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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Oct 21. 2021

부들, 부들

스물하나, 스물둘


여자 스물한 살, 남자 스물두 살.
우리가 만나기로 한 장소는 대학가 앞에 있는 사회과학 서점 <풀무질>이었다.

먼저 도착한 사람이 책을 읽고 있으면 상대가 왔고, 무슨 책을 읽고 있었는지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가 거리로 나 목적지 없이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다리 아픈 줄 몰랐다.

대학로, 서울대병원 캠퍼스, 창덕궁 옆길을 걷다가 자판기의 커피를 뽑아 길가에 앉아 함께 마셨다. 배가 고파지면 라면 한 그릇, 김밥 한 줄을 시켜 사이에 놓고 나눠 먹었다. 가족이 아닌 이와 라면 국물을 한 데 놓고 퍼먹은 건 처음이었다.


그는 남자치고 많이 먹지 않았다. 뭐든지 잘 먹는 오빠를 둔 나는 그가 양이 적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그의 본가에 초대됐을 때 그의 먹성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의 어머니가 손수 만든 만두로 상을 차려 주셨는데, 그는 냉면 그릇에 꽉꽉 눌러 담은 만둣국을 세 대접 먹고도 왕만두를 두세 개 따로 먹는 것이었다. 그래선가 어머니는 당신도 두 대접을 드셨고, 내게도 두 대접을 권해서 목이 차오르게 먹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만둣국의 느낌이 되살아난다.




한 달 만에 만나기로 한 그날, 나는 풀무질에 딱 하나 있는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창 안으로 햇살이 과감하게 들어와 내가 앉은자리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하지 않던 화장을 했고, 즐기지 않는 원피스를 동생에게 빌려 입었다. 트레이닝복이나 청바지만 입다가 여느 때와 다른 차림새여서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까 봐 긴장되었다. 전날 밤 사회과학 토론을 준비하느라 책을 읽으며 늦게 잤던 터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얼굴이 푸석거렸다. 화장으로 가려지지 않았지만 너무 오랜만의 만남을 미루기는 싫었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들키지 않으려고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가 얼른 와서 앉아 주기를 기다렸다.

쿵. 쾅. 쿵. 쾅.

아니다. 그가 내 앞에 앉을 시각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쿵. 쾅. 쿵. 쾅.


유리문이 열리자 그가 여섯 살배기 어린이 키만 한 신문지 뭉치를 들고 책방으로 들어섰다. 보지 않아도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표정이 느껴졌다.
그는 진회색 양복바지에 흰색 와이셔츠, 짙은 풀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뜨개질을 잘하신다는 어머니가 짜 준 조끼를 단정하게 입은 그는 귀공자로 변신한 듯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잠실 아파트에서 살며, 강남 8 학군 학교에 다녔다고 했다. 그때의 부귀영화는 그가 고3이 되면서 거품처럼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는 갑작스레 닥친 가난이 좋았단다. 돈으로 다 된다고 믿었던 폭군 같은 아버지가 종이호랑이가 돼서 좋았노라고. 잠실 아파트 반대편의 반지하방이 그렇게 편안했노라고. 가난이 반가웠다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그를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그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쿵. 쾅. 쿵. 쾅. 쿵.

그가 탁자 위에 신문지 뭉치를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무엇이냐고 눈빛으로 묻자 그가 신문지 뭉치의 입구를 내 쪽으로 돌렸다. 처음 본 식물이었다. 핫도그같이 생긴 것들이었다.
“만져 봐.”
비로드처럼 보들보들했다.
“부들이라던데, 혹시 알고 있어?”
“아니.”
“어머니가 집 앞 저수지에서 가져다주셨어. 너한테 선물해 주라고. 꽃꽂이에도 쓰인다던데.”
“부들이구나. 느낌이 부들부들해서 부들인가?”
지금 같으면 검색부터 해서 둘이 부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겠지만 그저 부들을 함께 바라보고 있는 게 좋았다.

길가 꽃집에서 연인에게 사 주는 흔한 꽃이 아니어서 좋았다.

손에 뭐를 들고 다니기 귀찮아하던 그가 보령 시골의 마을버스와 시외버스, 전철을 갈아타면서 길고 큰 뭉치를 들고 내게 왔을 모습을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뭉클하고 설렜다.
그날 밤 헤어질 때까지 그는 부들을 줄곧 들고 다니다가 우리 집에 내가 들어갈 때에서야 손에 건네주었다.
주머니가 늘 비어 있던 그에게 선물 받기를 바란 적은 없었다. 부들은 우리가 사귄 지 반년이 넘는 동안 그가 처음으로 내게 선물한 거였다.




부들 일 년 뒤 둘이 동거하게 된 집에도, 집을 몇 번째 옮겨가다가 드디어 우리가 처음으로 16평 아파트에 입주하던 때에도 줄곧 우리와 함께였다.

아들이 일곱 살 될 때니까 십 년쯤 되는 시간이었다.

더는 물이 공급되지 않는 식물이 십 년이나 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부들은 5년 뒤 25평 아파트를 사서 이사할 때 버려졌다.

만지면 바스러져도 그대로 두면 형태를 잃지 않기로 작정한 것 같은 부들을 버리고, 우리는 집을 조금은 고급스럽게 치장할 수 있는 그림이나 조각품들을 사서 채웠다.

2~3년 주기로 이사할 때마다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는 선에서 소품들은 쉽사리 교체되었다.




작년에 그가 원룸을 얻어서 나간 지 며칠이 지난 시월의 어느 날이었다.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져 주차장에서 오들오들 떨며 현관문을 열었다.

밤참을 무얼 먹을지 의논하며 함께 귀가하던 집안은 이제 나 혼자였고 캄캄했다.

그가 자던 방에 들어가 불을 켰다. 갓도 없는 형광등이 깜빡거리다 하나는 어렵게 켜지고 그나마 하나는 아예 켜지지 않았다.

몇 달 전부터 그는 내게 안방을 내주고 자기는 군대에 간 아들이 쓰던 그 방을 쓰고 있었다.

아들이 쓸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지내는 동안에는 어둡고 차가운 그 방이 늘 미안했다.

방엔 책상과 싱글 침대만 덩그마니 놓여 있다. 매트리스 위에 앉았다.

그가 누웠던 자리가 누렇게 변색한 채 조금 꺼져 있었다. 손으로 그 자리를 쓸어보았다.

북쪽 방이라 햇볕이 들지 않고 창밖에 뒷산이 바투 있어서 늘 찬 기운이 감돌던 방이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나는 두 팔로 내 어깨를 감싸 안고 몸의 떨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저항할수록 허리가 꺾일 정도로 온몸이 떨려왔다.  

언젠가, 이 떨림이 멈추는 날이 오겠지. 오겠지. 오겠지.




요 며칠 날이 갑자기 차가워졌다.

집 근처 갈대습지 공원을 걸으며 부들을 보고 와서 그럴까. 일 년 전 이맘때가 떠오르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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