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할머니》 북콘서트에서 승은을 본 순간 가녀린 체구에 놀랐고, 앞자리만 겨우 들릴 듯한 목소리에 두 번째 놀랐어. 저렇게 여린 사람이 작가이자 싱어송라이터, 영화감독이고 투쟁 공간에 가서 노래한다고?
세상의 모든 할머니를 향한 승은의 따스한 시선이 느껴져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사르르 녹았어. 승은이 들려준 할머니 이야기가 너무나 다채로워서 어떤 할머니를 골라 리뷰를 써야 할지 어려웠어.(행복한 고민^^)
진행자인 화숙이 평어 쓰기를 제안할 거라고 들었어.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과연 가능할까 궁금해하고 있는데 승은이 “안녕, 난 신승은이야.”하고 말문을 트더라. 그 덕에 삼십 명의 관람객 모두가 친구랑 수다 떨러 온 사람들이 되었잖아.
어떤 상황에서고 마음을 열 준비가 돼 있는 승은, 수줍은 듯하지만 강단 있는 미소로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승은. 진지하게 말하다가도 툭툭 던지는 유머는 승은의 매력이야.
기타를 메고 작사, 작곡한 노래도 불러줬지. 제목부터 웃기는 ‘당신은...(점점점)’과 ‘잘못된 걸 잘못됐다’ 들 말이야. 가사와 곡의 흐름에 용기 있는 고백과 위트가 있는 노래들이었어.
집에 돌아와 승은의 영상들을 찾아봤어. ‘애매한 게’에서 ‘그 무엇도 아니고 단지 나이고 싶었는데/지금은 무엇도 아니라 좀 외로워’라 고백하는 승은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어. 승은의 노래에선 나라는 존재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사람이지만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위로를 받게 돼.
책을 읽으며 승은이 존경한다는 프랑스의 대표 감독 ‘아녜스 바르다’를 알게 된 것도 자극이 되었어.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0년 프랑스 개봉)를 찾아보았고, 영화 속 ‘줍는’ 행위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처음으로 문제의식을 갖게 됐어. 쓰레기통에서 음식을 주워 먹은 지 십 년이 넘었다는 남자가 ‘사람들은 음식을 몰라요.’라며 당당히 발언하는 데서 충격을 받기도 했고. 일상에 흩어진 이미지들을 주워 영화 ‘예술’을 만드는 과정이 그들의 줍기 행동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철학이 따스하고 존경스러웠어.
삼십 년 동안 교육 서비스업에 종사해 왔지만 주기적으로 재미가 없고 회의가 들었어. 어딜 가나 ‘선생님’이라 불렸고, 싱글이 된 내가 벌어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잊지 말자고 자기 암시를 했지만, 올해 초부터 번아웃이 온 거야. 그런데 박막례 할머니가 말씀했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해. 남의 박자는 좆같은 박자다. 내 박자가 맞는 박자다’라는 부분을 보자 나도 더 나이 들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재미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어.
‘아무튼, 할머니’ 최고의 만남은 십오 년째 배우 활동을 하고 있다는 까치산 할머니, 유창숙 배우였어. 그녀는, 세상에! 배우 생활 15년을 해 온, 아흔이 넘은 배우잖아. 칠순이 넘은 나이에 배우가 됐다는 그녀의 스토리는 충격이자 내게는 새로운 가능성이었어.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승은인 상상도 못 할 거야.
내가 승은에게 “30년 해 온 업을 그만두고 배우가 되려고 해. 나 할 수 있을까?”하고 질문했던 것 기억해? 승은이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이미 마음이 아는 것 같아.”하고 답해 주었지. 그 순간 나는 눈물을 쏟고 말았어. 내가 배우의 길을 걷는다면 까치산 할머니는 나의 롤모델이 되는 셈이야. 승은이 내 책의 내지에 이런 문구도 사인과 함께 남겨줬어. ‘멋진 배우를 만나서 기뻐.’
얼마 전에 브런치 작가의 글에서 ‘기투’라는 말을 보았어. 인간은 세상에 아무 이유 없이 던져진 ‘피투’라는 존재로 태생 자체가 부조리하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일 수 있대. 주어진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앞날을 향해 스스로 던짐으로써 새롭고 변화된 상황을 창조할 수 있다는 의미인 기투. 이 말의 의미가 지금의 나, 내가 가려고 하는 길을 설명하는 말 같아. ‘아무튼, 할머니’와 ‘기투’가 내게 온 의미는 어떤 신호가 아닐까. 자, 이제 너의 삶을 살아 봐. 그 누구에게도 핑계 따위 대지 말고 네 힘을 들여 걸어 봐.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자!
내 삶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자!
쉰이 넘은 나이에 주체 운운하는 다짐이라니, 새삼스럽다고 할지 모르겠어. 부끄럽게도 나는 성인이 되고 난 이후 서른 해 동안 내 삶을 책임감 있게 끌고 오지 못했어. 스물하나의 푸릇푸릇한 나이에 함께 살기 시작한 친구이자 남편에게 업힌 채 그 등에 숨어서, 숱한 시간 그를 탓하며 남의 삶인 양 살았고, 가끔은 영광의 단물만을 내 덕인 양 취했어. 힘에 부칠 때면 비관적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합리화하면서 삶을 깨끗이 끝내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였어. 신앙이나 명상으로 마음공부를 해서 극복하려고 해도 검은 옷은 느닷없이 나를 잠식하려 해.
북콘서트에서 “행복한 순간이 많아서 계속 느끼며 살고 싶다”라고 답한 승은, 사는 게 무섭다면서 살고 싶다니, 승은이 장해 보였어.
사십 대가 되면 힙합을 시작해 볼까. 육십 대가 되면 연기를 시작해 볼까. 아, 재밌겠다. 근데 아무튼 살아야 할 거 아냐. 살고 싶다. 그래서 사는 게 무섭다. 무섭지만 나는 살고 싶다. - <아무튼, 할머니> 74쪽
승은은 세 명의 친구와 공동체를 이루며 서로 돕고 즐겁게 살고 있다고 했지.
놀라운 소식 들려줄까? 지난 오월 말에 비슷한 처지, 서로의 어깨를 빌려주기로 한 모임을 만들었어. 여섯 명의 친구와 첫걸음을 뗀 ‘싱글연대’라는 돌싱, 비혼주의자의 모임이야. 우리는 한 달에 한두 번 만나 함께 밥을 만들어 먹고, 근황과 어려움을 나누기로 했어. 함께 이불 덮고 자며 서로를 알아가기로 했고 벌써 네 번을 만났어. 생일이나 명절, 누군가 필요할 때 함께 있어 주기로 해서 다가오는 추석이 전혀 걱정되지 않아.
할머니 전문가인 승은, 할머니에 대해서만큼은 전혀 ‘애매하지’ 않아. 할머니를 재발견하게 해 준 승은, 고마워. 나도 승은처럼 행복한 순간을 계속 느끼며, 그런 시간을 계속 쌓으며 살아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