로 작업하기: 목표에서 시작해서 공리로 거슬러 올라가기
- 부분 문제로 나누기: 복잡한 것을 작은 조각으로
"이것은 인간이 증명하는 방식입니다!"
사이먼이 흥분해서 말했다.
"우리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대학원생들이 증명하는 과정을 관찰했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전략을 그대로 코드로 옮겼죠."
매카시가 앞으로 나왔다.
"실제로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뉴웰이 두꺼운 서류 뭉치를 펼쳤다. RAND의 JOHNNIAC 컴퓨터에서 출력된 결과물들이었다.
"여기 38개의 증명이 있습니다. 『수학 원리』 2장의 처음 52개 정리 중에서."
그는 한 장을 골라 들었다.
"특히 이 정리를 보십시오. 정리 2.85입니다."
사이먼이 설명을 덧붙였다.
"이 정리는 책에서 꽤 복잡한 증명을 거쳐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프로그램이 발견한 증명은..."
그는 잠시 멈추고 미소 지었다.
"화이트헤드와 러셀의 증명보다 2단계 더 짧습니다."
참가자들이 웅성거렸다.
"정말입니까?"
로체스터가 놀라워했다.
"기계가 인간 수학자보다 더 우아한 증명을 찾았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뉴웰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프로그램은 휴리스틱을 사용해서 불필요한 단계를 건너 뛰었습니다. 인간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지름길을 찾았죠."
매카시가 출력물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것은... 진짜 증명입니다. 논리적으로 완벽합니다."
"맞습니다."
사이먼이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증명을 버트런드 러셀에게 보냈습니다. 그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침묵.
"'기쁘다(delighted)'고 했습니다."
사이먼이 미소 지었다.
"『수학 원리』의 저자가, 기계가 만든 증명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정말 증명한 건가요?"
로체스터가 물었다.
"아니면 단순히 답을 찾은 건가요?"
"증명입니다."
뉴웰이 단호하게 말했다.
"프로그램은 각 단계를 논리적으로 정당화합니다. 공리에서 시작해서 규칙을 적용해서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것이 증명 아니면 뭡니까?"
민스키가 출력물을 들여다보았다.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그는 잠시 멈췄다.
"이것은 기호 조작입니다. 프로그램이 정말 '이해'하나요? 아니면 그냥 규칙을 따르는 건가요?"
"차이가 뭡니까?"
사이먼이 반박했다.
"인간도 수학할 때 규칙을 따릅니다. 기호를 조작합니다. 이 프로그램과 인간 수학자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인간은..."
민스키가 생각했다.
"인간은 직관이 있습니다. 어떤 방향이 유망한지 느낍니다."
"우리 프로그램도 휴리스틱을 사용합니다!"
뉴웰이 말했다.
"그것이 바로 기계적 직관 아닙니까?"
섀넌이 끼어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접근이 제 쥐와 정반대라는 겁니다."
그는 일어나 칠판에 그림을 그렸다.
"제 쥐는 시행착오로 배웁니다. 명시적 규칙 없이. 경험에서.
Logic Theorist는 명시적 규칙을 따릅니다. 논리적으로. 하지만 배우지 않습니다."
"둘 다 필요한 것 아닐까요?"
솔로몬오프가 말했다.
"논리와 학습. 연역과 귀납."
매카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진짜 지능은 둘 다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날 밤 토론은 자정까지 계속되었다.
다음 몇주간 참가자들이 왔다 갔다. 올리버 셀프리지(Oliver Selfridge). 트렌처드 모어(Trenchard More). 아서 새뮤얼(Arthur Samuel).
어떤 이들은 며칠만 머물렀다. 어떤 이들은 몇 주를. 하지만 그들이 있을 때마다, 토론은 뜨거웠다. 캠퍼스는 조용했지만, 그 작은 회의실에서는 새로운 과학이 태어나고 있었다. 칠판은 항상 수식과 다이어그램으로 가득했다. 종이들이 테이블에 쌓였다. 커피잔이 비고 또 채워졌다. 저녁이 되면 그들은 캠퍼스를 산책했다. 여름 밤의 시원한 공기 속에서,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10년 안에 기계가 체스 챔피언을 이길 수 있을까요?"
"아마도. 아니, 틀림없이."
"언어를 이해하는 기계는?"
"더 어렵겠지만... 가능할 겁니다."
"기계가 작곡하고, 그림 그리고, 시를 쓸 수 있을까요?"
"왜 안 되겠습니까? 그것도 규칙이니까요."
그들은 낙관적이었다.
위험할 정도로.
AI의 탄생(2)에서 다트머스 워크숍은 계속됩니다.
역사적 주석
다트머스 워크숍 (1956년 6월 18일 - 8월 17일): 인공지능의 탄생으로 여겨지는 역사적 행사. 실제로는 참가자들이 각자 다른 시간에 와서 짧게 머물렀고, 원래 계획했던 "2개월간 10명이 함께"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네 명의 조직자:
존 매카시 (John McCarthy, 1927-2011): 다트머스 조교수.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를 만들었고, 나중에 LISP 언어를 개발했습니다.
마빈 민스키 (Marvin Minsky, 1927-2016): 하버드 주니어 펠로우. 신경망 연구의 선구자. 나중에 MIT AI Lab 공동 설립자.
나타니엘 로체스터 (Nathaniel Rochester, 1919-2001): IBM 정보연구 부장. IBM 701 컴퓨터 설계자.
클로드 섀넌 (Claude Shannon, 1916-2001): 벨 연구소. 정보 이론의 창시자. 1948년 "정보의 수학적 이론" 발표.
제안서 (1955년 8월 31일):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문서. 록펠러 재단에 제출되었고, 요청 금액의 절반인 $7,500을 받았습니다.
주요 참가자들:
레이 솔로몬오프 (Ray Solomonoff, 1926-2009): 가장 먼저 도착. 귀납적 추론 연구.
앨런 뉴웰 (Allen Newell, 1927-1992) & 허버트 사이먼 (Herbert Simon, 1916-2001): Logic Theorist를 시연. 최초의 AI프로그램.
올리버 셀프리지 (Oliver Selfridge, 1926-2008): 패턴 인식 연구.
트렌처드 모어 (Trenchard More): 로체스터를 대신해 3주간 참가.
Logic Theorist: 뉴웰과 사이먼이 개발한 프로그램.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수학 원리』의 정리들을 증명했습니다. 실제로 작동하는 최초의 AI 프로그램으로 여겨집니다.
과도한 낙관주의: 참가자들은 AI 문제가 한 여름에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허버트 사이먼은 1958년에 "10년 안에 컴퓨터가 체스 챔피언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실제로는 1997년 Deep Blue가 카스파로프를 이김).
실제 성과: 워크숍에서 구체적인 돌파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성과는 "인공지능"을 독립적인 연구 분야로 확립한 것 입니다.
1960년대 황금기: 다트머스 이후 AI 연구에 막대한 투자. MIT, 스탠퍼드, 카네기멜론에 AI 연구소 설립.
1969년 『Perceptrons』: 민스키와 패퍼트가 신경망의 수학적 한계를 증명. 이 책은 신경망 연구의 "AI 겨울"을 초래했습니다.
첫 번째 AI 겨울 (1974-1980): 과도한 약속이 이행되지 않자 자금이 끊기고 연구가 침체된 시기. 1973년 라이트힐 보고서가 영국 AI 연구를 비판하며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