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이 집사 25년의 그리움

이름도 흔한 토토와 모모를 그리며

by 창창한 날들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도서관에서 온라인으로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수강했다.

삽화는 전문가가 그려주고, 나는 글만 쓰면 되는 수업인 줄 알았다.
첫 수업에서 '박선미' 작가님이 화요일, 목요일 오전에 각각 2시간 동안 그림책을 소개하고, 연필로 드로잉을 할 거라 설명했다.

그림을 스스로 그리고 문장은 써도 되고 안 써도 된다는 말을 듣고 포기할까 했다. 그런데 작가님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냥 비비고 수강하기로 했다.(일종의 네트워크 차원에서라도) 작가님이 허허 웃으며 부담 갖지 말하고 당부하며 하시는 말씀.

"그냥 수업 시간에만 그리시면 돼요. 숙제 없어요."

전문가 실력이 필요치 않다는 말에 힘입어 그래, 수업 시간에만 그려보자 하고 시작했다. 웬걸... 작가님이 우리를 확실하게 낚으셨다. 어느새 나와 우리 모두는 스스로 숙제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림도 초중고 때 그려본 게 다였고, 주제도 딱히 잡지 못해 몇 시간에 걸쳐 화분 그리기, 내 얼굴 그리기, 좋아하는 물건 그리기 등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그러다가 내가 키우던 고양이들을 소재로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토토와 모모는 각각 스무 해, 열두 해를 우리 식구와 함께 살았다.
검은 줄무늬가 토토, 누런 줄무늬가 모모.
평생을 아기 때 앓던 장염 후유증으로 토하던 토토가 마지막에는 관절염까지 생겨 절룩거렸는데 지금은 어떤지... 탈장이 있던 모모에게 위급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데 아직은 괜찮은지...


그 애들을 남편이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 내 마음은 반가움 반, 서운함 반이었다.

이곳은 전세를 얻어 들어온 신축 아파트라 벽지라도 망가뜨리면 안 되고, 아이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혹시라도 알러지가 있는 친구들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걱정이 많았다.

남편이 들어갈 집은 원룸이고, 여긴 25평이니 여기에서 기르는 게 맞았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나더러 그런 걱정 그만하고 일에 전념하라고 당부하며 아이들을 데려갔다.

이제는 소식을 묻기도, 보기도 어렵지만, 내가 가장 오랫동안 바라본 것, 가장 좋아하는 것을 주제로 잡으라는 작가님 말씀에 고양이들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만약 그 애들이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미워해 놓고 이제 와서 주인공이라니 참 뻔뻔하구나." 하며 내 멱살을 잡을지도 모를 일이다.



함께 살 때 그 애들에게 못되게 군 일이 많았다. 특히 우울증을 앓던 2년 동안 무기력을 가장한 자괴감 때문에 나를 증오했고 그 화를 온통 고양이들한테 쏟곤 했다.

불면증으로 밤을 하얗게 새우던 때에는 식탐 많던 토토가 새벽마다 밥을 달라고 냐옹거렸다. 비몽사몽이던 나는 득달같이 달려가 녀석을 때리거나 화를 내며 분을 풀었다. 나보다 약한 존재들에게 도를 넘는 행동을 했던 내가 부끄럽다. 남편은 그런 나를 여러 번 말렸는데, 그러면 남편에게 내 화를 고스란히 쏟았다.

내가 컨디션이 회복되고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과거를 몸으로 기억하는 아이들은 남편보다 나를 무서워했다. 신기하게도 그 애들의 눈빛과 몸짓에서 느껴진다.




작년에 이곳에 이사 오느라 그들을 키우지 않게 되었던 초반에는 속이 시원했다.

똥오줌을 안 치워도 되고, 벽지 긁을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고, 신발장에 신발을 재깍재깍 넣어 놓지 않아도 되었다. 속옷까지 묻은 털들 때문에 가려움증을 겪지 않아도 되고,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는 일도 사라질 터였다. 병원에 트라우마가 있는 큰 녀석의 발톱을 깎아주지 못해 발에서 피가 나는 일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되었다.
베란다에 내놓고 쓰지 못했던 카펫을 깔아도 되고, 화분을 키울 수 있고, 빨래를 건조대 낮은 곳에 널어도 되고, 침대방을 열어 놓아도 되었다.

20년 동안 집에서 보내는 우리 일상의 대부분은 고양이들의 동선을 피하기 위한 그것으로 이루어졌다. 할 수 없는 게 많았다. 특히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거나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지인들을 초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계속 시원할 줄 알았다. 미련이 전혀 없을 줄 알았다.

지긋지긋함이 사라지면 몸과 머리가 다 가벼워지고 즐겁고 홀가분한 일상만이 나를 기다릴 줄 알았다.

고양이들을 그림으로 그리다 보니 사라진 줄 알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나도 모르게 녀석들의 울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고, 털로 쓸고 가는 듯한 환각에 놀랐다.

어느 날은 그냥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실은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그렇다기보다 그 애들이 그리워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