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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

다큐멘터리 <헤로니모>, 책 <당신의 수식어>

by 창창한 날들



소수가 되는 경험을 해 본 이들은 자의든 타의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다수가 정해 놓은 편견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을 의식적으로 규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당신의 수식어> 전후석, 창비, 79쪽


살아오면서 상대적 소수자임을 느낀 시절이나 순간이 몇 가지 떠오른다.

스물하나에 결혼, 스물넷에 '대학생인 엄마'가 되었으니 또래들 가운데 소수자였다.

입대한 남편을 기다리며 시부모와 시숙과 함께 사는 동안 성씨 다른 스물넷의 나는 소수자였다.

전남 순천에서 대학원 생활을 할 때 이십 대가 주류인 기숙사에서 40대인 나는 소수자였고, 남도 사람들이 주류인 원생 가운데 나는 '안산 사람 혹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역 사람'으로 소수자였다. 그들 무리에게 나는 홍어회의 참맛을 모르는 외지인인 셈이었다.





<당신의 수식어>를 쓴 전후석 작가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을 가졌으나 아시아인으로 소수자였다. 그는 한국에서 십 대 시절을 지내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부터 비로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였다.


변호사가 되어 살던 어느 날, 쿠바로 휴가 여행을 갔을 때 '헤로니모 임'(한국 이름으로 임은조)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쿠바 공항에서 택시 운전수로 나온 헤로니모의 딸 파트리시아와 만나는 장면이 다큐멘터리 <헤로니모>(2019년 11월 대한민국에서 개봉)의 첫 장면으로 나온다.


파트리시아, 그날 저를 당신의 차에 태워 줘서 감사해요. 관광객이었던 저를 반겨 주시고, 가족에게 소개해 줘서 감사해요. 헤로니모를 통해 제 자아를 찾고 제 열정을 남들과 공유할 수 있었던 저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한 이방인에 대한 당신의 환대가 아버지 헤로니모를 저희 곁으로 부활시켰어요. - <당신의 수식어>, 전후석, 232쪽




'미국인이자 한인'인 전후석과 '쿠바인이자 한인'인 파트리시아의 만남은 우연 같지만 필연인, 두 디아스포라의 만남이었다. 디아스포라는 사전에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이르던 말, 고국을 떠나 타 지역으로 이주하여 사는 모든 민족'이라고 명시돼 있다.


헤로니모 임의 부모는 1920년대에 멕시코의 농장으로 이주하였다가 쿠바로 가 정착한 디아스포라였다.

헤로니모는 쿠바에서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학교에 진학하였고, 같은 학교에서 체 게바라를 만나 함께 혁명 운동을 하여 공을 세운 사회주의자였다. 말년에는 쿠바 내 한인 공동체를 조직하려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전후석은 헤로니모의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조국'이라 부르는 한국의 말과 노래, 음식을 찾아서 지켜나가려는 모습을 보았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다큐멘터리 <헤로니모>에서 유대교 랍비가 디아스포라의 본질을 '고통에서 시작하지만 혁신을 낳을 수 있는 존재들'이라고 말한 것처럼 쿠바의 한인들이 그러했다.


1921년에 쿠바에 정착한 선조들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날. 쿠바의 항구 도시 마나티에서.




안산시에는 2019년 현재 등록외국인 5만 7천123명, 외국 국적 동포 2만 9천657명 등 모두 8만 6천78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안산 시민의 12%가 넘는다고 한다. 시민의 국적이 한국까지 포함하여 모두 111개국이라니 국제 도시다.


안산시민인 나는 외국인들이 사는 지역에서 거리가 먼 동네에 거주하기 때문에 외국인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얼마 전 매일 글쓰기 글벗이 '고려인 디아스포라 사진전'에 함께 가자고 하여 다녀왔다. 그녀는 외국인 학생수가 전체 학생수의 90% 넘는 중학교에서 한국인 강사로 일하고 있으며 글쓰기 밴드에서 그 경험을 많이 나누어 주고 있다.


2006년에 서경석의 '디아스포라 기행'을 읽은 뒤 잊어버리고 지냈는데, 고려인 사진전 이후 디아스포라 관련 책과 영상을 볼 기회가 생겼다. 안산시 여성 노동자회 토론 모임에서 디아스포라 다큐멘터리인 <헤로니모>를 시청한 뒤 토론하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토론에 참여하기 전 <헤로니모>를 시청하고, <당신의 수식어>를 읽었다. 감동과 여운이 커서 제안해 준 글벗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얼어붙은 바다를 깨기 위한 도끼, 고맙다고.


화요일 저녁,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토론방에 입장했다. 이십 대부터 육십 대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의 경험과 생각을 들을 수 있어 무척 뜻깊은 시간이었다.

전후석과 파트리시아의 만남이 한 세계를 확장하였듯이, 매월 한 번씩 여성노동자회 토론 모임에 참여하게 될 2023년이 기대된다. 나의 고통, 나의 상처만 돌보며 살아온 날들 대신 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는 등 나 자신의 영혼에 도끼질을 하는 해로 만들어가기를 소망한다.


내가 한국인에서 재미 한인으로, 다시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로 나아간 것은 한인의 범주를 축소한 결과가 아니라 한인의 범주를 확장한 결과이다. 그로 인해 나는 이전보다 더 풍성한 자아를 경험했고, 더 넓은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내가 속할 수 있는 사람들의 범주 역시 넓어졌다. -<당신의 수식어> 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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