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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교 Aug 17. 2018

마지막 날, 그리고 달라진 것은 없음

심원사 템플스테이 (3) | 2017년 7월 5일 수요일 일기


  아침 6시 공양을 알리는 종소리에 눈을 떴다. 비몽사몽간에 세수하고 밥을 먹었다. 곧 떠나야한다는 생각에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누워서 아침잠을 좀더 청했다.

  10시쯤 시계를 보고 놀라 후다닥 일어났다. 9시정도까지만 자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오래 잤다. 아까웠다. 집에서라면 10시는 일찍 일어난 시각인데.




  버스 시간을 물어보려 템플스테이 사무실에 들렀다. 아무도 없어서 돌아가려 했는데, 마침 밖에 나와계시던 스님이 내가 서성이고 있는 것을 발견하셨다. 도와줄 게 있는지 물으시기에 버스 시간을 여쭈었다.

  스님은 버스 시간도 알려주시고 차도 한 잔 주셨다. 그렇지 않아도 스님과 차 한 잔 더 마시고 가고 싶었던 차였다.


  스님과 이야기가 막 시작될 무렵, 잠시 자리를 비웠던 직원언니가 돌아왔다. 아침에 나와 함께 가야산 둘레길에 가려고 했는데 내가 자고 있어서 그냥 돌아갔다고 했다. 둘레길은 나도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아직 시간이 괜찮으면 지금 갈 수 있느냐 물었다. 다행히도 다녀오기 딱 알맞은 시각이라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스님과 나누고 있던 차는 종이컵에 담아 둘레길로 향했다. 어제까지 계속 비가 왔는데, 오늘은 비가 내리진 않았다. 습하고 덥기만 했다.




  소나무로 우거진 산속을 걸었다. 가드레일 넘고 울타리도 넘었다. 정식 입구는 아니었다. 진짜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가문 날씨 탓에 계곡은 바짝 말라있었다. 원래 바위들이 잠길 정도의 수위여야 한다는데 바닥이 모두 드러나 물줄기는 겨우겨우 흘러가고 있었다. 시원한 물놀이가 간절했다.


  직원언니가 이야기를 많이 해준 덕에 어색할 틈이 없었다. 그녀는 나와 비슷한 나이대인 것 같았다. 짐작만 했을 뿐 묻지는 않았다.

  산꼭대기에 있는 절에 일하러 왔다갔다하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을 터였다. 나로써는 생각지도 못했던(이를테면 산에 물이 말라서 안나온다거나) 애로사항들이 있어 보였다. 절에서 또래도 없이 심심할 것 같기도 했지만, 평온한 절과 잘 맞는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같이 다니는 내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가야산 전시관도 둘러보았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때깔만 번드르르하고 정작 내용은 몇 없는 전시관이라 흥미롭지는 않았다. 단지 에어컨에 땀을 식힐 수 있어 좋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제 다시 절까지 올라가지, 하는 걱정이 계속 되었다.

  절로 돌아가는 길은 생각만큼 힘들지도, 멀지도 않았다. 역시 괜히 걱정만 하다가 무언가를 또 포기할뻔했다. 절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직원언니와 함께 대화를 이었다. 다람쥐를 먹는 고양이... 그리고 나이든 백구 이야기도.




  절로 돌아왔을 때는 점심공양 10분 전이었다. 부랴부랴 샤워한 후 옷을 갈아입었다. 화장을 했던 탓에 얼굴을 씻지 못했더니 몸의 열기는 그대로인 것 같았다.

 

  다행히도 점심식사 메뉴는 시원한 냉국수였다. 다른 때였으면 비빔국수를 만들어먹었을텐데, 너무 더웠던 탓에 물국수로 먹었다. 옆에 다른 분이 만들어드신 비빔국수가 엄청 맛있어보여 계속 아쉬웠다.


  절에서 버스정류장까지 택시 말고는 이동수단이 없다. 12시까지로 예약해놓은 택시 탓에 서둘러 준비해야했다. 좀더 길게, 한 분 한 분과 작별인사를 천천히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스님들께 제대로된 인사도 못하고 부랴부랴 떠나온 것이 못내 아쉽다.

  나중에 따로 인사해야지, 생각만 하다가 결국 이렇게 또 흐지부지가 되었다. 나중 그때는 오지 않을 수도 있고 급하게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인데. 여전히 걱정이 많고 머뭇거리는 나였다.


  방에서 부랴부랴 가방을 싸고 있었는데 직원 언니가 들어와 팔찌와 마그넷 등 기념품들을 챙겨주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에 행복했다. 때로는 선물이 작으면 작을 수록 감동이 커지기도 한다. 도착했을 때와 떠날 때 모두 감동을 받았네.


