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소고기는 확실한 행복

소설 '인생연금' 제5화

by 이창동


오늘도 이 가게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약수역 근처의 삼겹살집. 십여 년 전에 한 대기업 회장이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고 나서부터 손님이 끊기지 않는다. 여기저기 일본어, 중국어, 영어로 이야기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보이는 걸 보면, 외국에서도 유명한 모양이다.
“전미 씨 운이 좋은가 봐. 여기 두 번 왔었는데, 기다리지 않고 들어온 건 처음이거든.”
해림 언니는 기분 좋은 듯 웃으며 말했다. 카페 단골이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언니와 친해졌고, 어느새 저녁에 맛집을 같이 찾아다니는 사이가 되었다. 나이는 열 살 정도 차이가 나지만, 나는 언니의 어른스러운 차분함 속에 문득문득 묻어 나오는 장난기에 끌렸고, 언니는 나의 단순함과 명쾌함을 좋아해 주는 것 같다.


“언니, 제가 주문해도 되죠? 술만 정해 주세요.”
“난 하이볼. 바질쌈 꼭 시키고.”
“물론이죠. 그 맛에 여기 오는 건데요. 저 오늘 많이 먹어도 되죠?”
“왜? 뭐 스트레스받는 일이라도 있어?
“아니요. 제가 어디 스트레스에 질 사람인가요. 그놈의 인생연금 때문에 항상 고기에 굶주려 있어 그렇죠. 고기가 들어간 메뉴나 음식점은 일주일에 일곱 번밖에 결제가 안 되잖아요. 저녁 한 번만 외식한다 생각하면 별 영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은근 허들이 높아서 스트레스예요. 간식과 야식도 계산에 넣었어야 하는 건데….”
“하하, 스트레스에 지지 않는다며, 먹는 걸로 제대로 스트레스받고 있네.”
“그러게요. 전 그저 부모님 집에 얹혀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입했는데, 은근 짜증 나는 일이 많아요. 요즘은 차라리 인생연금 탈퇴하고 혼자 살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에요.”
“그래? 하긴. 제약이 너무 많아서 어떤 게 있는지 기억도 못 할 것 같더라. 전미 씨를 제일 짜증 나게 하는 제약은 뭐야?”
“한 두 개가 아닌데… RE100 미인증 회사 주식을 살 수 없는 거? 얼마 전에 너도나도 월급만큼 벌었다고 난리였던 K케미컬도 전 구경만 해야 했어요. 에너지 효율 1등급 가전제품만 살 수 있는 것도 그렇고. 핸드폰도 구입 후 3년 동안은 새것 못 사죠, 비트 코인도 못 사죠,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 용량도 제한이 있지…”
“비트코인? 클라우드 서비스? 그런 제한이 있어? 그건 몰랐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규제는 너무한 것 같아요. 물론, 비트코인 채굴이나 데이터센터가 어마어마한 전기를 쓰는 건 사실이죠. 이미 20년 전에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사용하는 전기가 영국 전체 전력소비를 훌쩍 넘었고, 비트코인 채굴에 쓰는 전력이 전 세계의 태양광 발전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넘어섰으니까요. 데이터센터가 쓰는 전기는 4년마다 2배씩 는다고 하니 이해가 가긴 해요.”

때마침 삼겹살과 목살이 나왔다. 이 가게는 고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원이 구워 주는 것도 좋다. 언니랑 와도 고기 굽는 역할에서 해방되어 마음껏 고기를 즐길 수 있다. 하이볼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고기가 점점 노릇하게 구워지고 있다.
“역시, 진짜 고기는 냄새부터 다르다니까요. 맛있겠다.”
“그래? 요즘은 워낙 대체육 맛도 좋아졌잖아. 맛뿐만 아니라 닭고기, 생선까지 거의 완벽한 식감을 재현해서 먹다 보면 이게 정말 콩, 버섯, 밀로 만든 게 맞나 싶을 때가 많은데.”
“뭐, 느낌적인 느낌일 수도 있지만, 이 육즙은 흉내내기 힘들죠. 고기 없는 식사는 식사가 아니라 식량이죠.”
“하하, 좋은 말이네. 많이 먹어.”
갓 구운 고기를 바질 잎 위에 얹어 입안에 넣었다. 육즙이 바질을 적시며 입안에 퍼졌다.
“바질에 삼겹살 싸서 먹으면 느끼함이 싹 가시고 너무 맛있지 않아요? 이런 게 바로 창조적 융합이고 혁신적 시너지인데, 왜 공모전 준비할 땐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전미 씨도 최종 발표하는 다섯 팀에 뽑혔다면서? 그 정도면 성공 아니야?”
“그렇긴 한데, 딱히 마음에 들지도 않고 혁신적이지도 않아요. 시작이 반이라는 말만 믿고 무턱대고 시작했는데, 그 말은 시작의 질이 완성도의 반을 결정한다는 뜻인 것 같아요. 시작이 부실해서 막판에 고생 좀 했죠. 고민만 하다가 시간에 쫓겨 급조해서 냈는데, 다섯 팀에 뽑혀 저희도 놀랐어요.”

