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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Oct 04. 2022

울라브 하우게의 시

바람 아니면 굽힌 적 없는 어린 나무

 

먹구름이 낮게 드리운 오늘, 겨울날의 눈발을 기다리며 낙엽이 깔린 길을 걸었다.

추위를 몹시 타는 체질 탓에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겨울을 기다리다니.

100일 글쓰기 시즌 5가 끝나는 십이월 십삼일, 오프라인으로 만나기로 한 글벗들과의 만남이 기대돼서일까.

겨울이란 계절조금 호의적이게 계기를 말하자면 몇 년 전 시(詩) 수업에서 노르웨이의 국민 시인이라 불리는 '울라브 하우게'를 알게 된 이후부터다.

영화 <일 포스티노> 주인공 마리오를 추억하니 이창동의 영화 <시詩>(2010년) 속 양미자 할머니도 찾아오고, 울라브 하우게의 시들이 그리워져 필사 노트를 펼쳤다.

마리오와 양미자, 울라브 하우게는 작은 언어로 큰 사랑을 그려낸 시인들이었다.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울라브 하우게

눈이 내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춤추며 내리는 눈송이에 서투른 창이라도 겨눌 것인가
아니면 어린 나무를 감싸 안고
내가 눈을 맞을 것인가

저녁 정원을
막대를 들고 다닌다
도우려고,
그저
막대기로 두드려주거나
가지 끝을 당겨준다.
사과나무가 휘어졌다가 돌아와 설 때는
온몸에 눈을 맞는다

얼마나 당당한가 어린나무들은
바람 아니면
어디에도 굽힌 적이 없다
바람과의 어울림도
짜릿한 놀이일 뿐이다
열매를 맺어 본 나무들은
한 아름 눈을 안고 있다
안고 있다는 생각도 없이




울라브 하우게를 소개한 노(老) 시인이 내게 물었다.

"어떤 소설, 어떤 글을 쓰고 싶어요?"

"모든 약자를 위로하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그렇게 거창해서는 소설도 시도 쓰지 못합니다."

시인의 말을 듣고 그동안 잘난 척하던 모든 행동을 싸잡아 부끄러웠다.

시인은 우리 엄마(엄마가 돌아가신 지 한 달도 안 됐을 때 시 수업을 들었던 때라 시인은 내 사정을 알고 있었다)와 함께한 마지막 식사나, 통 자지 않는 아기를 홀로 돌보아야 했던 스물네 살 엄마의 어느 밤을 쓰면 된다고 했다.




시(詩)는 내게 너무나 어려운 장르였다.

글 쓰는 감성에 영감을 주므로 많이 읽어야 할 텐데 하는 숙제만 잔뜩 짊어지고 시를 제대로 음미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노 시인이 소개한 울라브 하우게의 시는 쉽게 읽히고 마음을 차분하게 하며 긴 여운을 주었다.

위 시는 울라브 하우게가 수십 년 동안 자연의 품에서 겪은 일들 중 어느 눈 오는 날의 한 장면그렸다.

 시를 처음 읽은 날 ‘얼마나 당당한가 어린 나무들은’부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엄마를 하늘나라에 보내 드리고 얼마 안 돼서 감정이 넘칠 때였다.


이 시의 '어린 나무'가 내 마음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찮은 존재인 나 같기도 하고, 내가 어린 나무를 도와주는 시의 화자가 되어 저 눈발 아래 허둥거리는 것 같기도 하였다.

사람인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서투른 창이라도 휘둘러 볼까 하는데, 정작 어린 나무는 당당하기 그지없다는 시구가 놀랍다.

'할 수 있는 게 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구분도 사람인 나의 마음이 앞서 판단하는 벽일 뿐이라는 걸 알았다.


울라브 하우게는 노르웨이의 울빅이라는 마을에서 나고 자라 평생 과수원 농사를 지으며 매일 한 편씩 시를 썼고, 1994년 자신의 의자에 앉은 채 삶과 이별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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