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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Apr 27. 2023

당신이 다음 세상으로 가져갈 단 하나의 기억은?

100일 글쓰기 100번째 되는 날의 98번째 글


오늘은 우리 거룩한 매일 쓰기 시즌 6-100일째 되는 날입니다.

아래는 부캐인 '피비'로 쓴 저의 98번째 글이고요.

이번 시즌은 매주 일요일에 쉬고 주중 6일을 쓰면서 오는 미션이었어요.

1월 2일부터 시작되었고, 2월까지 술을 마신 날이 잦았는데 그때 이틀을 빼먹은 것 같아요.  




글벗님들의 100일 마라톤 소회들이 시시각각 올라오고 있네요.

공감 가는 부분에 손뼉을 치고 싶으면서도 나는 조금 다른 글을 쓸래, 그런 생각을 하며 구상을 하실 것 같아요. 저처럼요.^^
엄마 이야기를 해 볼게요. '엄마'라는 말만 꺼내도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눈물바람인 걸 알지만, 위 주제를 써 놓고 보니 우리 엄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술꾼에 골초였던, 배우지 못한 우리 엄마를 자랑스러워할 수 없었어요. 나는 왜 이런 엄마한테서 태어나서 대학 가지 말란 소리도 들어야 했고, 대학교도 내 힘으로 다니다 지쳐서 중퇴해야 했는지, 부엌도 없는 신혼 살림집 단돈 50만 원 월세로 시작하고 나선(그것이 제 선택이었음에도) 가난한 부모가 그렇게 원망스러웠어요.


그런데 살아보니까 사는 게 그렇게 어렵습디다.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았던 마흔 초반에 엄마와 며칠 밤낮을 이야기 나누게 됐는데, 엄마가 한 번도 생색내지 않았던 날들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해 주는 거예요. 부끄러웠어요. 그렇게 가난하고 힘든 날을 견뎌내 오셨구나. 식모살이하면서 겪었다는 수모, 잠든 세 남매가 모르게 단칸방 벽장 속에 들어가 수건을 입에 물고 울며 지새운 밤들에 대한 이야기. 엄마나 아버지나 과거 이야기 하면서 내가 너희를 이렇게 키웠다 내세운 적이 없어서 그들의 과거 이야기를 통 몰랐거든요. 그저 왜 우리를 그렇게 고생스럽게 자라게 했는가 그 생각만 했던 자기중심의 끝판왕이었던 딸이었어요.


시한부라는 이름이 주는 슬픔과 아름다움이 있지요.

우리 모두 시한부라서 인생은 아름다운 것 아니겠습니까?

대입 지도를 실패하고 학원을 때려치울까 낙담하던 6년 전 12월 5일 저녁이었어요.

동생한테서 엄마가 3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전화가 왔어요.

그날부터 돌아가시기까지 단 2개월. 그때가 제 인생에서 엄마를 가장 사랑했던 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모든 시간이 엄마 생각뿐이었어요.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나는 엄마한테 왜 그렇게 모질게 굴었나. 엄마는 나한테 왜 원망의 마음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나. 남은 시간을 잘해 드릴 방법이 있기나 할까.

나의 심성을 가장 곱게 만들었던 시기였어요. 엄마가 아파서 말이에요.


엄마가 가장 강력하다는 진통제를 삼킨 덕에 잠깐 숨을 돌렸을 때 저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네가 쓴 소설을 아빠한테 읽어달라고 해서 몇 번을 들었어. 넌 어떻게 내 마음을 그렇게도 잘 알았니? 소설가는 다 그러니?"

엄마를 주인공으로 쓴 소설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고는 "엄마는 네가 글을 쓰는 게 그렇게 좋다. 계속 썼으면 좋겠어."라고 하는 거예요. 전에는 "그렇게 힘든 글 좀 그만 쓰면 안 돼?" 그러던 엄마가요.


소설을 쓰는 동안은 등장 인물에게 빙의를 해야 해요. 주인공이나 선한 인물만이 아니라 반동 인물에게까지 빙의해서 그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고 배웠어요.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상하고 그 마음이 되어 보았어요. '은자 씨의 구원'이라는 두 번째 단편 소설을 쓸 때였는데 100킬로 넘는 거구의  82세 할머니가 주인공이고, 그녀가 편견 어린 시선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 나름의 따스한 시선으로 주위를 돌보는 이야기예요. 엄마를 상정하고 쓰기 시작한 거라 그녀의 24시간, 사계절을 상상하며 쓰는 동안 내가 지독하게 엄마와 아버지를 내 틀로만 보았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어요. 


첫 소설인 'GTA 코리아'는 게임 중독이던 고등학생 제 아들을 쏘시오패스가 될지도 모른다고 오해했던 제가 아들을 주인공으로 그 애의 엄마를 죽게 하는 내용이었어요. 저는 이 소설을 쓴 이후에 아들에 대한 오해를 많이 풀었습니다. 아들과 화해도 하였고요. 세 번째 소설에서는 아버지, 네 번째부터는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거나 주변 인물이 되었어요. 

이런 과정에서 소설을 쓰는 시간은 타인을 가장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간이 된다는 뜻깊은 경험을 하게 됐지요.(소설은 아니지만 100일 글쓰기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해요.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요) 오죽하면 단편소설반을 안내하던 하성란 소설가는 제가 명상을 한다고 하니까 '소설 창작이 명상이고 기도'라고 말해 주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당신이 다음 세상으로 가져갈 단 하나의 기억은?>의 답을요.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에 대한 기억을 다음 세상으로 가져가렵니다. (이 문장 하나 생각하고 쓰기 시작한 글인데, 엄마 이야기로 눈물 콧물 다 흘렸네요.)


시즌 6에서 만난 스물한 분의 글벗님들,

조금 더 귀 기울이고, 조금 더 공감하고, 조금 더 이해하며 사랑하느라 애쓰신 지난 100일 동안 덕분에 감사했어요.

이전의 나에서 한 걸음 또 떼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길로 향할 수 있었다면 다 여러분 덕이라고 말씀드려요.

다음 시즌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강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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