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몇 살이야? : 한국식 서열문화와 권위주의
격차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서열
한국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맺어지는 관계는 갑과 을로 상징되듯 비대칭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등한 입장에서 친구가 될 수 있는 사이는 오로지 동년배 사이뿐이다. 좁은 의미에서는 정확히 같은 나이로 한정된다. 한 살이라도 차이가 나면 바로 선후배, 형 동생 관계가 되고 보이지 않는 위계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사이에도 언성이 높아질 때면 '너 몇 살이야?'를 먼저 묻는 것처럼 아이들부터 노인까지 누구 할 것 없이 상하 관계를 먼저 규정하는 것에 익숙하니, 직위나 직급 분명하게 명시된 조직에서의 암묵적 권위는 다른 문화권에 비해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선배가 후배에게 혹은 감독이 선수에게 가하는 폭력 문제와 같은 강압적 서열문화에서 기인한 사건들은 해마다 우리의 뉴스를 오르내린다.
한국식 서열문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혹자는 윗사람을 공경하는 유교문화에서 서열 문화가 비롯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만 유일한 유교 문화권 나라가 아닐뿐더러 과거의 사료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조선시대 사람들도 나이차가 많이 나는 벗들을 허물없이 사귀었다는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유교에서 강조하는 세 가지 강령과 다섯까지 인륜을 칭하는 '삼강오륜' 중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시대상을 고려하면, 여기서 말하는 어른과 아이는 단지 나이가 많고 적음을 의미하는 바는 아닐 테다. 현대 사회처럼 이동이 잦지 않았던 과거에는 하나의 성씨가 한 지역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고,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삼촌을 공경하듯 물리적 나이보다는 항렬이 중심이 된 사회였다. 혈족 내에서 항렬은 지금과 같은 공권력이 작동하지 않던 시절 집단의 질서 유지를 위한 하나의 예로써 작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혈족 외의 사람들과는 항렬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 와도 격의 없이 지내는 것이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다. 시간 개념도 많이 느슨했던 시절에는 각자만의 시간으로 삶을 영위했다. 지금처럼 모두가 정해진 나이와 시간에 맞춰 정규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니 그에 따른 위계가 생겨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한국말의 존비어가 강한 서열문화의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말의 특징 중 하나는 높임말과 낮춤말이 상황에 따라 복잡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도 바로 존비어 사용법이다. 맥락이나 상호 간 힘의 균형에 따라 같은 말도 다르게 표현된다. 말하는 사람은 아주 자연스럽고 재빠르게 상황을 인식한 후 그에 걸맞은 말을 사용해야만 매끄러운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다. 위계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사소한 말투로 인해 불쾌감을 갖게 되거나 심할 경우 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할 만큼 우리말에 존비어는 중요하고 강력하게 작동된다.
물론 격식과 예를 차려 말하는 표현법과, 가까운 사이끼리 편하게 말하는 표현법이 다르게 존재하는 것은 우리나라 언어뿐만은 아니다. 다만 실생활에 적용함에 있어 우리나라 존비어와 가장 큰 차이점은 대부분의 외래어 대화는 상호 대칭적 구조를 띈다는 점이다. 즉, 내가 격식을 차려 말하면 상대로 그러하고, 내가 편하게 말하면 상대도 편하게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상식적이다. 반면 한국식 존비어는 한쪽에서는 높이고 반대편에서는 낮추는 비대칭적 관계를 띤다.
존비어 문화의 유래에 관해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국어원에서도 명확한 답변을 해주지 못한다. 다만, 존비어가 상호 힘의 균형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를 증명하고 강화하는 수단을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서열문화를 생산해 내는 기능을 가진다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진짜 사나이
가장 설득력 있는 의견 중 하나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내려온 군대식 문화와 교육이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세계열강들이 전쟁과 침략을 통해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확장하던 제국주의 시대. 일본은 이웃나라 한국을 식민지로 삼고 강압적인 방법으로 수탈하고 지배했다. 헌병과 경찰에 의한 통치는 사회 전반으로 계급 문화를 빠르게 전파시켰다. 상급자에 대한 절대복종이 강조되고 위계에 의한 폭력도 일상화되기 시작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모든 일본인들은 높은 서열의 인간으로 모셔야 하는 일종의 갑을 관계도 만들어졌는데 돌이켜 보면 이것이 바로 한국사회의 오랜 병폐인 갑을 문화의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학교 사진들을 보면 교내에서 칼까지 차고 있는 교원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고작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아이들에게 군사교육을 시키는 장면도 나온다. 모든 것이 위압적이다. 학교도 마치 군대처럼 운영되며 선생님뿐만 아니라 상급자, 즉 선배에 대한 절대적 복종 문화를 어릴 때부터 몸에 배도록 만들었다.
일본에서는 '낮에는 경찰이 밤에는 야쿠자가 거리의 치안과 질서를 유지시킨다'는 말이 있다. 특정 구역에서의 야쿠자의 이익을 지켜주는 대신 그들 스스로 해당 지역에서 자잘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한다는 의미이다. 비슷하게 엄격한 계급 문화 주입을 통해 상단부에 권한을 주고 통제하면 하단부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되도록 하여 전체를 용이하게 관리한다 라는 의도가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5여 년의 긴 통치 끝에 일본 군경은 한반도를 떠났지만 계급화와 서열문화는 계속되었다. 광복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군인들이 전 국토를 휩쓸고 다녔고 1948년 세워진 대한민국 정부는 과거 친일 관료나 경찰들이 대거 중용되어 나라를 꾸려갔으니 지배 계급의 정서는 크게 달라질 리 없었다. 말년의 독재와 부정선거로 얼룩진 이승만 정권은 4.19 혁명으로 끝을 맺었지만 뒤따라 온 것은 군부독재였다. 1961년 당시 육군 소장 박정희가 일으킨 군사정변은 전두환의 제5공화국으로까지 이어지며 약 25년간의 군사정부 역사를 기록했다.
돌이켜 보면,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이뤄진 후 직선제로 선출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된 1988년 이전까지 80여 년 가까운 시기 동안 한반도를 지배한 중심 정서가 바로 군대문화라 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첫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노태우 역시 군인 출신이었으니 이토록 오래도록 내면화된 계급화와 서열문화는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를 내리며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어른들의 문화를 보고 배우며, 남성들은 의무적 군목무를 통해 서열문화를 익혀가며 반복이 된다. 우리에겐 변화를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