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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Aug 15. 2022

이혼 예능에서 위로 받기

'우리 이혼했어요'에서




2020년 9월 남편이 자유 독립을 선언하며 집을 나간 뒤, 최종 이혼 전 한 달의 숙려 기간을 보내던 11월이었다.

남편이 왜 굳이 혼자 살기라는 길을 선택한다고 했는지 이유도 정확히 모른 채 헤어진 상태였다.

이미 십 년 가까이 혼자 살아본 이십 대 아들이 '각자 살아보는 것도 인생에서 괜찮은 경험이 될 거'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남편을 잡고 싶어 하는 내 편은 없었다.(엄마가 살아계시면 *서방을 말려주었을 텐데, 하고 말도 안 되는 가정을 하며 얼마나 서글펐는지.)

혼자 남는 내 상실감과 슬픔 때문에 자기답게 살고 싶다는 남편의 자유를 앗을 수는 없었다.  


무서움을 많이 타던 나는 홀로 이사한 집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밤에 안방 문을 닫고 들어가면 깜깜한 거실로 나가기 힘들었고, 아침에 문을 열고 나오면 썰렁한 거실에 나 혼자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 우울감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이사 온 지 삼 일째인 2020년 11월 20일 자정 가까운 시간에 넷플릭스에서 tv조선의 예능 '우리 이혼했어요'를 보게 됐다. 방송국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제목에 이끌려 잠깐 구경만 하려다 열혈 시청자가 되었다.

이영하와 선우은숙,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최고기와 유깻잎 이야기에 각자 다른 이유로 공감이 됐다.


1. 선우은숙과 이영하


선우은숙과 이영하는 이혼한 이후 둘이서 따로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긴장하며 냉담하게 대하는 장면을 보며 저들도 한때는 얼마나 서로를 좋아하고 아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선우은숙은 1화부터 이영하에게 "그때 왜 그랬어?"라고 자꾸만 묻고 또 물었다. 마치 어제 일어난 서운한 일을 따지는 듯했다. 이왕 출연한 건데 왜 저러지 하며 그녀에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십오 년 전 이영하와 어떤 여성의 불륜 의심 정황이 보도됐고, 선우은숙은 이영하에게 충분한 해명을 들은 바 없이 헤어졌다고 한다. 그녀는 십오 년 동안 하루같이 그 의문을 품고 살았던 것 같다. 상대가 왜 그랬을까 하는 질문과 찾아지지 않는 답으로 채워졌을 그녀의 십오 년 세월을 생각하니 내 처지 같아서 점점 그녀에게 감정 이입되었다. 나와 헤어지려고 했던 남편의 속내를 충분히 듣지 못해 애간장이 녹을 때였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시청했다.

그녀의 질문에 딱히 답을 찾지 못하는 이영하의 처지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친구가 많은 이영하는 예나 지금이나 친구들과 함께 선우은숙을 시간을 보내려 했고, 일과 집을 오가는 일에 성실하고 가족과 함께 있을 때 평안을 느끼는 선우은숙은 그 점을 불편하게 여겼다. 십오 년 전 두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 일이 여전히 존재하기도 했고, 저 사람에게 저런 면모도 있었나 상대의 다른 면을 발견하기도 했다. 거기까지 가려면 마음이 많이 열려야 했다. 상대에 대한 미움만으로 꽉 찬 상태에서는 상대가 보여주는 참신한 면을 절대로 볼 수 없으니까.

두 사람은 펜션에서 삼박사일 동안 함께 머물며 서로를 새롭게 알아갔다. 처음엔 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상대를 불편하게 여겼지만, 점점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갔다. 젊은 날의 모습과 달리 요리나 그 밖의 집안일을 할 줄 알게 된 이영하가 보여주는 이미지에서 선우은숙은 새로운 설렘도 느끼는 것 같았다.

두 사람 관계가 변해 가는 모습에서 나와 남편에게도 저런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생겼다.



2. 최고기와 유깻잎


최고기와 유깻잎은 삼십 대 유튜버들이다. 출연 당시 이혼한 지 1년이 채 안 됐을 때라 나와 처지가 비슷해서 그런지 그들의 터질 듯 절제하고 있는 감정에 주목했다.

그들 커플은 '우리 이혼했어요'에 출연하기 얼마 전까지도 동반 출연한 다정했던 시절의 유튜브 영상과 사진들이 많았다. 우리 부부가 서로 좋아해 늘 붙어 지내던 예전 모습이 떠올랐고, 다시 그날로 돌아가고 싶어 오열했다.

그들의 사랑스러운 딸인 여섯 살배기 '솔잎'이가 제 엄마, 아빠에게 세 식구 함께 있자고 말할 때마다, 그 딸을 사랑하는 최고기와 유깻잎이 안타까워하는데, 아이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어 난감한 그들의 모습에도 공감됐다. 딸도 소중하지만 내가 나답게 사는 것도 미룰 수 없는 일이며, 셋이 사는 게 오히려 딸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어린 자녀를 봐서라는 이유를 들어 그 둘에게는 지옥일 수 있는 상황으로 돌아가라고 말할 수 없었다.

