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을 듣자 마자부터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상담사와 인사를 나누고, 상담 일지에 사인을 하고 난 바로 뒤였다. 심한 안구건조증인 내 몸 어디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인지...
전 남편에 대한 집착과 그리움을 끊어내고 싶어요.
Q 이혼 이후 가장 무겁게 느껴지는 마음은 어떤 건가요?
'우리는 도대체 왜 헤어져야 했을까'라는 의문이에요.
상담은 1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창창 님, 두 분의 이별을 본인이 주도적으로 정리하지 못하셨는데, 그 상황을 만든 것이 자신 때문이었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계시는 것 같아요. 게다가 부부가 함께 만나던 지인들로부터 손과 발이 끊긴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이니 버림받았다고 느끼시는 걸 테죠.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상담사 님이 차분한 성격이었다. 눈빛을 마주하면서도 다정하고 부드러운 시선이어서 내담자인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내 말을 차근차근 들어주면서, 섣부른 질문이나 판단을 하지 않는 그녀가 고마웠다. 덕분에 편하게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마흔 살에 우울증 진단을 받고 만난 정신과 의사들 중 내 속을 박박 긁은 분도 있었으니 모든 상담사가 내담자를 편안케 하고 만족하게 하지만은 않을 테다.
무의식에 꽁꽁 숨어 있던 마음들이 두레박에 물 길어 올리듯 찰랑찰랑 채워져 올라왔다. 오랫동안 말라 있는 줄 알았던 우물이다.
"남편 분 이야기만 나와도 눈물 흘리시는 걸 보니 해소되어야 할 감정과 풀어져야 할 의문이 아직 많으신 것 같아요. 창창 님께서 해 볼 수 있는 일들이 아무것도 없었고 지금도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판단하니 답답함과 상실감을 느끼고 계신 것 같아요..."
그 말을 듣자마자 또 눈물이 콸콸 흘렀다. 어쩌자고...
혹시 이 양반이 오늘 첫 상담 날이니 강력한 인상을 주기 위해 나를 울리려고 작정하신 걸까.
상담사의 말대로 우리 이혼은 내 의견이 배려받지 못한 일이었다.
그가 혼자 지내고 싶다고 하여 1년만 따로 지내보라고 졸혼 형태로 허락한 일이었으나, 석 달 뒤 최종 이혼을 하게 되는 예상치 못한 과정의 급물살을 탔다.
그가 후배의 집으로 나간 때로부터 이혼까지 석 달 동안 우리는 매일 서로를 차갑게 대했다. 공동 운영하던 학원의 자금난으로 연일 다퉜고, 그가 나를 전처럼 다정하게 봐주지 않아 서운함이 컸던 나는 감정 표현을 했다.
그가 서류 이혼을 하자고 했을 때 거기에 응하면서도 그가 다시 올 거라고 믿었다. 우리가 어색해진 것은 잠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해 12월 23일에 최종 이혼을 했으니 성탄절 이브를 혼자 보낼 생각으로 가슴에 통증이 일었다.
친구로 매월 한 번씩 만나 밥이라도 먹자는 나의 제안에 그는 답을 하지 않았고, 그의 바람대로 해 주다 보니 오늘까지 왔다. 나는 우리가 왜 친구로 지낼 수도 없는지 안타까움을 품은 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곰탱이로 살았다. 1000일 넘게 매일 글을 쓰면서.
지금 나 혼자 사는 집에는 그와 함께 배우던 기타가 두 대, 그와 나의 살에 닿던 침구류, 결혼 앨범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누가 들으면 나에게 스토커 기질이 있다고 할까 봐 말하기도 겁나는, 나는 이혼 4년 차이다.
나는 아직도 인지부조화 상태인 것 같다. 내 앞에 놓인 인생길을 과연 나 혼자 걸어가야 하는 길인가, 자꾸만 머뭇거리게 되고 그가 이제나 와 줄까 저제나 와 줄까 대문 밖을 기웃거리고 있는.
지난 4년 동안 매일 글쓰기를 통해 이혼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몇 편을 쓰다 보니 점점 쓰지 않게 되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다짐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글을 읽는 이들이 나를 답답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한 달 전 안산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희망리턴패키지'(재취업자를 위한) 교육을 받던 중 나를 담당한 직업상담사가 조심스레 권유하였다;
"이혼하신 이후 상담을 받아 보지 않으셨다고 하셨죠? 한 번 받아 보시는 게 어떠세요?"
구직자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심리 고충 상담'이라고 했다. 취업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심리적 문제를 해소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신청서에 상담 목표를 적도록 되어 있었다.
'전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을 끊고 의연한 삶을 개척하고 싶다'라고 적었다.
오월 십육일부터 시작해 지난주까지 세 번 상담을 받았다. 지난주에는 TCI, MMPI라는 심리검사 진단을 받았다.
그중 TCI는 '개인의 기질과 성격을 구분하여 측정'하는 심리검사라고 한다. 지난주에 일부 결과를 듣다가 왔고 내일 네 번째 상담에서 나머지 결과를 설명 듣기로 하였다.
상담사는 나의 기질과 성격을 차근차근 말해 주면서 남편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남편과는 뭐가 달랐는지, 뭐가 힘들었는지 물었다.
나는 선뜻 답하지 못하였다. 실은 30년이나 함께 지내는 동안 남편과 나는 많은 부분이 섞여서 그 사람이 이런 사람인가, 저런 사람인가 모든 게 흐릿하다는 느낌이라고 답했다. 상담사는 그럴 수 있다며 내 말에 수긍해 주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남편 운운하며 그에 대한 미련을 끊어내지 못하는 나와 달리 그는 혼자만의 시간이 자유롭고 평화롭다고 느끼며 자기가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며 낄낄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다른 누군가와 연애를 하며 달콤한 시간을 누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그런데 나는...
지금은 비록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웃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 날이 오겠지. 이런 시간마저 나를 성장케 했다고, 잘 건너왔다고 나를 토닥이는 어느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