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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책방 Oct 17. 2019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아

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것이 없으면 건축은 재미가 없지. 사람을 매료시키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본래적이지 않은 부분일 경우가 많거든. 그 나눗셈의 나머지는 계산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야. 완성되고 나서 한참 지나야 알 수 있지." (180p)

"한 점의 틈도 그늘도 없는 완벽한 건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그런 것은 아무도 못 만들어. 언제까지나 주물럭대면서 상대방을 기다리게 할 만한 것이 자신한테 있는지, 그렇게 자문하면서 설계해야 한다네." (286p)

(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 비채)





조금 더 나아지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아직은.

유혹에 빠지기 쉬운 생각들입니다. 기대해보게 만들지만 많이 기댔던 만큼 세게 넘어뜨립니다.



대학 학부시절, 연극 연출을 전공했지만 정작 연출은 단 한 번 했던 게 전부입니다.

위의 생각들 때문입니다. 나중에, 좀 더 배우고 나면, 아직은 부족하니까.

 

그 때의 경험은 누가 끄집어내주지 않으면 잘 재생되지 않습니다. 불리한 기억은 묻어두곤 하는데 첫 연출의 기억이 그렇거든요.

'잘 해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을 때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게 잘 하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잘 하고 싶었습니다. 며칠, 몇 달이 더 지나고 나면 멋진 공연이 될 거라 믿었지만 실행에 옮긴 것은 거의 없습니다. 연습 기간동안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잘 모르겠어요"였고요.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게 두려웠습니다. 보여주고 평가하고 평가받는 것이 전부였던 학과라는 공간에서는 더더욱.


연극의 대본을 썼던 극작전공의 동기는 일단 대본을 썼고, 계속해서 고쳤습니다.

이렇게 바로, 이대로 고쳐도 되는 건가? 내일이나 모레가 되면 더 좋은 게 떠오르지 않을까? 생각만 했던 저와는 정반대입니다.



끝까지 지나고 나니 나에게는 특출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보였습니다. 그것이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다른 이들을 기다리게 할만한 것이 어딘가에는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것은 없었으며, 단지 싫은 소리를 피하기 위한 변명거리였을 뿐입니다.






완벽한 건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소설 속 무라이 선생님은 말합니다. 건축 아닌 다른 것들도 그렇습니다. 완벽한 것을 본 적이 있던가요. 아직까지 본 적 없는 그런 것을 내가 만들 확률은 확실히 더 적습니다. 거의 불가능이죠.


일단 만들고 나면 나머지들이 생기고 나머지가 때로는 본래보다 더 큰 역할을 합니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난 후에 책방을 열겠다고 생각했으면 영영 열지 못했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프로그램을 더 다듬은 후에 모임을 모집하려 했다면 지금의 인연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계산하지 못했던 나머지들이 생겼고 그 나머지를 잘 가꿔준 것은 나 아닌 다른 존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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