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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부르는 노래

<여성의 글쓰기> 이고은 지음, 생각의 힘에서 한 문장 뽑아서 쓰기

by 창창한 날들




마흔한 살에 느닷없이 닥친 우울증으로 육신은 살았으되 의식은 좀비처럼 지냈다. 정신과 선생이 물었다.

“무엇을 못하는 게 가장 괴로워요?”

“내가 쓸모없는 사람 같아요.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으로 살고 있는 게 괴로워요. 지금보다 가난했던 20대에는 노동 해방을 위해 뛰어들었고 그때만큼은 자살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요.”

대학 시절 달동네 공부방 활동, 연합 문예단 활동을 했다. 남편도 그 시절에 만나서 함께 이 사회를 평등한 세상, 노동이 해방되는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작은 몫을 실천하고 있다는 믿음과 긍지가 있었다. 그러한 신념이나 기대감이 내 심장을 팔딱팔딱 뛰게 했다. 육신이 고되어도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서라면 나를 아낌없이 내놓을 수 있었다.


스물네 살에 결혼하고 맞벌이하며 출산과 육아를 하느라 사회 운동과 멀어졌다. 자식을 건강한 사회인으로 기르기 위한 시간이라고 합리화했다. 아들이 기숙사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빈 둥지 증후군과 함께 찾아온 우울증으로 날마다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위태로움을 느낀 남편이 고등학교, 대학교 때처럼 글을 써 보라고 권유했다. K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성장기와 현재의 일상에 대해 에세이를 쓰면서 내가 살아있고, 글을 쓰고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일 년 뒤 안산 소설동호회에 가입하여 본업(보습 학원 운영)을 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자는 시간, 아이들과 수업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통 소설을 구상하는 데 신경을 집중했다. 밀도 있는 행복감으로 채워졌다. 어떤 인물이 어떻게 행동하게 만들까, 어떤 계기로 그는 타인을 이해하게 될까. 사람들과 사귀지 못하지만 품이 큰 은자 할머니, 고집스럽지만 장애인 청년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준석 할아버지, 처지가 정반대인 친구를 이해하는 연희, 게임 중독에 빠진 아들을 이해해 보려는 엄마 등 다양한 등장인물은 각자의 성격대로 서로를 미워하거나 오해하지만 서서히 이해하게 되었다. 현실과는 다른, 나만 그릴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는 데서 희열을 느꼈고, 현실에서라면 편견으로 만나지 않고 싶은 인물을 이해해 가는 내가 신기했다. 기성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보다 더 사랑스러운 나의 소설 마을 주민들은 내가 힘들 때 언제든 내 곁으로 와 등을 토닥여준다. 살아가라고.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학원에 재정 위기가 닥쳐 본업에 올인해야 했으므로 소설가가 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접었다. 학원 업계에서 안정적인 위상을 구축하기 위해 분투할 즈음 원치 않은 이혼을 하게 되었고, 학원에서 자연스러운 퇴출이 되었으며, 나 홀로 이사한 아파트에서 공부방을 운영하며 살게 되었다. 삼십 년 동안 믿고 의지했던 이에게 버려졌다는 피해자 의식에 휩싸인 나는 천성대로 웃으며 지냈고 주위에 친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문득문득 내가 사라져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위험한 유혹에 빠지곤 했다. 의지할 엄마도 삼 년 전 세상을 떠났고 이십 대의 아들은 스물한 살에 독립한 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아이라서 내가 사라져도 타격받을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는 무력감에 자주 빠지면서도 가면을 쓰고 지냈다. 소설로 자가치유를 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부족한 필력을 생각하니 다시 쓸 자신도, 용기도 없었다.


혼자가 되니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자신 없지만 새 사업을 시작했고 거기에서 강사들 인문학 공부 차원에서 '100일 글쓰기'를 시작했다. 매일 쓴다는 것의 효능을 알게 돼 글쓰기 밴드를 만들고 오프라인에서 함께 글 쓰던 벗들과 <거룩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100일' 동안 날마다 글을 쓰는 동안 내가 하루하루를 가치 있게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일의 글에 쓸 글감과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려 애쓰는 것이 생활화되었다. 시즌제로 하게 될 거라는 상상도 못 했는데 현재 시즌 7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나는 600여 일 동안 누구보다 치열하게, 성실하게 글을 인증했다.


