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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Jun 05. 2024

목소리가 안 나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영웅 서사에는 '범인(凡人)'이 결코 겪지 않을 상상 이상의 고난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어쩌면 노래와 관련해서 영웅이 될 운명을 타고났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며칠 전 화장실에서 소설을 읽다 말고 했다. 불현듯. 전에는 언감생심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라는 소설을, 아니 작가의 말을 읽을 때였다.

 

느닷없이 웬 영웅이냐고?

뭐 대단한 거나 있는 양 포장하고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 마음이 들어서라고 해 두자.

과장임에 분명하더라도 노래를 몹시 좋아했던 소녀에게는 퍽 비극이었으니 이해해 주시길.




살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일을 두 번 겪었다. 두 번이나.


첫 번째는 고등학교 1학년 음악 수업 시간 때 일어난 일이었다.

음악 시험 준비를 위해 며칠 동안 느티나무 아래에서 노래를 연습했다. 존경하는 음악 선생님께 내 목소리를 들려드리겠다는 포부로 그날만을 기다렸다. 실은 나를 증명해야 할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흑역사.
미션 학교인 우리 학교에서 해마다 열리는 성가 경연 대회에서 지휘를 맡았다. 상의는 흰 티셔츠, 하의는 청치마를 입기로 했는데 청치마가 없었다. 나는 사촌 언니의 실내복인 파란색 A라인 면치마를 입고 갔다. 그것이 얼마나 나풀거릴 줄도 모르고. 대강당의 단상에 선 지휘자가 '영광 영광 할렐루야'를 지휘하며 두 팔을 휘저을 때마다 슬쩍슬쩍 팬티가 보였나 보다. 지휘하던 내 뒤통수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노래를 멈출 수 없어 끝까지 열정적으로 지휘를 하였다. 노래가 끝나 뒤돌아 섰을 때 강당 안의 2천여 명이 박장대소하였다. 얼떨떨했다. 이 반응 뭐지? 이 사건 이후 나는 극심한 우울감에 빠졌고 고 1 내내 어두운 소녀로 지냈다. 그때는 그런 용어가 없었지만 공황장애 증세를 겪었던 것 같다. 모두의 눈을 피해 다녔다.
- 5월 19일에 쓴 글 중에서



얼마 전 쓴 글에서 고백한 '엉덩이춤 지휘' 혹은 '팬티가 보이는 지휘' 사건 때문이었다. '

'제가 지휘는 비록 우습게 했지만 노래 연습을 엄청 많이 했고 멋들어지게 불러보겠습니다!'

음악 선생님이 우리 반 성가곡 연습에 도움을 많이 주셨기 때문에 그분의 명예에 누를 입힌 것 같은 죄송스러움이 가슴속에 있었던 것이다. 성실함으로 감사 인사를 대신하겠다는 의지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간 자리였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우리 반의 반주자가 딩동, 하고 반주를 넣어주었다.

산골짝에~하고 불러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음악 선생님이 서너 번을 다시 반주해 주라고 지시하며 내게 기회를 주었다.

그런데 목에서 바람만 나갔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음악 선생님과 창밖으로 날아오르는 새와 평소에 노래를 잘 부르진 못해도 노래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는 반 친구들이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고, 나는 얼굴이 벌게진 채 울고 있었다.

잿빛으로 남아 있는 기억 속의 음악실 풍경.


그날의 풍경이 가끔 꿈에 나타난다. 꿈에서도 노래하는 나만 있을 뿐, 소리는 없다.

어른이 되어 나도 모르게 이 노래의 첫 소절을 흥얼거릴 때가 있는데 조건반사처럼 눈물이 흐른다. 


뜬금없이 영웅 운운하며 무의식 깊숙한 곳에 묻어 두었던 노래, 그 노래 제목이 무엇이었을까. 그동안 검색해 볼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요새 노래에 자신감이 붙어서였는지 '없었던 일로 돌려놓고 싶던 그 노래 제목이라도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산골짝에 쌓였던 눈이 녹아'라는 도입부를 검색창에 썼더니, 노래가 떴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하필이면 본 적도 없는 영화 '대부'의 OST라고 되어 있어 두 번째 놀랐다.


산골짝에 쌓였던 눈이 녹아 땅을 촉촉이 적셨네
봄은 다시 강산에 꽃소식 전해오고
삼라만상 새 생명 약동하니
춘삼월이 돌아왔네 새 봄을 노래하자
슬픔이여 사라져라 가는 저 겨울 함께
지금은 봄, 춘삼월이 돌아왔네

-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https://youtu.be/9Rt7EAmZ62c?si=EyIuALwOt5cyvAkh



학급의 성가곡을 망치는 바람에 친구들의 연습까지도 우습게 만들어 버린 내가 반 친구들 앞에서, 음악 선생님 앞에서, 기본기 연습을 하고 온 사람으로 나를 증명하고 싶었던 바람이 너무 컸던 걸까?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열일곱의 내가 안쓰러워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늘 고개 숙여 땅만 보고 걸어 다니는 등 아주 소심한 고교 생활을 했다. 그때의 친구들은 아직도 나를 ENFP 성향 다분한 친구 많은 창창으로 기억한다고 하지만, 나의 마음속은 늘 그늘로 채워져 일기장엔 자주 죽음과 가까운 낱말들을 쓰곤 했다.


두 번째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 것은 시댁 식구들과 함께 간 노래방에서였다.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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