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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Sep 28. 2023

마지막 수업

거룩한 글쓰기 시즌 8 - 2023년 9월 28 (28일 차)



1. 기대가 없으니 더 행복해
오늘 오후 한 시에 휴대폰이 울렸다. 진수 이름이다. 무슨 일일까?
"선생님 뭐 하고 있어요?"
이 아이는 3년 동안 나를 가장, 제일, 최고로 힘들게 했던 초 4학년 친구다.
수업 오는 시각에 현관문을 열자마자 10분 일찍 가야 한다고, 다음 학원 가야 한다고부터 말하기 시작해서 시간 흥정으로 내 진을 빼 아이. 독서에 집중하지 못하던 아이. 레벨업을 못하던 아이. 그만 다닐 거라고 협박하던 아이.
"진수는 다른 학원 시간은 지키고 여기는 늦게 와서 일찍 가려고 하니?"
 "독서가 싫으니까요. 책이 너무 싫으니까요. 집에서 읽으면 되는데 여길 다니니까 힘들잖아요."
내 심장을 수십 번 후벼 파던 녀석이었다. 그런 아이가 왜?
"진수 왜 전화했어?"
가족과 시골 가는 길에 내가 생각나서 전화했단다. 시무룩한 목소리를 들으니 어제 "리드인 계속하면 안 돼요?"하고 묻던 표정이 떠오른다.
진작 날 좀 그렇게 생각해 주지.(솔직히 난 그런 말할 자격 없지만)
진수가 전화를 걸 그 시각에 나도 저를 생각하긴 했다. 다른 이유로 말이다.
어쨌든 통한 셈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샘도 진수 생각했는데."

"정말이오."

"그래. 진수야, 시골 잘 다녀와."
"네 선생님. 또 전화할게요."


사랑은 지나고서야 알게 되나 보다.

내가 그랬듯이.

수연이(중2)가 마지막 수업인 어제까지 결석하고 오늘 자료들 가지러 들렀다. 얼마 전 수연이가 생일이어서 립글로스를 선물로 준비해 두었는데 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늘 그렇듯 파리한 얼굴로 오전에 온 수연이는 시골로 출발해야 한다면서도 편지를 쓰겠다고 했다. 수연이가 써 주고 간 마지막 편지는 후회투성이었다.

삶이 다 그렇지 뭐. 나도 그렇게 살아왔단다. 수연아. 지금도 다르지 않아.







2. "샘은 글을 쓰게 만드는 능력이 있어요."
학생들에게 편지를 받아낸 것은 나의 치밀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법은 이렇다.
마지막 시간에 게임을 하며 즐거운 마음이 들게 한 뒤, 간식을 먹이고 간식을 선물로 준다. 더불어 그동안 아이들의 손때가 묻은 책을 선물로 주었다. 이것은 한 친구의 조언 덕분이었다. 아이들 사 줄 선물을 걱정하는 내게 책을 주라고 했던 것.

"제일 재미있게 읽은 책 골라 볼래? 간직하고 싶은 책이나. 샘이 선물로 줄게."

아이들이 책을 반기지 않으면 얼마나 민망할까 걱정했는데, 아이들은 하나같이 정말 좋아했다.

세 권을 달라는 아이들도 있어 난감했을 정도였다. 어떤 아이들은 자기가 고른 책의 앞과 뒤, 내지에 사인을 달라고 하여 받아가기했다.
아무튼 아이들이 즐거움과 고마움과 거기에 곧 끝날 거라는 아쉬움을 느끼며 마음이 말랑말랑할 때 편지지를 나눠준다.
"샘한테 몇 줄만 인사 남겨 줘."
그리고 다른 아이가 쓴 편지를 슬쩍 보여 주며 전략적인 칭찬 몇 마디를 흘린다.
"어제 누구는 이렇게 써 주었어."
"민지는 요즘 글을 잘 쓰고 빨리 써서 금세 할 것 같은데."
중요한 것은 커다란 백지를 안 주는 것이다. 여백이 크면 두려움에 장악당하기 마련이므로.
편지지를 3 등분하여 금세 쓸 것 같다는 자신감으로 시작하게 만든다. 쓰다 보면 공간이 부족해서 점점 글씨가 작고 빽빽해지고 마지막 여백까지 촘촘히 쓰게 된다.

빼곡하게 쓴 아이들은 스스로 뿌듯해하며 부끄러운 표정으로 나한테 편지를 건넨다.
그렇게 쓰게 만든다.ㅎㅎ

그래서 얻어낸 귀하디 귀한 편지들이 내 책상 서랍 안에 고이 모셔질 것이다.

