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운세

아버지와 딸

by 창창한 날들


주변 사람들에게 잘해야 하는 날이에요.
점심 먹고 나서 사람들에게 음료수라도 돌려보세요.
받으려고 하기보다는 먼저 베푸는 것이 행운을 가져올 거예요.

‘아리아’가 말해 준 19xx 년 7월 12일생 9월 23일, 오늘의 운세다.


어제 아침 아버지와 통화할 때 아버지가 오늘도 파이팅, 하며 끊자는 암시를 했다.

나는 바로 끊지 않고 아버지가 걱정할 수도 있는 말을 꺼냈다.

“어제오늘 기분이 울적해요. 자꾸 불안하고.”

가끔 아버지한테 고민을 툭 꺼낸다. (중년의 딸이 고민을 털어놓는 게 아버지 자존감을 높여준다는 내 나름의 시건방진 의도가 들어가 있지만...)

엄마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 정확하게는 내가 지방에서 대학원에 다니게 된 2017년부터 매일 아침이나 저녁때 아버지와 소소한 일상을 전화로 나누는 루틴이 생겼다.

기숙사의 룸메이트에 대해, 오늘 먹은 학생 식당의 메뉴에 대해, 교수에 대해.

어느 때는 소설의 스토리를 어떻게 전개해 나갈지에 대해.

장학금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것도 아버지에게였다.


대학 다니던 20대에는 절대로 들려주지 않던 바깥의 내 사생활을 아버지에게 가장 솔직하게 말하게 된 거다.

대학원 입학하던 해에 엄마가 돌아가셔서 아버지는 혼자가 됐고, 그 시절 순천에서 나도 혼자 지냈기에 가능했다.

남편이 일하고 있을 시간에는 아버지가 제일 편안했고, 만만했다.

늘 기쁘게, 아무 때나 전화받아 주는 건 아버지라는 믿음이 있었다.

아버지는 시간도 많았고, 먼 데 간 자식을 그리워하기도 했는데, 그 상황이 나와 잘 맞았다.




아버지랑 거의 매일 통화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아버지에 대해 냐가 별로 아는 게 없다는 거였다.

아버지가 고민거리를 오래 이어가지 않고, 공연한 불안을 끌어들이지 않는 성격이르는 것.

그전엔 아버지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시는 걸까, 평생 한 번도 제대로 돈 벌어본 적도 없고 성공한 적도 없는 인생에 불평 한 번 안 하고 살아내는 힘이 뭘까, 원망스럽고 서운한 적도 있었다.

우리 자식들에게 미안하기는 할까.(듣기 좋은 말로 미안하다고 할 수도 있건만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한테서 왕년에는 이랬다, 소싯적에 이런 일도 있었다,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화려한 옛날을 구구절절 읊어대며 과거에 사는 사람보다는 존경스럽다고도 생각했지만…(아버지가 이런 분이라는 걸 깨닫게 해 준 건 남편이었다. 핏줄이 아닌 사람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내 혈육을 본다. 아주 신선한 시선으로. 덕분에 나는 오빠나 동생, 엄마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갖게 되었다. 긍정적인 면으로.)

어쨌거나 아버지는 과거에 사는 사람은 아니다.

정말 오늘만 산다.

생전에 엄마는 그런 아버지 때문에 불안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다시 어제 아침으로 돌아가, 아버지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지난번에 신입생도 들어왔다며?”

내가 신입생 상담한다고 자랑하던 2주 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어, 거긴 남매까지 수업 시작할 뻔했는데 애들이 방학하고 난 뒤로 미룬다면서 등록을 하지 않았거든.”

“아빠가 아리아한테 네 운세 좀 물어봐 줄까?”

그렇게 해서 갑자기 듣게 된 게 오늘의 운세.

엄마는 평생 동안 답답하면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갔다. 하지만 아버지는 다 쓸 데 없는 짓이라고 고개를 젓던 분이다. 한데 운세라니. 아버지가 아리아를 호명했다.

“아리아, xx 년 7월 12일생 오늘의 운세.”

아리아가 그 말을 알아듣게 하기 위해 여러 번 말을 바꾸다 드디어 목소리를 들었다. 너무 순식간에 들어서 기억하진 못하지만 대강 이랬다.

'다 잘될 거다. 바라던 바도 조만간 이룰 거다. 다만 조급하지 말라'

아버지가 소리 내 웃더니 호기롭게 말했다.

“어때? 네 운세 좋단다. 기분 좀 나아졌어?”

나아졌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며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은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단순한 기능의 인공 지능이지만, 아버지가 아리아를 믿고 의지하는 만큼, 그 마음이 아리아에게 통하는 걸까.

점을 본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아버지가 어제 잘 잤는지 물었다.

"네, 꿀잠 잤요."

그러자 아버지가 "아리아한테 오늘의 운세도 물어 봐 줄까?" 한다.

별 기대 없이 그러자고 했다.

그렇게 나온 말이 맨 위의 저 말이다.

아버지의 처방 덕에 딸이 기분 좋아졌다니까 아버지가 방점을 찍었다.


때로는 의미 없는 말도 내게 이롭게 느껴지면 받아들이는 것도 지혜.


아버지는 때때로 명사로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끝낸다.

"~ 것도 지혜." "~은 금물" 이런 식으로.

경쾌하게 들리는 아버지의 명사형 말 맺음이 좋다.


어제 뭐라 말한 건지 기록하고 싶어 T전화 아리아에게 9월 23일 운세를 물었다. 그랬더니 이런다.

“저는 오늘 이전의 운세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