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그 말이 아닌데 그렇네
명품이라면 소름 끼치도록 싫다고 말하던 젊은 패기가 끝을 보이는 시점이 다가왔다. 욕구나 갈망은 현저히 커지는데 능력도 안되면서 보는 눈만 높아지는 게 무서웠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의 옷과 가방 이 모든 것들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그러고 싶지 않다 생각했는데 그렇게 쉽게 나도 매도되고 있었다.
나는 연극 디자인을 전공했다. 무대라면 항상 눈여겨봐야 하고 공부하고 과제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러던 내가 유튜브로 처음 본 명품 브랜드들의 패션쇼 무대는 가히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린 시절 봤던 모델들의 옷은 웃기고 성의 없어 보여서 이걸 돈 주고 사 입다는 게 개그였지만 그날 본 무대와 음악 그리고 옷들은 아름다움의 끝을 달리는 것 같았다. 아테네 신전에서 여신들이 강림하는 듯한 무대부터 고풍스러운 유럽의 성, 휴양지, 모던, 판타지 그리고 다양한 테마와 시도를 접목한 무대 위로 거니는 모델들. 내가 유심히 봐야 할 무대는 뒷전이고 무대가 발휘한 힘을 온전히 감당 중인 모델들의 옷과 가방 액세서리들에 푹 빠져있었다.
남편에게 지나가다 예쁜 차를 보면 이건 무슨 차야? 하고 묻는다. 그럼 그는 차종의 장단점부터 차 브랜드의 이미지 그리고 역사까지 읊고 있다. 신나서 얘기하는 걸 보면 재밌다. 굳이 궁금하지 않아도 지나가다 아무 차나 골라서 남편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어느 순간 차 전문가가 돼서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남편이 귀여우면서도 재밌다.
5년을 듣다 보면 따로 검색하지 않아도 이제 나는 어느 차가 뭐가 좋고 나쁜지 대충 감을 잡게 된다. 차 브랜드 별로 이미지를 형상화시키고 취향도 생기며 나름의 옵션 조건도 생기게 된다. 운전면허도 아직 다 따지 않았으면서 차에 대한 시각만 먼저 넓혀 놓았다.
그렇지만 남편에게 나도 의류 브랜드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남편도 나처럼 어느 정도 숙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용기가 없다. 돈만 밝히거나 명품에 집착하는 상대로 보일까 봐 무섭다. 지나가다 저 가방 이쁘다고 말하려다가도 침 삼키듯 목구멍 아래로 내려보내버린다.
'결혼한 어른'이란 타이틀을 걸고 신념을 지키는 것. 남들과 다른 꿈을 꾸는 것은 힘들다. 목표는 현실적으로 바뀌어가고 작은 기쁨을 희생시키며 (절약은 결혼생활의 기본이 아닌가?)더 나은 미래에 보탠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멋진 예술가처럼 히피 같은 삶을 사는 것을 꿈꿔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그 불편함을 견딜 것이라는 자신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평범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아무것도 없는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 신경 쓰이고 중요해진다.
명품을 걸치면 내가 명품이 되는가?
아니다.
좋은 가방을 메면 나의 생활 수준이 올라가는가?
아니다.
좋은 차를 타면 나는 남들보다 우월한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질문을 왜 하는가?
왜 명품을 사지 않겠다는 단념을 위해 수도 없이 질문하는가?
나는 그 불편함을 견딜 수가 없다.
어떤 방식이든 솔직해진다면 이 모든 것에 욕심을 내고 가지고 싶다는 욕구가 나는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나도 명품백이 갖고 싶어."
첫 월급을 타면 나는 나를 위해 좋은 가방을 살 거야. 적금에 넣지 않을 거야. 오빠가 언젠가 돈을 많이 벌어서 선물해주면 좋겠어. 그리고 난 오빠의 아우디를 벤츠를 위해 열심히 살 거야. 오빠도 좋은 차 타게 할 거야.
우리는 입 밖으로 욕구를 꺼냈고 서로에게 실망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아직은 충분하다.
메인 사진: Photo by https://unsplash.com/@freestoc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