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창한 날들 Oct 26. 2023

끝이 보이지 않지만 지금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거룩한 글쓰기 시즌 8 - 2023년 10월 25일 (51일 차)

이미지 출처 : 그림책 <삶의 모든 색>




아버지는 삼 년 전에 사고를 당한 후 절룩거리게 됐다. 사십 년도 더 오토바이를 탔던 분이 교통수단도 잃고 자율 신경이 망가져서 비칠거리며 걷는다. 손으로 물건을 잡을 때 힘을 쓰지 못하고 놓치기 일쑤다.

지난 5월 초, 주무시다 말고 호흡 곤란이 와서 응급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한 뒤 아버지의 거취를 어떻게 할지 이리저리 알아보았다. 

사회복지사인 친구의 안내로 데이케어센터를 알게 되었다. 일명 노치원이라 불리는 곳이란다. 주중엔 그곳에서 점심과 저녁은 물론 두 번의 간식을 드셔서 걱정 없는데 주말엔 집에 계셔서 돌봄이 필요해졌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드실 순 있어도 설거지 등을 하며 이십 여 분 서 있으면 급격히 기운을 못 차리고, 엎드려서 해야 하는 청소 등의 집안일도 생각할 수 없다.

그때부터 육 개월째 삼 남매가 아버지 돌봄 당번을 정하게 되었다. 지난주에 11월 일정도 카톡으로 미리 정했다.


몇 주 전 여동생과 나는 효자인 오빠 때문에 우리의 주말 생활이 없다며 투덜거렸다. 그래서 내가 언제까지 돌봄 해 드려야 하냐고 오빠에게 물었더니 "아버지께서 그만 와라 하지 않으시는데 어떻게 야박하게 끊냐. 혼자 해내기 자신 없어서 그러시는데." 하였다.

우리를 보고 싶으신 것 같다고, 그러니 가능하면 아버지랑 보낼 수 있는 시간이라 여기고 기꺼운 마음으로 돌봄 하기로 하고 서로 토닥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돌봄이지만, 우리를 키우셨을 젊은 날을 생각하면 타산적인 내 생각이 부끄럽기도 하다.


내가 당번일 때마다 나는 아버지를 인터뷰하여 기록도 하고 녹음도 한다. 어제는 한때 조선 호텔 요리사였다던 친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었다.

말을 안 시키면 텔레비전만 보는 아버지가 최대한 많이 웃게 허튼 농담도 마구 투척한다. 사소한 일도 모르는 척하고 여쭈어본다. 그러면 아버지의 얼굴 근육이 펴지면서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상세히 설명해 주신다.

지난 주말에는 아버지만의 된장찌개 비법도 설명 들었다. 손두부와 비비고 사골육수였다. 하하. 특히 국물에 각종 재료를 투척하는 순서가 중요하다고 하셨다. 된장찌개, 젓갈 무치기 등은 엄마 사후에 아버지가 스스로 터득하고 자신 있어하는 것들이다. 그런 것들도 요즘 자유롭게 못해 드셔서 아쉬워하지만, 내가 반찬을 해 드리면 맛있게 잡숫는 것이 아버지 특기다.

"다음번에 오면 무얼 해 드릴까?"

"아무거나. 다 맛있지. 그런데 안 해도 된다니까. 성당이랑 구청에서 배달해 줘."

"그래도. 제가 요새 반찬 만들어 먹는 데 취미 들이고 있다니까요."

"그럼 돼지고기 넣고 김치찌개. 손두부 큼직하게 넣어서."

"기다리십쇼."

아버지 책상 달력 11월에 우리 남매가 당번인 날에 이름을 큼직하게 적어 드리고 나오려는데 어정어정 걸어오며 나를 부르셨다. 주머니에서 5만 원권을 꺼내어 건네셨다.

"에구 다 큰 딸한테 무슨 돈을 주세요."

"받아. 기름값 해."

있다고 한사코 안 받으려고 하니까 하시는 말씀.

"너 돈 안 벌잖아. 아빠가 용돈 주는 거야."

눈물이 핑글 돌았지만 아닌 척하고 환하게 웃어드렸다.

"넵. 저 몇 달만 쉬고 다시 일할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빠 큰딸 아직 경제 능력 있어요."

"그럼. 능력자인 거 알지."

어두워진 골목길을 운전해서 나오며 아버지 때문에라도 오래 쉬면 안 되겠는걸, 싶었다.

삼 개월에서 육 개월은 쉬려고 했는데 어쩐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 인터뷰를 오빠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