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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Jul 11. 2022

작은 여자애



1.

처음부터 마음에 든 건 아니었다. 키도 작고 몸도 약해 보이고, 우리 아들 짝으로는...  그래도 어쩌겠나. 아들이 그렇게 좋다는데. 아들이 사람 보는 눈이 평균 이상은 되리라 믿었기에 생전 처음 데리고 온 그 여자애도 믿어보기로 했다. 우선은 그 애 표정이 솔직해서 마음이 조금 놓였다. 좋고 싫은 게 얼굴에 드러나는 타입이었다. 우리 아들을 속여서 홀린 것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2.
아들 나이 겨우 스물넷인데 아기를 가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가 막혔다. 학교 공부는 어쩌고, 군대는 어쩌고, 미래는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는지.

내 나이 쉰도 안 돼 손주를 받을 줄을 상상이나 했겠나. 작은아들 학교 잘 들어갔다고 축하받은 게 엊그제인데 애아빠가 된다고 어디에 내놓고 말하기가 남세스러워서 누가 알까 두려웠다.


3.
아들은 대학에 입학한 뒤 1학기 기말시험을 보고 나서부터 집에 오지 않았다. 2학년 되면 입대는 하겠지 했는데, 소식도 끊고 살던 아들이 여자애가 생겼다고 한번 데리고 오더니, 또 몇 달 소식 없다가 이번엔 아기를 가졌다며 연락을 해 왔다. 며칠 밤낮을 하얗게 지새우며 미치는 줄 알았다. 어쨌거나 새 생명을 모른 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3.
둘이 알아서 살라고 했는데, 뜻밖에 여자애가 아들과 함께 집에 들이닥쳤다.

여자애는 당돌하게도 자기들과 함께 살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약은 건지 순진한 건지... 약지 못한 데다 제 아버지와 서먹한 사이인 아들 머리에서 나온 꼼수는 아닐 것이리라. 아들 얼굴 좀 보라지. 마뜩잖은 얼굴로 여자애 옆에서 쭈뼛거리는 폼이라니.

"어머니, 저희 둘이 열심히 돈 벌 테니 저희 아기 좀 키워 주세요. 종서(작은아들) 공부도 계속하게 해야 하잖아요."

어머님이라며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여자애를 보니 기가 막혔지만, 우리 아들 공부시키겠다는 말을 들으니 기특하기도 했다. 그나저나 저는 어쩔 것인가.

아무려나. 함께 살 걸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했는데, 아들이 군입대도 하고, 혼인신고해서 정착하겠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여자애가 아니었으면 아들은 군 도바리 상태로 어디로 숨어 소식을 끊고 지낼지 모를 일이었다.


4.
여자애가 분만하기 두 달 전부터 세 집 살림을 합쳤다. 우리 부부, 그애들, 큰아들.

우리 부부가 안방, 작은아들네가 부엌에 달린 방, 큰아들이 우리 옆방을 쓰기로 했다.

비싼 서울 땅에서 반지하에 살며 직장 다니던 큰아들이 안쓰러웠는데, 함께 살게 돼서 좋았다.

지방에서 일하던 남편도 돌아오게 되어 우리 식구는 사 년 만에 여자애 하나,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기 하나까지 모두 여섯이 되었다.


5.

작은아들이 아기를 가진 게 선물인지 재앙인지 결말은 끝까지 더 살아봐야 알겠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났다.

무엇보다 두 아들과 제 아버지의 사이가 좋아진 것이었다. 아이들 청소년기부터 부자지간이 끝 모를 파국으로 치달아 아들들은 제 아버지 보기를 꺼려했는데, 여자애가 함께 살면서 관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 상에서 밥을 먹고 후식으로 차도 마시고 과일도 먹고 거실 소파에 모여 앉아 텔레비전도 함께 보게 됐다. 여자애를 빼놓기 뭣해서 이것저것 함께하다 보니 우리 네 식구만 살 때보다도 어울리는 일이 더 많아졌다. 늘 아버지 행동에 불만이던 작은아들이 얼마나 순순해졌는지, 사람이 저렇게 변하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6.
소문이 문제였다. 아들들과 합친 걸로 모자라 손주를 본다는 소식에 인천에 모여 살던 우리 친정 식구들이 집들이를 하라고 아우성이었다. 언제까지고 미룰 수는 없었다.

집들이 겸 친정식구들을 초대한 날이었다.

우리 어머니, 남동생 내외 두 쌍, 미혼인 막냇동생, 사촌동생 내외까지 어른 여덟 명이 방문했다. 충청도까지 다니러 오던 형제들이 누나가 경기도로 이사 왔다고 하나도 빠짐없이 출석했다.

친정 식구들은 얼마 전에 좋은 대학을 들어갔다고 축하한 조카(작은아들)의 옆에 선 배 부른 여자애를 힐끔거렸다.

