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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책방 Oct 15. 2019

내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

은희경 소설 <빛의 과거>

나는 그 시간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난 것일까. 오로지 내게 주어진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과 성적을 올리는 것, 두 가지에만 의미를 두던 고등학교 시절 훈육의 틀과 그리고 내가 동의할 수 없었던 세상의 모범생이라는 모순된 자리. 거기에서 시스템의 눈치를 보며 적응한 척했던 것이 단지 임시방편이었을까. 혹시 그대로 내 삶의 태도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훈육과 세뇌에는 탈출구가 없다.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뀔 수도 없으며, 끝없이 반복되는 그 틀의 궤적에 부딪히고 상처입고 위축되며 계속해서 눈치껏 나를 속이며 살아야 하는 걸까.

은희경 <빛의 과거> 245p / 문학과 지성사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한창 많이 보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장래희망에 영화평론가를 적기도 했는데, 사실 밖으로 내뱉은 적은 없지만 항상 동경해오던 모습은 소설가입니다. 제게 '글'이라 하면 '소설'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소설가는 특별한 사람이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특별한 환경에서 평범하지 못한 인생을 겪어야만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대로 착실하게 살았으며 이렇다할 특별함 없이 커온 저로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핑계를 대며 쓰지는 않고 작법서들을 읽습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 강의도 듣습니다. 그러면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 잘 쓴 글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작법서와 교수님들이 정해둔 기준에 따르는 글을 쓰려 노력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기준은 그대로 나의 기준이 됩니다.

책을 읽을 때면 '좋은 책'을 가립니다. '좋은 책'의 기준은 나의 기준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작법서의 기준이고 교수님들의 기준이고 기존의 기준입니다.

이런 제가 쓰는 글이 진전될 리 없습니다. 한 단어를 썼다가 지웁니다. 한 문장을 썼다가 지웁니다. 어떠한 사건도 발생하지 않고 어떠한 인물도 살아있지 못합니다. 문장이 나아가다가 멈춥니다. 기존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니까요.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야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고등학생 때의 나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뽑아내기엔 이미 너무 깊이 박혀버린 뿌리입니다. 씨앗을 심고 키워낸 어른들과 시스템, 그리고 그것을 양분으로 무럭무럭 자라난 과거의 나. 뿌리를 뽑을 수 있을까요. 뽑을 수 없다면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그럴듯하게 바꾼다고 해도 그게 진정 바뀌는 걸까요.




내 인생에서 소중히 남기고 싶은 장면은 무엇일까?

<빛의 과거>를 읽고 진행한 독서모임에서 받은 질문입니다.

이 소설을 쓴 은희경 작가는 본인의 여대 기숙사 시절의 경험을 다시 빚어 하나의 이야기로 남겼습니다. 아마 그의 인생에서 남기고 싶은 장면이었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가까운 과거부터 먼 과거까지를 되짚어봅니다.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떤 장면을, 어떤 경험을 유의미한 이야기로 빚어낼 수 있는 걸까요. 답을 찾으면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 질문을 오랫동안 붙들고 있습니다.

'내'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봅니다. 이번에는 정말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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