내가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성장했지만 다른 벗들의 글을 읽으며 배우는 게 많았다. 내가 ‘남편이 없는’ 여자가 아니라 본래의 싱글로 돌아간 것이며, 혼자서도 충만한 삶을 사는 데 거칠 것 없는 조건임을 깨달았다.

세상에서 사라지겠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아주 없어진 건 아니지만 깊은 밤, 새벽에 밴드 마을의 어느 한 집에 불이 켜져 있으면 위로가 되었다. 자다 깨어 잠이 오지 않으면 인증글과 댓글을 읽으며 나는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라 홀로 서지 못해서 외로운 것’이라는 어디에선가 본 문구를 떠올렸다. 버려졌다는 감정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갈 수 있었다.


100일 글쓰기 밴드는 공감과 이해의 공간이었다. 현실에서는 좀스럽게 행동한 일도 글을 쓰느라 돌아보는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미움이 한풀 꺾이고, 토닥토닥해 주는 멤버들의 댓글로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고 느꼈으며, 마음 그릇이 커지는 내가 되어 가는, 작은 성장을 체험하는 삶의 현장이었다.

시즌마다 새로운 사람이 몇 명씩 들어온다. 서로의 얼굴도 모르는 공간에서 각자 껍데기 같은 이야기부터 꺼내기 시작한다. 모르는 이들에게 섣불리 댓글 다는 게 조심스러워 표정만 다는 새로운 입주민들은 한 달쯤 지나면 마을 분위기에 적응하게 되고, 시즌의 반인 50일이라는 고개를 넘으면 과거의 역경이나 고난을 폭탄처럼 투척하는 용기를 낸다. 암밍아웃(암이라고 커밍아웃함), 소중한 사람의 죽음, 성장기 고난사 등은 딸로, 며느리로, 엄마로, 아내로 말하지 못하고 참으며 돌봄 노동에 최선을 다했던 여성들의 수난사였다. 우연찮게도 우리 밴드는 전원이 여성이다.


글벗들은 자신의 글과 다른 글벗들의 성찰을 통해 나 한 사람의 실수나 잘못이 아닌, 사회적 구조 속에서 좀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여성이라는 굴레에서 병을 얻었다는 걸 깨달았다. 페미니즘 도서 아침 윤독 모임에 참여하였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보듬으며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30, 40대의 글벗들은 암울할 것이라 막연하게 불안해하던 50대, 60대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피드백을 주었다. 몇 년 더 산 글벗들의 열정적인 배움의 자세와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희망의 눈이 생겼다고 했다.


매일 글을 올리는 동안 수많은 나를 꺼내 놓다 보니 고통스러웠던 시절뿐 아니라 내가 가장 살아있다고 느꼈던 때도 떠올랐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했던 이십 대가 그랬다. 나의 안위만이 아니라 주변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살고 싶었던 때 말이다.

글쓰기는 내면으로만 향하게 두지 않고 ‘행동하는 나’가 되어가도록 인도했다. 시민 단체에 이름만 올리고 회비나 기부금만 내던 내가 ‘함께 크는 여성 울림’의 소모임 ‘별을 품은 사람들’ 활동을 할 수 있는 마음도 열렸다. 글 쓰기 밴드는 세월호 참사와 유가족 연대 활동을 알리고 함께하길 촉구하는 글의 통로가 되었다.


이혼은 신뢰하고 의지했던 남편을 가져간 대신 내면과 외면으로 성장케 한 글과 어떤 상황에서도 부단히 애쓰고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 사람들을 보내주었다.


삶을 변화시키려면 나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바꾸어야만 가능한 문제가 많다. (중략)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꺼내어 말하는 일에서부터 문제는 풀리기 시작한다. (중략) 목소리 내기는 모든 변화의 출발이다. <여성의 글쓰기>(217쪽)


'매일 글쓰기 삼 년'은 나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내 상처에서 시선을 돌려 이웃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나와 다른 이를 살리는 길이이라고 알려주었다. 여성으로서의 나의 사회적 위치가 무엇인지, 여성이 행복한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그러기 위해서 어떤 일로 누구에게 도움이 되며 살아갈 것인지 공부해야 했다. '페미니즘으로 바라본 나이 듦과 돌봄' 강의를 듣고 돌싱과 비혼주의자들의 모임인 '싱글 연대'를 만들고 지난주에 첫 모임을 가졌다.(이 후기는 다른 글로 만나요.^^)

함께 부르는 어울림의 노래는 아름답다. 연대하는 노래는 더 아름답고 울림이 클 것이다. 우리의 노래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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