시청자들이 그들 커플에게 아이를 봐서라도 재결합하라는 댓글을 많이 남겼고, 아이를 양육하지 않는 엄마인 유깻잎에게 특히 악평 댓글이 많았다고 한다. 대국민 방송으로 자신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공개한 이상 그들이 안고 가야 할 문제이지만, 그들의 선택과 결정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자격이 있는가.



3. 거울이 되고 위로가 되는


진행자인 신동엽과 김원희의 캐미를 보는 재미도 있고, 탐탁지 않게 보았던 김새롬을 새롭게 보는 계기도 되었다. 관찰 예능은 진행자들의 진심 어린 시선이나 말이 중요한데, 신동엽은 진중하면서도, 편견 없이 바라보는 시선을 맡았고, 김원희는 큰언니 같은 아량과 공감력을 보여주었다. 이혼 경력이 있는 김새롬은 함께 아파하고 감동하는 역할에 제격이었으며 출연자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관찰 예능을 보지 않았는데 '우리 이혼했어요'에 어떤 드라마보다 더 몰입했다. 그들이 이혼 후 겪는 심리적 고통은 모두 내가 겪고 있고, 겪게 될 것들이었다. 들어가기 힘든 학교의 선배에게 듣는, 그들의 내밀한 상처에 대한 고백이며 어디서도 듣기 힘든 경험담이었다.  

'우리 이혼했어요'에 출연한 모든 이들의 재결합을 바라는 건 아니다. 젊은 날 가장 좋아하고 사랑한 사람이 서로에겐 상처이자 떠올리기도 싫은 존재가 된다는 건 또 하나의 지옥이다. 그가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 사람이라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훌륭한 인성을 지녔으며 품격 있는 그를 나의 욕망과 왜곡된 시선 탓에 증오했던 날들이 있었음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부부 관계, 친인척 관계로 얼룩진 바람에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했으니 이제 제대로 보자는 것이다.



4. 이혼 예능에서 찾는 순기능


시즌 1이 끝날 때쯤 MBN에서 '돌싱글즈'라는 새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일반인들 중 이혼 남녀들이 출연해 '사랑에 빠지세요'라는 미션 주제에 따라 커플을 맺는 예능이었다.

'돌싱글즈'를 보는 동안 내가 소개팅을 하는 기분과 썸을 타는 설렘을 경험하며 허전한 밤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출연자들은 하나같이 삼, 사십 대 중 비주얼로도 직업으로도 남부럽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도 이혼 후 몇 년이 지나도록 새로운 사람을 사귀지 못하고, 사귀더라도 상대방의 편견으로 오래가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밝고 리더십이 보이는 출연자를 포함해 대부분이 외로움, 공황장애, 불면증, 우울증 등을 앓았다는 경험을 고백했다. 친한 친구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서러움을 표현하는 이도 있었다.

출연자들은 시선과 댓글로 받게 될 공격을 감수하고서라도 용기를 내서 출연했을 터이다.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기에 출연을 선택한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혼 예능에 대비판적 인식이 무르익으면 글을 쓰자고 묵혀 두었는데, 올해 4월에 '우리 이혼했어요' 시즌 2가 나왔다.

나한일과 유혜영, 아이돌 출신의 일라이와 레이싱 모델 출신 지연수, 조성민과 장가현이 출연했다. 그중 나한일과 유혜영은 하나밖에 없는 딸(삼십 대)의 적극적인 제안 덕분에 방송에 출연했고, 마지막 회에선 재결합의 의미로 은혼식을 치렀다. 번의 이혼과 재결합이라는 전력이 있고, 이번에 하면 번째 재결합이라서 부정적인 시선도 적지 않았다. 두 사람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서로에 대해 재발견하며 함께 보내는 시간을 행복해 했다. 마치 우리 커플이 그렇게 되기라도 하는 양 그들의 재결합을 응원했다.

이혼 예능들을 혹자는 '이혼 혹은 불행을 소비'한다며 부정적으로 말한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그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을 보며 나만 불행한 게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때로는 좋아하지만 함께 살 수 없는 그들의 모순된 행동에 공감하기도 했다. 전 회차를 통해 그들을 거울 삼아 나를 돌아보기도 했다. 상대가 얼마나 어렵고 아팠을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남편과 헤어진 뒤 아직 커플의 삶을 유지하는 지인들을 만날 때, 내 아픔이 공감받을 수 없는 문제라고 느낀 적이 많았다.

나라는 사람이 사라져야 마땅할, 도태돼도 이상하지 않다는 자괴감의 연속인 날들을 보내는 내 상태를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이해시키기 어려웠고, 그로 인해 2차 상처를 받기도 여러 번.

프로그램들은 동병상련의 커뮤니티였다. 다른 이의 따가운 시선과 닥칠지 모르는 생활고를 감수하고 '나답게 살기 위해' 아픈 선택을 한 이들의 삶을 보여주며 내게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었다. 덕분에 나의 밤은 덜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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