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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단편소설 - 레이먼드 카버

by 창창한 날들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불의의 사고로 다친 아이를 둔 가족의 이야기다.

그날은 여덟 살 아들 스코티의 생일이었다. 아이는 생일 파티에서 친구의 선물이 무언지 궁금해하며 학교에 가고 있었다.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도로로 넘어진 아이는 뺑소니 자동차 사고를 당하였다.

며칠 전 아이의 엄마는 아들의 생일 기념 초콜릿 케이크를 예약 주문해 두었다.

아이의 의식이 깨어나길 기다리는 사흘 동안 그들 부부는 커피나 차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아이가 언제 깨어날지 몰라 집에도 못 가고 의사에게 뚜렷한 원인을 듣지도 못한 채 기다리고만 있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종류의 기다림이라는 상황에 처한 이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녀도 두려웠고, 그들도 두려웠다. 다들 그런 공통점이 있었다. 그녀는 그 사고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다. 스코티가 어떤 아이였는지 그들에게 더 얘기하고, 또 사고가 월요일, 그러니까 그애의 생일에 일어났다는 것을, 그런데 그애는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110쪽


아이의 부모에게 새벽에도, 한밤중에도 의문의 전화가 자꾸 온다. 뺑소니범일 거라 추측한 부부는 히스테릭하게 반응하지만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의료진은 아이의 의식이 깨어나지 않는 이유를 찾아내지 못하고, 아이는 끝내 숨을 거둔다.

부부는 친척과 지인들에게 아들의 부고를 전한다.

그제서야 참았던 눈물을 쏟는 남편을 아내가 위로한다.


아이의 엄마는 자정이 넘어 다시 온 전화에서 빵집 주인일 것이라 깨닫고 한밤중에 그를 찾아간다.

빵집 주인은 사흘 만에 케이크를 찾으러 온 그들 부부 앞에서 빵을 만들어야 한다며 부지런히 작업을 할 뿐이다. 실은 그녀는 케이크 예약을 할 때부터 늙은 빵집 주인이 퉁명스럽게 반응하는 자세가 못마땅했다.

극한까지 치달은 그들 부부는 빵집 주인이 아이를 죽인 범인이라도 되는 양 화풀이를 한다. 그 와중에도 빵 만드는 기계는 돌아가고 주인은 밀대로 작업을 계속한다. 그런 주인의 행동이 참을 수 없어 아이의 엄마는 자기의 아들이 죽었다며 오열한다.

그날 아침 아이의 엄마가 케이크를 찾아갈 수 없던 상황이었음을 알게 된 빵집 주인은 비로소 제빵 작업을 멈추고 말한다.


"여기 좀 앉아 주시오." 그는 가게 앞쪽으로 가더니 작은 철제의자 두 개를 들고 왔다. "두 분 다 여기 좀 앉으시오."
앤은 눈가의 눈물을 닦고 빵집 주인을 바라봤다. "당신을 죽이고 싶었어요." (중략)
"내게는 아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 당신들의 심정에 대해서는 간신히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라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미안하다는 것뿐이라오. 부디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빵집 주인은 말했다. "나는 못된 사람이 아니오.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전화로 못된 짓 하는 사람은 아니라오." 126쪽


빵집 주인은 제빵 과정을 모두 멈춘 뒤 그들 부부의 곁에 앉아 그들이 각자 접시에 놓인 롤빵을 하나씩 집어먹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려 준다.


"아마 제대로 드신 것도 없겠죠." 빵집 주인이 말했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땐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그가 말했다.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오. 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에 있으니."
그들은 롤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앤은 갑자기 허기를 느꼈는데, 그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그녀는 롤빵을 세 개나 먹어 빵집 주인을 기쁘게 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경 써서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지치고 비통했으나, 빵집 주인이 하고 싶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빵집 주인의 외로움에 대해서, 중년을 지나면서 자신에게 찾아온 의심과 한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들에게 그런 시절을 아이 없이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말했다. 매일 오븐을 가득 채웠다가 다시 비워내는 일을 반복하면서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127쪽


'남의 염장 썩는 것보다 내 손톱 썩는 것이 아프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내 아픔이 가장 크다고 믿으므로 타인을 볼 겨를이 없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자신이 겪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럽다.

아이를 잃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부부가 빵집 주인의 말을 마음을 열고 듣는 장면은 내 고통이 있음에도 상대의 고통을 바라보고 들어주는, 나약하기만 한 존재들의 연대 같다.

개인이 겪는 고통은 객관적으로 경중을 따지기 어렵다. 자신만의 고통이 어느 누구의 것보다 강력하게 억누른다. 그런데도 타인끼리 허기와 먹는 것으로 아픔을 공유하는 장면이 따뜻하다.


그는 반드시 필요한 일을 했다. 그는 빵집 주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꽃장수가 아니라 좋았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만드는 게 더 좋았다. 언제라도 빵 냄새는 꽃향기보다 더 좋았다. (중략)
그들은 검은 빵을 삼켰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 있는데, 그 빛이 마치 햇빛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128쪽


2014년에 이 소설을 수 차례 읽으며 눈물과 위로의 밤을 보냈다.

사흘 동안 아이의 부모가 겪는 심리적 고통이 고스란히 전달되어서 아무때고 꺼내 읽게 되지는 않는데, 어쩌자고 다시...




이 작품의 원제는 <A Small, Good Thing>이다. 번역한 소설가 김연수는 해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카버는 인간이라고 하는 이 'small thing'의 중간에 'good'이라는 단어를 끼워 넣는다. 그러자 이 'small thing'은 'something', 즉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뭔가가 된다. 레이먼드 카버는 이 순간, 자신이 글로 쓸 수는 없지만 거기에 뭔가가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리라. 작가는 자신이 쓸 수 없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역설적으로 자신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그 순간 언어로는 전달 불가능한 뭔가가 불꽃처럼 다른 사람에게 옮겨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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