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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Sep 16. 2021

한 치 앞

이혼일기1-브런치 도전기



1. 콘셉트가 없어


2019년 1월 1일, 우연히 발견한 <브런치>가 예쁘기도 하고 글 몇 편을 읽으니 읽는 맛도 나고,

여기에 글을 쓰면 내 품격이 좀 올라갈 것 같고, 해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딱 두 편.

'작가의 서랍' 안에 그 두 개를 숨겨두고 발행하지도, 새로 쓰지도 않았다. 그럴 경우 타인은 글을 읽지 못한다.

나만의 테마, 콘셉트가 없으니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표류하는 기분이랄까.  

몇 년 동안 단편소설로 소설가가 돼 보겠다고 글을 써 온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없다는 건,

의외의 발견이자 두려움이었다.

'내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

글 쓰는 건 오프라인으로 소모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하고 자위하며 본업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2. 세상 일 참 모르겠다


그 사이 나는 29년을 함께 산 남편과 이혼을 했다.

작년 12월 23일이 최종 합의 이혼일이었다.(세월이 흐르면 이 선명한 기억도 흐려지겠지.)

십여 년 동함께 해 오던 일터에서 나와야 했고, 경제적 자립을 해야 했다.


이혼을 하게 됐지만, 사이가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여느 부부들보다 오히려 좋은 편이었다.

스물하나에 동거로 시작해 29년을 한결같이 서로가 제일 가까운 친구였다.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아침 루틴으로 차 마시며 대화 나누길 즐겼다.

그 사람이 집을 나가기 일주일 전에도 공원을 걸으며 내게 '솔메이트'라고 고백했으니까.(그 사람 허언증 없는 사람이다. 곧이곧대로인 사람)


이혼 사유?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 직장에서 24시간을 지내느라 각자만의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

내가 고집이 센데, 센 걸 인정 안 하고 툭하면 화를 내며 그 사람을 못 살게 굴었다는 것?

회사의 대표였던 그의 능력을 말로만 치하하고 마음으로 무시했다는 것?

시부모가 아픈데 그리로 들어가는 돈과 노력을 아까워했다는 것?

어쩌면 코로나 이혼에 가까울 것 같다. 코로나 이후 달마다 적자에 대출을 계속 받아서 직원들 월급을 줘야 하는 상황, 내가 특히 못 견뎠다.


수많은 멜로물을 보면서 "왜 우리가 헤어져야 해" 하고 울부짖는 한쪽을 보면 어느 땐 안타깝고 어느 땐 왜 저걸 모르지 하며 의아했다.

그런데 헤어지고 나니 정작 내가 바로 후자의 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집을 나간 몇 달 동안 날마다, 틈만 나면 울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하소연했다.

나는 엄마도 없는데(3년 전 돌아가셨는데 나는 고아 같은 기분이었다. 아버지랑은 별로 안 친했고) 나를 버려? 그런 마음만 가득했고 그를 원망했다. 나도 술 잔뜩 마시고 전화할까, 내게 돌아오라고.

그래도 혼자 힘으로 먹고살아야 하기에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울다가도 스스로 "눈물 뚝! 잘했어."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나를 토닥였다.

따로 산 지 벌써 1년. 그의 얼굴을 본 지 6개월.

아직도 난 그가 보고 싶은데, 우리 이혼 사유를 시시콜콜 모르는 지인들은 그런 내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만 질척거리란다.


아무튼 시간의 힘인지, 명상을 하며 노력한 덕인지,

혼자 지내는 이 공간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3. 나도 뭔가를 해 볼 거다


이혼, 이직, 이사.

한꺼번에 몰아닥친 쓰나미는 나를 피폐하게 만들 뻔했지만,

내 주위에는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혼하고 나니 그걸 깨달았다.

지인들은 나 혼자 지내는 공간에 차를 마시러 오고, 밤새 수다 떨다 자고 가고, 뒷산이나 공원을 함께 걸은 뒤 모여 앉아 글을 쓰기도 하며 혼자가 된 내 덕분에 생겨난 공간을 좋아해 주었다.


동업자, 동거인 눈치 안 보고 이런저런 취미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를테면 등산, 그림책 만들기, 낭독 연극, 씨네 페미니즘 토론, 토요 백일장, 인문학 밴드에서 독서와 밑줄 긋기, 100일 글쓰기 따위다.(비교적 시간대가 자유로운 직업이라 가능했다. 앞으로 하나씩 소개하려 한다.)


5월 17일 첫째 날 미션 성공해서 8월 25일 100일째 미션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완성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십 년 동안 살았던 창골 이야기, 이십 대 시절 이야기, 지금의 일상이 주제였다.

과거와 현재를 적은 셈이었다.

100일 동안 미션을 이어가다 보니,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취했고, 쓸수록 쓰고 싶은 것들이 더 많이 보였다.

100개의 글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살림 밑천인 셈이었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에 도전!



4. 이혼이 콘셉트


'브런치 작가'에 응모한 콘셉트는 이혼 전후의 일상, 홀로서기, 새로운 도전에 관한 것이었다.

이혼을 하니 콘셉트가 생겼네.ㅎㅎ

9월 1일에 응모해 3일에 이메일을 받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어떤 이는 수 번, 다른 이는 수십 번 떨어지기도 한다는데,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을 한 번에 덜컥 승인받은 것이다.

브런치 앱 알림으로 먼저 받았는데, 이도대체 뭐야, 멍했다. 내게 보내는 내용이 맞나 내 눈을 의심했다. 이렇게 쉽게 될 줄 몰랐는데...

혹시나 해서 메일함을 열어 보니 내게 보낸 게 맞았다.



5. 한 발짝


몇 년 전부터 바랐던 일이 이루어졌고, 이제 첫 발을 내디디면 되는데 자꾸 머뭇거려졌다.

혹시나 이 글을 그 사람이 알게 되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그 사람과 나는 같은 지역, 가까운 거리에서 살고 있고 우리 사이에 연결된 사람이 제법 많다.)

지속적으로 있을까. 공감을 느끼게 수 있을까.

이 작업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로 만들어졌고,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를 만들어간다는 믿음으로 해 보면 될까.

회한과 눈물로 쓰는 기록이 아닌,

가 보지 못한 장소를 향해 나아가 보는 건강한 일상에 관한 기록으로 우선 한 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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