  그렇게 아쉬움 가득한 템플스테이는 시간 맞춰 도착하신 택시 기사님과 끝이 났다. 다음에도 오게될 것 같다. 한 번 올 때마다 정이 많이 들어서 돌아간다.




  택시는 굽이굽이 산길을 빠른 속도로 달려내려갔다. 멀미날 뻔했고 무섭기도 했다. 덕분에 버스시간에 늦지 않고 널널하게 도착했다.

  버스 정류장은 동네 사람이 알려주지 않으면 찾기 어려울 것 같이 생겼다. 작은 구멍가게에서 티켓을 팔고있는데 여차하면 그냥 지나칠 것처럼 생겼다.


  가야 정류장에 계신 분들은 90% 이상 비율로 어르신들만 계셨다. 우리 할머니보다도 훨씬 연세가 많아보이시는 진짜 어르신들. 이런 시골에서 한평생 살다가 큰 도시로 나가게 되면 너무나 다르고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기 힘들 것 같았다. 도시는 너무 크고 빠르다.


  고령가는 버스를 탔는데 외국인 두 명이 있었다. 어쩐지 반가웠고 뭐든 도움을 주고 싶기도 했다. 여행중인 것 같아 부러웠고, 연인사이인 것 같아 부러웠고, 1.5리터 생수통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니 진짜 서양 여행객이구나 싶었다. 젊은 사람도 거의 없고 모든 게 옛날 그대로인 이 동네에서 말은 잘 통할 지, 더위는 괜찮을 지, 해인사에 다녀오는 건지, 대구로 가는 건지 별의별 게 궁금해졌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고 혼자서만 궁금해했다.




  고령터미널, 아니 정류장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꽤 있었다. 고령군 초입에서 나타난 엔젤리너스나 파리바게트 같은 프랜차이즈를 보니 가야읍보다 훨씬 규모가 큰 시내이긴 하겠구나 싶긴 했었다.

  그럼에도 역시 노인 비중이 훨씬 높았다. 그들은 정말 옛날식이었고, 괜한 것으로 학생들에게 시비를 거는 아저씨도 있었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그런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 숨이 막혔다. 서울로 가기도 전, 산을 벗어나기만 했을 뿐인데 바로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서울행 버스는 일반버스로, 요금을 저렴하게 지불했는데 내부는 우등버스였다. 게다가 맨앞자리 혼자앉는 곳. 상석. 이럴 거면 고령으로 올 때 탔던 우등버스는 왜 요금을 더 비싸게 내야했던 건지. 여튼 생각지도 않게 좋은 좌석으로 편안히 서울까지 올 수 있었다.

  중간에 들른 휴게소에서는 감자핫도그를 사먹었다. 맛은 없고 크기만 커서 먹다가 버렸다. 휴게소에서 버스 주차관리 하시는 아저씨는 파라솔 밑에 앉아있다가 몇 분 쉬지도 못하고 계속 왔다갔다하셨다. 힘들어보였다. 까맣게 탄 그의 얼굴이 안쓰러움을 더했다.




  그렇게 2시간 여를 더 달려 마침내 서울에 도착했다. 역시나 차와 사람으로 가득했다.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숨을 들이마쉬고 내쉬는 것에 힘이 들었다.

  무거운 가방과 불쾌지수가 치솟는 날씨 때문에 모든 게 다 짜증이 났다.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은 하지만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예술의 전당에서 버스를 타고 집까지 오는데 퇴근 시간과 겹쳐 차가 많이 밀렸다. 잠도 오지 않는데 지루하게, 가뜩이나 가고 싶지 않은 집으로 가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부터 권태는 다시 시작됐다.


  집에 도착했을 때, 모든 건 다 그대로였다. 비정상회담 보면서 밥 먹는 나도 그대로였고, 사이가 안좋던 남자친구와의 영상통화도 딱히 달라진 것 없었다. 재미없고 똑같은 이야기를 꾸역꾸역 하다가, 이전과 비슷한 핑계로 영상통화를 끊고 TV를 더 봤다. 일기는 다 쓰지 못한 채 잠들었고 나는 이후로도 이전과 같았다.




  2017년 여름에서 2018년 8월 여름이 되도록 달라진 건 없다. 비정상회담을 보면서 밥먹던 나는 요즘 유튜브를 보면서 밥을 먹고, 사이가 안좋던 남자친구와는 헤어져서 영상통화를 하지 않지만 재미없고 똑같은 이야기를 꾸역꾸역 하는 날들이 여전히 잦으며, 아직도 일기는 다 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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