그렇다. 신입사원 연수 때 멘토라서 친해진 남 과장님을 졸라 아이디어도 없이 시작했었다. 거의 매일같이 내가 아이디어를 내면 남 과장님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일과였다. 남 과장님은 개발팀에서 사업 발굴을 담당하고 있어 예리하게 내 아이디어의 빈틈을 잘 찾아냈다.
“우리 카페에도 혁신이 필요한데. 요즘 장사가 잘 안 돼서 큰일이야. 온난화로 커피 생산량이 줄어드니 원두 가격은 계속 오르지, 손님은 늘지 않지. 전미 씨의 그 번뜩이는 재치로 좋은 아이디어 좀 생각해 봐.”
“그 정도로 어려워요? 근데, 정말 카페에서 혁신은 어려운 것 같아요. 업계 선두인 별다방도 사실 몇십 년 동안 변한 게 거의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혁신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닌 것 같아.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일본 고속열차에서 카트로 먹을 것을 파는 모기 구미코란 사람이 있었거든? 그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를 더 팔아서 화제가 되었는데, 그 비결이 뭔지 알아?”
“글쎄요…. 엄청나게 친절해서? 아님 누구나 카트를 세워 보고 싶을 만큼 예뻐서?”
“아냐, 그냥 평범한 아줌마야. 비결은 뒷걸음치며 카트를 끌면서 팔았다는 것뿐이었어. 보통은 카트를 앞으로 밀고 가면서 팔잖아? 좌우를 살피긴 하지만 승객이 말을 걸어 세우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 버리지. 의외로 사람들은 소심해서 카트가 지나가 버리면 그냥 내버려 둔다는 거야. 그런데 그 사람은 뒷걸음질 치며 복도를 지나가니 사람들 표정을 다 볼 수 있고, 잠시라도 카트를 힐끗 살피는 사람이 있으면 카트를 멈추고 여유롭게 살필 수 있게 했다는 거야.”
“그 차이로 다섯 배를 팔았다고요? 대단하네요. 아이디어는 작은 관찰에서 시작한다는 말이 맞네요. 한 번 생각해 볼게요. 아이디어 마음에 들면 다음에 또 고기 사주시는 거죠?”

오늘은 마음이 맞는 언니와 먹어서인지 고기가 잘 들어간다. 둘이서 4인분의 고기와 하이볼 한잔씩, 그리고 소주도 한 병 마시고 있다.
“이 맛있는 고기를 왜 그렇게 못 먹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러게. 근데, 육류 소비가 그렇게 환경에 영향을 많이 주나? 소의 트림과 방귀가 휘발유 자동차의 매연보다 지구온난화에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들어보긴 했는데.”
“온실가스의 20퍼센트 정도가 축산업에서 나오니 그 말이 맞아요. 소가 내뿜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0배 강력해서 대기 중에 10년 이상 머물 수도 있다고 하니, 문제긴 하죠. 그리고, 지구 전체 농업용지 중 거의 절반이 소, 양, 염소 같은 가축을 기르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데, 육류 소비가 늘면 그만큼 녹지가 줄 수밖에 없죠.”
“전미 씨, 완전 환경운동가 같아.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아무리 부모 집에 얹혀살기 위해 가입했다고는 하지만, 제가 선택한 것이 정말 가치 있는 것인지 확인해 보고 싶더라구요. 나름 엄청나게 공부했어요. 인생연금 가입하면 접속할 수 있는 전용 앱에 사람의 행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알기 쉽게 설명한 부분이 있는데, 기억에 남는 게 많아요. 하루 채식을 하면 물 4리터, 곡물 20킬로그램, 산림 2.8제곱미터를 아끼고, 한 마리의 동물을 살린 거다 같은 거요. 고기 먹고 싶을 때마다 이 숫자를 떠올리며 ‘넌 오늘도 좋은 일 했어.’라고 위로해요.”
“전미 씨가 그러니까 왠지 죄책감이 드는데?”
“이게 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건데, 자기 생활 스타일에 맞게 부담되지 않을 정도만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요?”

