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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Oct 30. 2023

아버지 인터뷰를 오빠가?

거룩한 글쓰기 시즌 8 - 2023년 10월 30일 (55일 차)

대문 이미지 : 글벗 심박이 그려준 생전의 엄마, 아버지




2016년도부터 소설 동인지 출간에 세 번 참여했다. 오빠와 동생은 그걸 알고 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인터뷰를 몇 번 는데,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오빠와 동생은 그러려니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지난 오월부터 아버지 돌봄이 필요해지자 온 가족이 모이는 일보다 당번을 정해 아버지와 독대하는 일정이 메인으로 자리 잡았다. 아버지와 공통 화제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대화를 밀도 있게 하는 방법은 인터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께 갈 때마다 질문하고 답을 메모해 왔는데, 다른 남매에게 제안하기가 망설여졌다.


아버지 댁의 묵은 청소를 하고 국물 등 간단한 것도 조리해서 함께 식사하거나 간혹 식당에 모시고 가는 등 분주한데 무슨 인터뷰까지 하느냐고, 부자연스러워서 싫다고 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래도 내가 질문하여 듣는 답과는 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오빠와 동생, 올케 언니에게 부탁하고 싶었다.


어제 이태원 참사 추모대회를 가는 전철에서 갑자기 용기가 났다. 우리에겐 어쩌면 많은 날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전부터 생각해 온 건데...

아버지 돌봄 당번날에 아버지에게 세 가지 질문하고 답을 듣는 인터뷰를 녹음하면 좋겠어요.

녹화 영상이나 녹음은 단톡방에 공유하고~~

아버지랑 대화도 늘리고 아버지 과거 기록도 할 겸~~

- 카톡 메시지


마침 오빠가 당번인 날이었다. 갑자기 어떤 질문을 할지 몰라 당황할 것 같은 오빠에게 질문거리 목록을 캡처한 사진을 공유했다.


과외를 가야 해서 추모대회에 끝까지 참여하지 못하고 지하철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와! 오빠가 카톡에 영상을 올다! 팔 분짜리 영상이었다. 오빠가 당일에 해 내다니 적잖이 놀랐다.


저녁을 먹고 난 다음인 듯했다. 아버지는 거실에 침대를 두고 커다란 텔레비전을 보며 지내는데 면도를 한 단정한 모습으로 앉아서 눈동자가 안 보이는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지난주에도 뵙고 왔는데 영상으로 아버지를 보니 눈물이 왈칵 나왔다. 오빠를 마주할 때 아버지는 저런 눈이시구나. 작지 않은 눈인데 주름살이 깊어져 하회탈 인상이 되는 아버지가 어색하지만 기분은 좋은 듯 웃으며 오빠의 질문에 차근차근 답을 하였다.


영상 아래 오빠가 톡을 남겼다. 내가 올린 질문 사진을 보지 못해 아쉽다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영상 내용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나이스!

내가 생각지 못한 내용이 전개되었으니 말이다. 오빠는 저런 데 관심이 있구나.

예컨대 나는 인간관계가 가장 궁금한데 오빠는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며 살았는지,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 총각 때와 결혼 후에 그런 것들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물었다. 어쩌면 아버지 혹은 가장의 삶이라기보다 인간 *기순 씨, 남성 *기순 씨를 묻고 싶은 것 같았다.

"아버지 당구 좋아하셨잖아요. 거의 프로급이라 들었는데 계속하면 어떠셨을 것 같아요?"

- 거기에 종사하고 있었겠지. 당구장을 운영했다든가.

"아버지 당구 말고 웬만한 스포츠는 다 좋아하시죠? 직접 해 본 스포츠도 있었었요?"

- 군대 가기 전에. 조기 축구회도 했지.

"저는 아버지가 운동을 하셨다는 기억이 전혀 없는데. 정말 몰랐네요. 아버지가 운동 신경이 있으셨군요."

- 좀 있었어. 결혼하고 나서 관심을 끊었지.

"그럼 결혼 후엔 무슨 일에 관심 갖고 지내셨어요?"


인터뷰 덕에 아버지의 본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변천사를 처음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 동사무소와 구청주택과에서 일하다가 그만두게 된 사연도 들었다.

"쌍문동 밭 가운데 있는 천막집에 세 남매가 살고 있었는데 강제 철거를 안 한다고 주택과장하고 싸우고 그만뒀지."

- 애들이 안쓰러우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의 표정에서 침통함이 스쳤다.

"주택 과장이 길길이 날뛰어서 내가 쫓겨났지. 철거시키러 갔다가 라면만 한 상자 주고 오고. 내가 몇 번을 그랬거든."

이 사건 이후로 아버지는 평생 잡일을 하며 살았으니 기가 막혔다.


사 년 전 교통사고 이후로 아버지의 발음이 어눌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는데 오랜만에 또박또박 발음하여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청장년이던 아버지의 계절로 잠시 다녀온 기분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하하"

오빠의 호쾌한 웃음소리와 다시 펼쳐지는 아버지의 하회탈. 어쩌면 오빠도 이런 시간을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말에 동생은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다.

 


 

인터뷰 내내 텔레비전의 스포츠 중계 소리가 나와서 때로는 아버지 목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아침마다 전화할 때도 텔레비전 소리 때문에 아버지 발음을 듣기 어려운 나는 음소거를 부탁드리는데, 오빠는 웬만하면 아버지의 습관을 그대로 두는 편이라서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한 것 같았다. 나 같았으면...

남매들의 인터뷰가 얼마나 갈지, 어떤 모양새로 발전해 갈지 모르겠지만, 첫 발을 뗀 것에 박수를 치고 싶다. 협조해 주는 우리 오빠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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