내 동생들은 우리 아들들 어릴 적부터 가까이 지내 사이가 썩 가까웠다.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작은아들에게 어디 가 살다 나타났느냐고 안고 울고 난리였다. 작은아들은 얼마나 환하게 웃는지, 저 애가 어릴 때 말고 저렇게 웃은 적이 언제였더라, 뭐가 자랑할 일이라고, 속도 없지, 바보 녀석 같으니라고.


7.    

여자애 장점은 인사성이 바르다는 거였다. 천연덕스레 인사를 얼마나 잘하는지, 쪼르르 나가 제 친척 어른들 대하듯 인사를 넙죽넙죽 잘도 했다. 기는 안 죽어 다행이다 싶었다.

여자애가 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아들처럼 공부만 하다 대학 갔겠지 하니 이해가 안 될 것도 아니었지만, 칠월의 이른 더위에 며칠 전부터 음식 준비를 혼자 다한 나는 벌써 진이 다 빠져 있었다.

만삭인 애를 일 시키기도 뭐한데, 여자애는 내 옆에 붙어서 뭘 도와드릴까요 하고 귀찮게 물었다. 거추장스럽기만 해서 자꾸 저리 가란 소리를 했는데, 작은아들이 여자애 옆에 붙어서 시시덕거리며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됐다! 다들 저리 가. 성가시기만 해."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맛있게들 먹어 주어서 다행이었다.

거실에 술상이 남았고, 여자들은 안방으로 들어갔다. 과일 접시를 들려 여자애더러 갖다 드리라고 했더니 오래지 않아 아이가 나왔다. 불편하기도 하겠지.

여자애는 지들 방으로 들어가 쉬겠다고 했다. 그래라. 배는 불러서 더위에 힘들겠지.

스물셋에 첫 애를 낳았던 때가 떠올랐다. 우리 시부모는 남편 어릴 때 돌아가셨다 하고, 만날 술을 퍼 마시던 남편 덕에 만삭인 몸으로 한겨울에 물을 길어다 아이 낳을 준비까지 다했던 나였다. 자도 자도 졸릴 때였다.


8.

찻상을 준비해 안방 문 앞에 섰을 때 안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키가 너무 작지 않아?”

“갈색 눈동자 봤어? 치아도 누런 게 담배 피우던 거 아냐?”

“요즘 애들 담배 피울 수도 있지. 그나저나 몸이 약해 보이던데.”

“애가 기가 좀 세 보이더라. 둘 다 운동권이었다며?”

“운동권은 혼숙하고 그런다더니, 남자 집에 들어와 사는 건 아니지 않아요?”

방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여자들은 화들짝 놀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한쪽에서 잠이 깊이 드신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그냥 웃었다. 찻상을 놓고 정리할 게 있다며 서둘러 방을 나왔다. 망할 것들. 저들 집으로 돌아가서나 말할 것이지 다 들리게 뭐하는 짓들이야.

작은아들네 방문을 여니 여자애가 만삭의 배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잠들어 있었다. 나만큼이나 작은 애였다. 몸은 어째 저렇게 말랐는지.  

거실에서는 남편이 피로한 얼굴로 마지못한 채 술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공부 잘하던 작은아들인데 내세울 것도 없고, 저이도 안 됐지.

제 아내에게 운전을 맡긴다 어쩐다 하는 남자들은 술기운으로 불콰했다.

안방으로 들어가니 여자들은 아직도 수군거리고 있었던 눈치였다. 부아가 치밀었다. 예상치 못한 감정이었다. 친정 동생들은 마치 내가 그 여자애를 마음에 안 들어할 거라 의심치 않는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아니다. 이것들아. 내 아들이 서울대는 떨어졌지만, 언감생심 지들 자식들에 댈 거야?

친정 식구들이 함부로 말하는 여자애는 내 아들이 선택한 여자다. 내 아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만 같아서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만만한 여동생을 불러냈다.

“그런 소리 하려거든 집으로들 가라들. 식은 안 올렸어도 내 아들 여자고 우리 손주가 저 배에 있어. 어딜 감히 함부로들 지껄여, 지껄이길.”

여동생은 여자들과 남자들을 닦아세우며 파장이 되도록 앞장섰다.


9.

현관에서 배웅하는 소리에 여자애가 달려 나왔다. 며칠 전부터 발바닥이 퉁퉁 부어 아프다던 여자애는 잠이 덜 깬 얼굴로 위태하게 뒤뚱거렸다.

“서두를 것 없어. 조심해라.”

어렵다는 층층시하의 시댁 어른들을 응대하느라 버거웠을 여자애는 생글거리며 마지막 인사를 잊지 않았다.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

저 애는 얼굴에 철판을 깔았나.




시어머니가 나를 처음 봤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시어머니는 다정한 편은 아니지만 뚝심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반듯하고 의리 있는 분이었다.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 가끔 그 분에 대한 추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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