행복한 포만감으로 앉아 있기가 힘들 지경이 되었을 때, 언니가 시원한 스파클링 와인이나 한 잔 더 하자고 했다. 우리는 머리에 밴 고기 냄새를 풀풀 풍기며 고깃집 뒷골목에 있는 작은 와인바에 들어갔다. 카운터석만 있는 아담한 바는 조명이 어두워 불콰해진 두 사람의 얼굴을 적당히 가려 주었다.
“요즘 와인값이 많이 올랐는데, 여기는 그나마 괜찮은데요?”
“그러게. 옛날에는 이탈리아가 와인 최대 생산국이었는데, 지구 온난화로 점점 와인 재배가 힘든 곳이 늘어나서 이제는 좀 더 북쪽에 있는 프랑스가 최대 생산국이 됐잖아. 이러다가 러시아 와인이 대세가 될지도 몰라.”
세계 곳곳에서 많은 것이 변하고 있고, 그 변화들은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온난화로 밀 생산이 감소하자 밀을 100퍼센트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라면 값이 오르는 식으로 말이다.
“이 과장님이 그러던데? 전미 씨에게 바람맞았다고.”
“아, 공모전 말하는 거죠? 한참 전에 과장님께서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은 해 주셨는데, 만약 잘 돼도 한 팀에서 두 명이 같이 신사업팀으로 가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주택본부에서 잘 나가는 과장님을 졸라 팀을 만들었죠. 만약 잘 되면 주택 쪽에 제 이름도 알리고, 더 좋은 부서로 갈 기회가 생기는 거고, 신사업팀 가는 걸 거절하면 강 팀장님이 감동해서 더 잘해주시지 않을까… 어떻든 저에겐 꽃놀이패죠.”
“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런 것까지 계산해? 크게 될 사람이네. 전미 씨는 어떻게 그렇게 자신감이 넘쳐? 난 불혹이 다가오는데도 넘치는 건 망설임 밖에 없는데.”
“그래 보여요? 근데, 저도 항상 옳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자신감이 생기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Fake it till make it! 제가 좋아하는 말인데, 될 때까지 되는 척 해라! 인 거죠. 남을 속이는 게 아니라 문제없다, 잘 될 거라고 제 자신을 속이고 있어요.”

남들은 나에게 전생에 회사 임원이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선택의 순간마다 두렵고 불안하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말한다. ‘넌 아직 젊어. 실패해도 만회할 시간과 힘은 충분해.’라고 말이다. 그리고, 실패를 만회하는 시간은 뭐든 배울 게 있지만, 망설이는 시간은 그저 버리는 시간일 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긴 하지. 암튼 전미 씨의 똑 부러지는 말과 행동이 참 부러워. 내가 문제 하나 낼 테니, 그 자신감으로 대답해 볼래?”
“뭐죠? 근거 없는 자신감만으로 답할 수 있는 건가요?”
“아니… 만약 말이야. 전미 씨가 인생연금 미가입자인데 결혼을 생각해 볼 만큼 좋아하게 된 남자가 생겼어. 그런데, 그 남자는 인생연금 가입자고 나름 신념이 있어 연금에서 탈퇴할 것 같진 않아. 이런 상황이면 전미 씨는 어떻게 할 거야?”
“어, 이거 연애상담인가요? 제가 언니에게 상담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냐, 그런 게 아니고. 그냥 똑 부러지는 전미 씨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서.”
“그러니까 인생연금 미가입자가 가입자와 결혼하고 싶은데, 연금에 가입하더라도 결혼해야 하냐는 거죠? 간단한 문제 같은데요. 망설일 게 뭐 있어요? 인생연금 가입의 불편함보다 그 사람이 더 좋다면 가입하면 되죠.”
언니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면서 내 대답을 듣더니,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어두워진 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언니의 성격 상 그냥 한 질문은 아닐 것이다. 술 마시면서 한 얘기들이 그 사람을 생각나게 한 게 분명하다. 나. 공모전. 인생연금 가입자. 카페.


공통분모는 누가 봐도 이 과장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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