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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Nov 19. 2022

한결 같은 마음

416 목공소에 다녀왔어요




만약 자꾸 신경이 쓰이는 일이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든 연결이 될 거라 믿는다.


삼월에 별을 품은 사람들(이하 별품사, 세월호 관련 독서토론 모임)에 가입하게 된 것은 몇 년 동안 별품사 친구들의 이런저런 행사에 동참했던 것이 끈이 되었다.

별품사에는 글 쓰기 모임 친구와 독서 심리 치료 모임 친구가 있었다. 또 여성 단체에서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이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삼 년 여 동안 416 합창대회에 내 머리수를 하나 추가했고, 단원고 어머님들을 모시고 노란 리본이나 브로치를 만들었다. 단원고 약전을 읽은 회원들이 별이 된 아이들에게 쓴 편지를 모아 책을 만들 때 편집에 손을 보태기도 했다. 한 명 한 명의 사연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아픈지, 참 많이 울면서 작업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내가 세월호 유가족 연대 활동이라는 짐을 끝까 지고 갈 수 있을지 두려워 별품사 가입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해야 할 것이라고 막연히 각오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꾸 신경이 쓰였으니까.

동거인과 헤어져 혼자가 되자 기다렸다는 듯 별품사에 가입하였다.

별품사에서는 매월 책을 읽고 토론한 뒤 밴드에 후기를 남기는 상시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외 간담회나 유가족과 함께하는 제작, 전시 등의 행사에도 참여한다.

지난 시월에는 단원고 고 박수현 군의 아버지 박종대 님(<4·16 세월호 사건 기록연구-의혹과 진실> 책 출간)을 모시고 간담회를 하였다.


"이 책에서는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 과제를 “왜 침몰시켰는가”, “어떻게 침몰시켰는가”, “왜 구조하지 않았는가”, “왜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책임자 처벌을 회피하는가”로 확정하고, 이것의 실체를 밝히려고 노력했다. 이것은 죽은 아들이 나에게 부여한 마지막 과업이었기 때문에 이 책에서 그것의 실체를 밝히려고 노력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하지만 아들과 진실을 향한 나의 행군은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앞으로 계속해서 전진할 것이다." 박종대, <4.16 세월호 사건 기록연구-의혹과 진실> 중


며칠 전에는 416 목공소에서 냄비 받침 만들기 행사가 있었다. 유가족 분들은 세월호에 대한 일반인들 관심과 동참을 끌어내는 다양한 작업을 해 오고 계신다. 이를테면 꽃누르미, 목공, 연극, 합창, 전시 등의 활동이다.

단원고 2학년 7반 고 정동수 군의 어머님이 길잡이 설명을 해 주시고, 2학년 10반 김민정 양의 아버님께서 목공 과정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셔서 안전하게 작업을 마쳤다.

이런 과정을 하기에 앞서 모든 희생자를 위해 묵념을 한 뒤, 두 학부모님의 인사를 들었다.

동수 어머님께서 로봇 과학자가 되고 싶어 했던 동수 이야기를 하시다 울먹이셨다. 수학여행 전날까지 로봇 경진 대회를 준비하던 동수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한양대 공대 교수님이 그 작업을 마무리해 주셨다는 말씀도 전해 주셨다.


별품사 회원이 단원고 2학년 10반 김민정에게 쓴 편지


별품사 회원이 2학년 7반 정동수에게 쓴 편지


별품사 회원이 2학년 2반 정지아에게 쓴 편지(지난 글에서 소개한 친구)


질풍노도의 성장기답게 말썽을 피울 때도 있었지만 별이 된 친구들은 가족을 아끼고 친구들을 사랑하였으며, 꿈을 펼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을 듣다 보면 안타까움이 더 크다.

여러 행사에서 느끼는 공통점은 유가족 분들이 발언하실 때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담담한데 어느 순간 꾹꾹 눌러놓은 울음이 터질 때가 있다. 그러면 그 자리에 함께한 우리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물을 삼킨다.

이번에도 단순히 목공 체험인 줄 알고 오신 분들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에구, 마음이 너무 아파서 관련 기사도 못 보는데... 어떤 정신으로 사실까."



전동 사포로 나무 결을 매끄럽게 하는 과정


별품사 회원과 일반 참가자들이 만든 냄비 받침대


목공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별품사의 초기부터 활동해 온 언니가 416 가족 극단의 어머님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노란 리본 기획공연인 <장기자랑>을 하시는 동안 공황장애를 겪게 된 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동수 어머님도 그런 분들 중 한 분이라고.

"8년이 되어도 아무런 진상 규명이 되지 않은 채 자식들 일을 자꾸 잊으라고 사회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으며, 그럼에도 아무것도 밝히지 못하고 바꾸지 못했다는 무기력이 그분들을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해."

이 글을 쓰는 나는 독서 토론이 세상에 도움이 될지, 우리의 행사 참여가 그분들에게 힘을 드릴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그래도 그분들은 한결같이 말씀하신다.

"어려운 자리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분이라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와 아이들을 외롭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월호 관련 글을 올릴 때마다 마음이 가볍지 않다. 읽는 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읽으실지 걱정되기도 하고, 나의 참여와 내가 쓴 몇 편의 글이 언젠가 꼬리를 내려버릴지 모를 일이라는 두려움 때문에서다. 선언을 일삼는 사람이고 싶지는 않은 나약한 마음에서다.

그럼에도 유가족 분들을 만나면 다음 모임에 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 사람 더 손 잡고 가지는 못할지라도, 나 한 사람이라도 가자고 하게 된다.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거창하게 의미 부여를 하려는 게 아니다. 누군가의 아픔과 외로움에 응답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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