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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타로 이해하기

일본 애니메이션 <코타로는 1인 가구>

by 창창한 날들




아들이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여 내게도 가끔 소개한다.

'약속의 네버랜드, 바이올렛 에버가든, 원펀맨, 은밀한 회사원' 등이다.

어느 때는 내가 추천한 작품이 아들의 기호와 정서에 맞아서 '엄마 덕에 자기 분야가 넓어진다'는 칭찬을 듣기도 한다.

영화 <두 교황>과 <쓰리 빌보드>가 그랬고, 애니 <코타로는 1인 가구>가 그랬다.

각자의 마음을 움직인 작품은 대화에서 역동을 일으키고 서로에 대해 새로운 면을 알게 되어 시간이 아깝지 않은 만남으로 기억된다.

나는 아들에게 소개할 좋은 작품이 없을까, 즐거이 숙제한다.

최근 연애하고 있는 아들은 <코타로는 1인 가구>를 여자 친구에게 소개했단다. 여자 친구와 뜻밖의 영역까지 대화를 나누었는데 엄마 덕분이라며 엄지 척을 해 주는 러블리해진 아들.



[코타로는 1인 가구]는 20여 분짜리의 10화 애니메이션이다.

원룸 '시미즈' 203호의 네 살짜리 소년 코타로와 이웃 어른들이 따로 살지만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어린 나이에 혼자 자야 하는 코타루는 밤마다 켜 놓은 역사 애니메이션 '토노사마맨'의 대사를 달달 외우고 누구를 만나든 '~했는가?', '~한다네'하는 말투와 행동까지 따라 하는 아이다.

'슬기로운 1인 가구'로서 야무진 코타로는 반찬도 잘 만들고, 알뜰하게 때론 과감하게 쇼핑을 할 줄 안다.

코타로의 옆집에 사는 팔리지 않는 만화가, 카리노 신은 코타로의 최측근 인물이다. 냉정한 듯한데 따뜻한 사람이라서 자립적인 코타로의 자존심을 지켜주며 보살피고 자신과 만화가 더불어 성장한다.

코타로는 깨끗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날마다 대중목욕탕에 가는데 그런 코타로가 걱정되어 카리노가 밤마다 동행하며 친해진다.


20분 분량 안에 희로애락이 다 들어 있으며, 한 회차 보고 나면 잔상이 오래가서 10회 차를 몰아서 보기 어렵다.

X와 헤어진 지 얼마 안 돼 이 작품을 보게 되었다. 혼자 밤을 보내느라 공포에 떠는 코타로를 보며 함께 울었고, 반찬 군들과 대화하는 코타로에게서 '혼자 재밌게 살기'의 아이디어도 얻었으며, 타인을 온 마음으로 대해 주는 모습에서 교훈도 얻었다.


네 살도 산다. 저렇게 매 순간 진심으로 산다.

시종일관 무표정이고 '웃는 연기의 달인'인 코타로가 맘껏 웃을 수 있게, 맘껏 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다정한 이웃들이 있어 시미즈라는 공간은 비현실 같지만 따뜻한 곳이다.


"도대체 일본은 왜 그 모양이라니? 네 살이 뭐니 네 살이. '아무도 모른다'에서 아이들 넷이 사는 것도 보기 어려웠는데 하다 하다 네 살이라니, 너무 마음이 아프지 않니."

"네 살짜리를 네 살 아이로 보지 말고 취준생이나 사회 초년생 같은 상징으로 보면 어때? 모든 것에 서툴기만 한. 모든 서사에는 나름의 세계관이 있잖아. 그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나야 작품의 이면을 보게 되는 것 같아. 전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그랬잖아."

넌 공학도, 난 문학도인데 왜 내가 너한테 한 수 밑이란 생각이 들지... 이런 비교일랑 접어두고.

다른 이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면 내가 보지 못한 걸 보게 된다. 이 날의 대화가 코타로의 세계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코타로의 뒤편 세 사람 중 왼쪽 카리노 신, 가운데는 타마루, 맨 오른쪽은 미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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