아이들이 편지 쓰는 사이에 나 역시 아이들이 고른 안에 편지를 써 주었다.


독서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한테 착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무슨 조화인가 모르겠다. 이전 학원에서는 '잘 가르친다'는 소리는 좀 들었지만 착하다는 소리는 어떤 지점에서 그런 것인지 신기했는데, 이번 편지들에서 알게 됐다.

'아, 내가 화를 안 내는 것처럼 보였구나.'

실은 화가 숱하게 났는데. 다만 그 화를 고스란히 받으면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봐 3초 세고 나긋한 목소리로 '이러이러해야 너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아.' 하고 말하느라 노력한 나의 진심이 전달이 되었는가 보다.
아니면 내가 독서 수업 이전보다 정말로 착해졌거나. 그것도 아니면 착한 연기를 기막히게 잘했거나. 뭔지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았다. 어린이에게 듣는 칭찬은 늘 하늘 날 듯한 기분이 들게 하니까.

어제 수업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4년 동안 수업한 중2 아이들과 보낸 저녁 시간이었다. 평소 얌전한 아이들이어서 어떻게 데리고 놀아야 하나 걱정했는데, 저녁으로 파스타를 먹으며 아이들이 '인생네컷'을 찍자고 제안했다. 그 뒤엔 카페냐 노래방이냐 고민하다가 코인 노래방으로 결정했다!  

"너희들이 가자는 대로, 놀자는 대로 다 해 보자."

아이돌 노래를 꽤 아는 내 취향을 아는 그 친구들과 제법 코드가 맞아서 목청껏 노래 부르고 나오니 바람이 시원했다. 그 친구들 집까지 바래다주며 함께 걸었다.

초등 5학년 때 만나서 중2인 아이들 키가 160센티미터가 넘는단다. 우리는 마지막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실은 그 아이들 때문에 2주 전에 서운함을 느끼고 마음고생을 했다. 가장 정을 준 아이들인데 내 맘과 다르다고, 이 동네 아이들은 정이 없다면서.

2년은 논술 수업으로, 또 2년은 독서 수업으로 생각과 감정을 가장 많이 나눈 그 아이들에게 가장 미안했던 나는 선물도 더 크게 준비하고 기다렸다. 헌데 두 아이가 맨송맨송하게 수업을 하고는 가 버렸다. 너무도 밝은 표정으로. 나는 나의 짝사랑을 자책하며 서글퍼졌다. 

헌데 그 아이들이 다음주 마지막 수업을 와서 분홍 가방을 건넸다. 그 안에는 뭉클한 문구를 새긴 케이크가 들어있었다. 용돈을 모아 샀다고 했다. 비쌀 텐데...

"지난주는 갑작스레 소식을 들어서 무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어요."

아이들의 애정을 더 이상 기대하지 말자며 담담해지려고 애쓰던 나는 케이크 앞에서 속절없이 눈물을 쏟았다. 감사와 부끄러움의 눈물이었다.



일별로 마지막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포옹해도 되냐 물으면 한 명도 안 빼고 폭 안다. 평소 스킨십에 민감한 아이들조차 예외 없이 따스한 기분으로 포옹다. 그 감촉이 다시 살아와 글 쓰는 지금도 눈물 찔끔...
"아이들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아이들이 언니를 그렇게 원하는데 왜 그만두냐고요."
명상하는 동생이 어제 내게 한 말이다. 내 수업을 몇 주 동안 도와주었던 동생은 여기 아이들과 내 합이 잘 맞는다고,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수업이라며 응원해 주었던 터라 못내 아쉽다는 말을 하며 아이들 편지를 몇 개 읽더니 눈을 꼭꼭 눌러 눈물을 닦았다.

담담히 웃으며 얘기하는 내 앞에서 나 대신 울어준 동생, 고다.  




이런 편지 받았다고 자랑하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기성세대가 걱정하는 요즘 아이들이 참 다정한 생각과 말을 한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형식적이고 기계적으로 쓰던 독서노트 때와는 사뭇 다른 아이들의 편지를 보고 저도 놀랐답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섬세함, 이런 감성이 있었다니 하고요.

보람 컸던 일이었는데, 갖은 이유를 다 대고 그만두는 제가 잘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모모의 친구 '베포 할아버지'처럼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겠다고 다짐했으니, 불안한 마음생기는 게 당연하다고 고개 끄덕이며 가 보아야겠지요.

명절 전날에도 글을 쓸 수 있는 한가함이 있는 싱글의 한가위 저녁이에요.

제 글을 읽는 글벗님들과 가정에 평안과 풍요가 함께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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